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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교향곡1> 이경석, <속좁은 여학생1> 토마, <트레이스1> 고영훈 / 팝툰 펴냄
최근 창간 일주년을 맞이한 만화 격주간지 <팝툰>이 세편의 단행본 컬렉션을 선보였다. 인디만화계의 대부인 이경석의 <전원교향곡>, 신감각 순정작가 토마의 <속좁은 여학생>, 장편서사 웹툰계의 주목할 만한 신인 고영훈의 <트레이스>가 그 주인공들. <전원교향곡>과 <속좁은 여학생>은 <팝툰> 창간호부터 호평 속에 연재 중인 인기작이며, <트레이스>는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네티즌의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는 인기폭발 웹툰이다. ‘팝툰 컬렉션’이란 이름을 달고 첫 탄생한 단행본 삼남매에는 저마다의 맛깔스러움이 가득하다. 이경석의 <전원교향곡>은 오지 마을에서 벌어지는 유쾌발랄한 농촌시트콤이다. <전원일기>적인 서정적 배경에 <이나중 탁구부>스러운 엽기
색다른 만화와의 만남, 팝툰 단행본 삼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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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오시이 마모루 / 황금가지 펴냄
<공각기동대> <인랑>을 연출한 오시이 마모루가 쓴 장편소설. 이연걸 주연의 <키스 오브 드래곤>의 크리스 나혼이 감독하고 전지현이 주연 사야를 맡은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주인공은 미와 레이(이 이름은 오시이 마모루의 대학 시절 필명이기도 하다). 전공투 활동이 극에 달했던 1969년 4월28일, 고등학생 활동가 레이는 시위 대열을 이탈했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된다. 전형적인 여고생의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커다란 일본도를 들고, 형형한 눈빛을 빛내고 서 있었던 것. 외국인 남자 두명이 사야라고 불린 여고생과 같이 있었는데, 레이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구급차에서 깨어난다. 그날 이후, 레이는 피를 빨린 채 죽음을 맞는 학생들의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린다.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는 전공투 세대였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젊은 날을 배경으로 하는
오시이 마모루의 살아 있는 시체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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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 민음사 펴냄
죽음 앞에서 크게 한번 웃어보시라. <더티 잡>은 한 전형적인 소시민이 우연찮게 죽음의 사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유머로 조리해낸 작품이다. 찰리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중고품 가게를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 하지만 아내가 딸 소피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숨을 거둔 뒤, 그의 삶은 불길한 방향으로 꼬이기 시작한다. 노트에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이 저절로 나타나는가 하면, 그 사람들이 하나같이 며칠 뒤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 찰리는 자신이 죽어가는 이들의 영혼을 수거해 원활한 윤회를 돕는 “더티 잡”에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식료품 점원이 뱀파이어에게 반하는가 하면, 예수의 어릴 적 친구가 부활해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등 그간 허무맹랑해 보이는 설정을 솜씨있는 유머로 가공해냈던 크리스토퍼 무어는 <더티 잡>에서도 특유의 장기를 발휘한다. 하수구에서 은밀히 지상 진출을 도모하는 죽음
윤회를 돕는 유쾌한 데스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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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 이레 펴냄
이런 상자가 정말 있다면 좋겠다.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는 일본의 유명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가 인터넷 신문 <호보일간 이토이 신문>에 연재한 코너를 묶은 책으로 아이, 주부, 학생, 소설가, 연예인,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보낸 질문에 대한 다니카와의 대답으로 구성됐다. “모든 나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고 싶은 시인의 소망으로 시작하는 책 속 다채로운 질문들은 걸작 대답들과 짝을 이뤘다. 사람은 왜 죽냐는 어린 딸의 질문에 막막했던 엄마에게는 의미심장한 질문에는 말과 몸으로 함께 답해주라며 안아주기를 권하고, 부담없는 대화가 어렵다는 고민에 그 또한 개성이라고 위로한다. 남편 아닌 다른 남자로 걱정인 아내에게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라는 충고를 건넨다. 질문자와 독자를 모두 고려한 현답은 지혜롭고, 사인회 때 다른 사람 생
척척선생 다니카와씨에게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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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김현아 지음 / 호미 펴냄
<파리는 여자였다> 안드레아 와이스 지음 / 에디션더블류 펴냄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왜 재능이 뛰어난 여성에 대한 역사 기록이 (남성들의 그것에 비해) 적은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 된다. 남자의 헌신적인 조력자일 때 여자의 존재가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경우 창작의 주체이기보다 영감의 대상이 될 때, 권력의 집행자보다는 우아한 내조자가 될 때 여자의 존재는 기록되고 숭배받을 수 있었다. 김현아의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와 안드레아 와이스의 <파리는 여자였다>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역사 속 여성의 기록을 담은 책들이다. 두 책 모두 사료 조사라는 역사적 충실함에서나 사진자료를 통한 생생한 이야기 전달력이라는 면에서나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는 절반쯤 여행서이고 절반쯤 에세이다. 저자는 경주에서는 신라 여성들의
우리가 몰랐던 여자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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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발행된 <점석재화보>를 중심으로 다양한 관심을 공유하는 학자들이 펴낸 <중국 근대의 풍경>은 ‘유리거울의 시대’에 비친 ‘구리거울의 시대’의 풍경처럼 아련하게 다가온다. <점석재화보>는 서구(타자)가 더이상 은유적 외부가 아니라 실재적 외부로, 머나먼 타자가 아니라 중국의 일상을 위협하는 직접적 육체성으로 전환되는 시대의 표상이다. 중국 근대의 비극은 상상 속의 타자와 현실 속의 타자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간극에서 비롯된다. 그들에게 세계는 탐미적 나르시시즘의 코드로 읽혔기에, 그 어떤 아름다운 타자가 노크를 해도 중국인의 구리거울에 비친 자아보다 아름답지는 않았다. 구리거울에 비친 자아(전통) vs 유리거울에 비친 타자(근대)의 대결에서 승리는 점점 유리거울쪽으로 기울었다.
유리거울은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보잘것없는 나와의 투명한 대면을 매개하는, 잔인한 미디어다. 중화주의·화이론적 세계관이 구리거울의 이미지라면, 만천하에 중
타인을 비추는 끔찍한 거울, <중국 근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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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느끼는 아버지란 존재 너머에는 그의 자식들이 만나지 못한 또 다른 ‘아버지’가 있다. 가장으로서 짊어지는 책임감은 가족이란 소규모 사회를 끌고 갈 권위를 필요로 하고, 그 권위는 아버지를 베일에 싸인 존재로 포장한다.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가정에서 2세들은 아버지에 대해 깊이 알려 하지 않으며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는 감정의 교류가 끊긴 상징적인 존재가 되곤 한다. 물론 최근 가장의 역할과 위상이 바뀐 게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깨트릴 수 없는, 깨져서도 안 되는 신화와도 같다.
<재미난 집>의 작가 앨리슨 벡델의 아버지 역시 그런 ‘보편적’인 아버지상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다. 그녀는 그런 아버지가 답답하고 부담스러워 일찌감치 마음의 문을 닫는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알면 대경실색할 비밀이 있었으니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은 뒤 몇번의 망설임 끝에 아버지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그녀. 그러나 끔찍하게 무거운 침묵이나 모
아버지와 나의 커밍아웃, <재미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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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A. 미치너는 학자였고 편집자였고 해군이었고 작가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해군으로 복무하던 때로, 나이는 마흔에 가까웠다. 남태평양에서의 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쓴 그의 첫 소설 <남태평양 이야기>는 퓰리처상을 받았고, 이후 영화 <남태평양>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복무한 경험을 <도곡리 다리>라는 책으로 쓰기도 했는데 이 역시 영화화되었다. 현재 한국에서 구해볼 수 있는 그의 소설은 <소설>뿐이지만, 한국에도 잘 알려진 그 두편의 영화는 미치너의 이름을 낯설지만은 않게 해준다.
<작가는 왜 쓰는가>는 작가 지망생들을 가르치던 노년의 미치너가 자신의 작가 수업과정을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책을 읽으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는가를 회상하면서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이 순수한 문학적 이상에 엄격하게 설교를 늘어놓는 책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주는 충고, <작가는 왜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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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고종석이 기억하는 지구상 도시는 미국 댈러스에서 모로코 탕헤르에 이르기까지 줄잡아 마흔두곳이다. 대개 여행기는 저자가 가본 곳을 되도록 탐스럽게 그려야 책 낸 명분이 선다는 강박을 갖기 십상인데 <도시의 기억>은 그런 면에서 덤덤하고 때론 쌀쌀맞다. 일본의 나라, 스페인의 아랑페스,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그리고 저자가 서울 외에 지그시 눌러 산 유일한 도시 프랑스 파리 정도가 개중 고종석이 홀딱 반한 도시이겠거니, 독자가 눈치껏 넘겨짚을 따름이다.
서문에 미리 이른 대로 <도시의 기억>은 젊은 보헤미안의 무용담도, 그 나라에 살아보니 어떠하더라는 이주자 수기도, 예술품 답사 지도도 아니다(혹은 그 셋의 개성적인 종합이라 해도 적당하다). 이 책을 채운 에세이들은 저자가 그 도시를 누구와 함께 왜 방문하여 어떤 일을 했는지- 특히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또박또박 밝힌다. 문화사에서 그 도시가 점하는 좌표와 한국인 여행자에게 호소하는 바도 꼬박꼬박 언급
이국의 도시를 자신 속으로 끌어들이다, <도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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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가 다시 한번 반복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운을 내게 되는 나이. 운동을 하기 전에 몸이 견딜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하는 나이. 육체적 약함으로나 감정적 불안함으로나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나이. 아마 탐정소설 주인공으로 이보다 더 부적격 인물은 흔치 않을 정도다(한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반전이 ‘화자는 사실 할아버지였다’였을 정도로 드문 설정이다). 게다가 할아버지도 아닌 할머니라니. 글래디 골드 시리즈 1권인 <오늘도 안녕하세요?>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할머니가 주인공인 미스터리다. 비슷한 시기에 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도 세상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화자인 글래디 골드 할머니와 그 친구들은 직접 나서서 죽음의 진상을 캐기로 한다. 사회의 일선에서 후퇴함과 동시에 그 존재감마저 희미해진 할머니들의 도발인 셈이다.
저자 리타 라킨이 ‘미스 마플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이 시리즈를 칭했지만, 미스 마플 특유의 우아한 안락의자 탐정 캐릭터를 여기서도 기대해서
브라보~! 할머니 탐정단, <오늘도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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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이언 매큐언의 데뷔 초기를 가늠할 수 있는 단편집이다. <암스테르담> <속죄>와 같은 그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들이 이미 소개된 상태에서 새로 읽는 그의 이 소설집은 거칠고 끈적거리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혐오로 가득하다. 성인이 되고도 소년 시절의 철없음을 루저 정서에 맞물려 웃음을 끌어내는 닉 혼비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이언 매큐언은 꿈꾸지 않는 청춘 군상을 부려낸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의 주인공들은 곧게 응시하기보다 고개를 돌려버리게 만드는 일그러진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데, 그 과정은 주인공들에게도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도 결코 녹록지 않다.
<나비>의 화자는 난생처음 시체를 봤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운하 위를 따라 뛰는 소녀를 봤다. 어린 제인이 익사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그는 ‘용의자로 찍힐 만한 인상’의 소유자다. 제인의 사건을 담당한 형사도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폐수 거품처럼 끈적이는 인간의 불쾌한 욕망 <첫사랑, 마지막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