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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탑>은 여섯개의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다(여기에서의 시퀀스 구분은 이 글의 진행을 위한 자의적인 것이다). 첫 번째 시퀀스에서는 영화의 유일한 공간인, 병수(권해효)가 머물게 될 건물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진다. 1층에서 식사를 마친 세 사람, 병수와 병수의 딸 정수(박미소), 그리고 건물주 해옥(이혜영)은 함께 계단을 오르며 이후에 등장하는 지하 작업실, 2층 식당, 각각 3층과 4층의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 그리고 4층 집에서 연결된 옥상을 차례로 지나친다. 이 시퀀스의 마지막 숏은 옥상 난간에 살짝 기대어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는 정수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프레임 안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무섭지 않으냐고 묻는 병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목소리는 이전 숏에서 병수가 위치했던 자리, 해옥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던 옥상의 다른 편으로부터 들려왔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영화의 관객에게 외화면 영역이 인식되는 기본적인 방식일 것이다. 그러므로 옥상에 있는 정수
[비평] ‘탑’,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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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집 안에 두 여자가 서로 거리를 둔 채 앉아 있다.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대화만큼은 선명하게 들린다. 서로의 얼굴만 봐도 치를 떨던 이들이기에, 어쩌면 어둠과 간격이 두 사람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여자가 묻는다. 엄마, 나 사랑해? 그러자 다른 여자는 웃음을 터뜨린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면서 대답을 유예하고 있는, 불온한 웃음이다.
앨리슨 벡델의 <당신 엄마 맞아?>에서 이 질문은 교묘하게 자리를 바꾸어 등장한다. 이 만화에서는 엄마가 딸에게 묻는다. 나를 사랑하니? 부모와 자식간의 무조건적인 헌신과 신뢰라는 전제에 균열을 가하는 의심은 왜 엄마와 딸 사이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일까.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는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선형적 질서가 무참히 깨진 모녀 관계를 다룬다. 엄마 수경(양말복)과 딸 이정(임지호)의 관계는 이미 부서져 있고, 그 균열을 떠날 줄 모른다. 영화는 틀어진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 설명
[비평]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불온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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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신지의 장편 데뷔작 <헬프리스>의 도입부는 하늘에 떠오른 카메라의 공중 촬영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는 하늘 위에서 심하게 흔들리며 현기증이 일 듯한 위태로운 움직임으로 기타큐슈의 풍경을 내려다본다. 이 매혹적인 장면은 단순히 한 편의 영화를 여는 근사한 시작에 그치지 않는다. 하늘에서 시작된 작가의 여정이 <구름 위에 살다>라는 또 다른 하늘의 영화를 끝으로 이르게 종결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관객이라면 아오야마의 영화에 침범하는 구름과 하늘에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늘은 아오야마의 영화에서 주의 깊게 관측되는 대상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행위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헬프리스>의 초반부에서 집 안에 누워 있던 겐지(아사노 타다노부)가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 뒤에 이어붙는 컷은 그의 시선으로 보이는 텅 빈 하늘이 아니라 어느 공장의 외경을 비추는 무인의 삽입 쇼트다. 시선의 물리적 연결을 고려한다면 프레임
[비평] 아오야마 신지 감독론: 아오야마 신지, 혹은 하늘을 바라보는 영화의 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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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60)부터 장뤽 고다르는 뛰어난 형식주의자였다. 실험적 편집, 다이얼로그 도중의 갑작스러운 컷, 풀 프레이밍된 그림, 배우의 목소리를 덮는 음악.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클래식 영화의 규칙을 하나하나 무너뜨렸다. 고다르는 세계와 동시대 사람들(철학자이건 학생이건 노동자이건)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필름누아르나 SF 같은 장르에 예술영화를 접목한 팝 시네아스트의 선두 주자이기도 했다.
1965년 고다르는 전체주의, 컴퓨터의 절대권력, 인간의 상품화 같은 현대의 모든 공포가 집약된 미래도시 ‘알파빌’을 발명한다. 사립 탐정 레미 코숑이 주인공인 <알파빌>(1965)은 프리츠 랑과 <메트로폴리스>(1927), 그리고 필름누아르에 대한 감독의 애정을 가늠케 하는 작품이다. 고다르에게 알파빌은 미래도시라기보다 시멘트 건물로 뒤덮여가던 60년대 당시의 파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알파빌>은 공상과학영화라기보다 당대에
[비평] ‘알파빌’, 고통의 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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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하나의 매듭을 짓고 돌아설 때마다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2년의 성장을 담아낸 영화 <보이후드>에서 엄마 올리비아(퍼트리샤 아켓)는 아들 메이슨(엘라 콜트레인)이 기숙사로 떠나기 전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린다. 올리비아는 아들이 사진을 배우기 시작할 때 처음 찍은 사진을 보관 중이다. 엄마는 아들에게 사진을 가져가길 권하지만 이미 다가올 미래에 시선을 빼앗긴 아들은 굳이 뭐 하러 가져가냐고 무신경하게 내뱉는다. 이윽고 카메라는 몇 걸음 물러나 아들이 남겨두고 가겠다는 것들의 풍경을 가만히 비춘다. 올리비아의 종착역이자 아들의 출발점이기도 한 이 장면에는 각각 과거와 미래로 시선을 건네는 현재의 두 얼굴이 겹쳐 있다.
(올리비아의 시점에서) 일견 서글프고 허무하게 느껴진 이 장면의 진가는 내용이 아니라 편집 태도에 있다. 어머니의 슬픔을 앞에 둔 아들은 어떤 리액션도 없다. 아마도 뭔가 말을 건넸을 테지만 영화는 이를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실패에 머물지 않은 힘과 끝내 버릴 수 없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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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점에 우리는 ‘탑’이라는 커다란 글씨가 화면을 채운 모습을 보게 된다. ㅌ, ㅏ, ㅂ이 결합한 글자는 마치 상형문자처럼 보인다. 글자 ‘탑’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3층 정도 높이의 건축물과 닮았다. 이것은 같은 발음을 가진 영문자(TOP)로 풀어 적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은 논문 ‘영화의 원리와 표의문자’(1929)에서 한자어의 축약성에 특히 주목한다. 그는 이미지를 추상화한 상형문자, 두개의 문자를 결합해 다른 의미로 나아가는 표의문자에서 숏과 숏을 결합해 제삼의 지대에 다가가는 영화 몽타주 개념의 실체를 본다. 홍상수의 영화를 표의문자에 빗대면 그 문자는 서로 다른 이미지를 부딪치기보다는 비슷한 이미지를 부딪쳐 미궁을 짓는 편에 속한다. 감독의 영화 사상 최초의 한 글자 영화인 <탑>은 이러한 경향의 정점에 있다.
한층에 하나씩
영화는 화면 바깥에서 음악이 개입하는 순간을 기점으로 총 4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내용에 따라
[비평] ‘탑’, 영화의 건축술과 배우의 변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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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중의 두 번째 영화 <컨버세이션>(2021)은 제목에 충실하다. 영화 전체가 2인 이상이 모인 대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누군가의 진솔하고, 실없고, 애틋하고, 어이없는 대화를 듣기 위해 러닝 타임 전부를 할애한다. 전작 <에듀케이션>(2019)에서도 대화는 중요한 도구였지만, 성희(문혜인)와 현목(김준형) 두 사람의 만나질 리 만무한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는 종종 어그러졌다. 이에 비해 <컨버세이션>은 다양한 인원과 대화하는 사람들의 친밀한 관계 여부와 그들의 감정에 넓게 포진함으로써 세밀한 감정 변화에 집중한다. 시간을 공유하고 공동의 경험을 간직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이 영화의 대화는 호기심과 관심과 헤아림을 동반한다. 하지만 조각난 신 구성으로 인해 관객들은 대화를 듣고 있기는 하지만, 온전히 대화에 안착할 수 없다. <컨버세이션>은 대화로 이루어진 영화를 넘어서 영화가 된 대화라고 말할 수
[비평] ‘컨버세이션’ 무주산골영화제 한국장편영화경쟁부문 ‘창’ 섹션 초청작 비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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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화제가 끝나고 난 뒤
2022년 6월 6일. 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 시상식이 끝나고 김종관 감독님께서 핫도그에 맥주 한 잔을 사주셨다. 함께 먹으며 비가 갠 쾌청한 하늘 아래 무주등나무운동장에서 잠시 느껴본 여유. 낮 12시. 가장 많은 도움을 주셨던 이슬비님은 김종관 감독님을 태우고 대전 터미널로 향했다.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기 전 혼자서 벤치에 앉아 아이들의 캐치볼을 멍하니 봤다. 나를 무주로 초대해주신 조지훈 프로그래머님이 다가오셨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시며 커피를 선물로 주셨다. 그렇게 영화제를 뒤로하고 향한 무주 터미널에서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김세인 감독님을 우연히 마주쳤고 버스가 오기 전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미친 듯이 잠이 쏟아졌다. 영화제의 모든 순간은 꿈처럼, 스크린에 잠시 머물다 흩어지는 영화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대사 하나가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비평] ‘비밀의 언덕’ 무주산골영화제 감독상·관객상 수상작 비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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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의 주인공 영태(박송열)와 정희(원향라)는 30대 부부로 현재 일정한 직업이 없다. 영태는 영상작업자, 정희는 초등학교 특활교사지만 경력을 살려 일하기가 쉽지 않다. 생활을 유지하느라 둘은 공사장, 택배, 대리운전, 마트, 식당 등 가리지 않고 ‘알바’를 해왔다. 육체적으로 지옥을 맛보거나 심리적으로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들이었다. 게다가 영태는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 다리를 다쳐 이제 막 회복된 참이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대화의 내용은 암담하다. 부부는 좁은 부엌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집주인이 재계약 때 전셋값을 올릴까봐 걱정한다. 경제적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급기야 정희는 사채를 쓰고 영태는 믿었던 선배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넘지 말자 했던 ‘선’들을 넘게 된다.
부부의 상황만 놓고 보면 빈곤의 우울과 그에 대응된 폭력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영화는 코믹한 톤과 거리를 둔 차분함을 결코 잃지 않는다. 여러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는
[비평]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 수상작 비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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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하찮으므로 위대하다. 이 글과 이 글이 다룰 영화가 목표 삼은 명제다. 왜 그런지는 차차 쓰기로 하고 우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약칭부터 정리하고 봐야겠다. 제목의 각 어절에서 첫 자음을 딴 <ㅇㅇㅇㅇㅇ>이 어떨까 싶다. ‘ㅇ’은 시작도 끝도 없이 순환하는 모양인 데다 극중 중요한 소품인 베이글 또는 인형 눈알과 닮아 있어 이 영화를 가리키기에 적당해 보인다. 한글에서 유일하게 음가 없는 자음인 ‘ㅇ’은 모든 모음과 어디서든 한번에 만날 수 있어 ‘없음의 쓸모’를 말하는 이 영화의 세계관과 맞닿기도 한다. 어찌 됐건 이 글은 <ㅇㅇㅇㅇㅇ>의 이야기에 영감을 준 동양 사상과 서양 과학의 접점을 야트막하게 들춰보려는 시도이자,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에 대한 기획 지면(<씨네21> 1292호)에 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속편이기도 하다. 특히나 최근 할리우드에서 하나의 흐름이 되어가는 다중
[비평]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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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름다운 음악에 가려져 있지만, 세연(염정아)의 처지는 과하게 가혹한 측면이 있다. 남편 진봉(류승룡)은 아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자 아들의 수능부터 걱정한다. 그가 아픈 아내를 대하는 방식은 폭력적이고 아이들은 무례하다. 이에 대한 세연의 반응도 뜻밖인데, 무감각하거나 순응적이다. 후반부에 이 부분을 해명하는 서사가 등장하지만, 여전히 지나치다는 인상이 남는다. 갈등은 의외의 지점에서 터져나온다. 첫사랑을 찾아나서겠다는 선언. 그녀가 부당한 대우에 상식적으로 대응하는 대신 낭만적인 사랑을 외칠 때 여정의 막이 오른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세연의 혹독한 운명과 무방비한 수용,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을 동력으로 시작되는 영화다.
그녀의 수난은 이어진다. 첫사랑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남겨진 사람들은 눈물 짓는다. 아이들은 엄마의 병에 대해 듣고 운다. 이토록 감정이 북받칠 때 세연은 노래한다. 감동적인 넘버가 등장할 타이밍. 이 영화의 넘버에
[비평] ‘인생은 아름다워’, 뮤지컬영화가 마법 같은 순간에 가닿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