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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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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아홉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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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실미도> 무덤까지 가지고 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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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로보트 태권브이> 민주주의는 내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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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고독이 몸부림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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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떠나왔다. 약속한 일 독촉하러 전화했던 말수 적으신 학교 선배, 몸이 비상신호를 보내와서 1년 만에 휴가 갖는 거라는 변명 듣더니 “그런 식으로 일한다고 누가 상 주나” 하신다. “그러게요.” “상 받은들 뭐 할 거라고.” “그러게요.” 일을 한주 연기해놨다는 전화를 다음날 받았다.하루 반에 걸쳐 도착한 강릉. 피로를 이기지 못해 도중에 1박을 한 때문이지만 여행을 꼼꼼하게 계획하지 않고 즉흥성을 즐기는 탓이 더 크다. 인적 드문 바다, 늦은 오후의 호숫가, 선교장의 뒷산 솔숲을 걸어다니며 회복의 느낌, 장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갖다. 다음날 다시 찾은 선교장. 세종 임금의 형이었던 효녕대군의 후손이 중종대, <대장금>의 바로 그 시절부터 세거하던 대저택. 날씨가 쌀쌀해선지 오후부터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한옥. 이 집이 매혹적인 한 이유다. 비는 오지 않았다. 서울발 일기예보에서는 동쪽에서도 비가 내릴 거라고 했다. 중앙에서 뿌려대는 지
외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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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빅 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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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조선시대 최고의 왕따는 허균이 아닐까 싶다.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것밖에 모르던 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여행 중에 마주친 시비(詩碑)를 통해 그가 교산(蛟山), 그러니까 이무기 교자가 들어간 호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역적으로 처형되었으며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복권되지 않은 유일한 지식인·정치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그에 대한 관심이 몹시 치솟았다. 스스로 용이 못 된 이무기를 자처했고, 왕조 내내 용서할 수 없었던 대역죄인의 정체란 도대체 무엇일까.허균은 15∼16세기에 걸쳐 선조와 광해군대를 살았고 고려시대 이래 대대로 문장가를 배출한 집안의 후예였다. 아버지와 두 형, 그리고 누이 난설헌까지 아울러 오문장가라고 불렸으며 임진왜란 전후의 어려운 국제정세 속에서 대중국 외교사절단에 단골로 끼었다. 그때마다 책을 수천권씩 사들였다. 고도의 중앙집권적 지식국가에서 정치적 출세의 핵심 요소를 두루 갖춘 허균은, 그러나 소
왕따 이야기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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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말해서 나는 모범생의 인생을 살았다. 모범생이 가질 법한 콤플렉스 혹은 자존심 때문에 아웃사이더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 제법 표했지만, 그것마저도 범생이스러운 관용의 일부였을 것이다. 모범이라는 가치관은 지루하고 억압적이므로, 그런 유의 기웃거림은 일종의 얌전한 일탈로서 내 심신을 부분적으로 해방시켜주는 기능도 했을 것이다. 토끼가 목 축이고 간다는 산속 옹달샘처럼.그런데 내가 이 세상 왕따 중의 왕따들과 한편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예전에 본의 아니게 어딘가에서 지내다 나온 적이 있는데,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관계가 거기에서 펼쳐졌다. 아침저녁으로 포승에 묶여 조사받으러 다니는 동안, 유치장을 제집 드나들 듯하는 한 청년은 화장지로 만든 한 다발의 꽃을 선물해주었고, “아이고, 이 생기다 만 사람 좀 보게. 한여름에 털옷이 웬 말이야” 하면서 저녁이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아침이면 머리를 땋아주던 사람은 소매치기 대장 아줌마였다. 얼굴도 모르는 어떤 이는 운동 중에
왕따에 대한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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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즈 다이어리]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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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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