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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멀비가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라는 유명한 논문을 <스크린>이란 잡지에 발표한 것은 1975년의 일이었다. 이로부터 거의 3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멀비라고 하면 우선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고 현재에도 계속해서 읽히고 있는 그 논문부터 자동적으로 떠올린다. 비록 그동안 멀비가 그 논문으로 계속 돌아와 수정하고 확장하는 작업을 했지만 한편으론 이것 또한 부당한 일로 여겨진다. <1초에 24번의 죽음>이란 멀비의 최근 저서는 이런 생각부터 떠올리게 된다. 이 책에서 우리는 굳이 ‘남성적 응시’에 대한 가혹한 이론 안에만 갇혀져 있지 않은 멀비, 그러면서 도발의 목소리보다는 성찰의 목소리를 내는 멀비를 보게 된다.
<1초에 24번의 죽음>이란 책은 우선 그 흥미진진한 제목부터 눈길이 가게 한다. 이것은 시네필이라면 대략 짐작하겠지만 장 뤽 고다르의 영화에서 가져온 것이다. <작은 병정>(1960)에서 고다르는 ‘영화란
지금,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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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소소설> <괴소소설> <독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바움 펴냄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 작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나오키상을 받은 <용의자 X의 헌신>, 영화화된 <비밀> <호숫가 살인사건> <게임의 이름은 유괴>, 한국에서 영화화가 진행 중인 <백야행> 등 어느 것 하나를 대표작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지닌 장점이라면 다른 무엇보다 성실함과 진지함.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나온 블랙유머 단편집 3권을 처음 봤을 때, ‘설마 히가시노 게이고가 웃길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변함없이 진지하다, 그래서 웃긴다.
<흑소소설>은 ‘쓴웃음 소설’을 모은 단편집이다. 유명한 문학상을 둘러싼 작가와 편집자의 동상이몽은 상의 종류가 많아 수많은 신인 작가가 태어나고 또 잊혀지는 일본의 문단 현실을 풍자한다. 이 이야
소시민의 뇌를 강타하는 괴이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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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아르테 펴냄
학력 위조를 해서라도 똑똑해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달리, 어떻게든 지성을 숨기려는 한 여자가 있다. 54살의 못생긴 과부인 르네는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에서 수위로 일한다. 르네는 학교는 가보지도 못했고 항상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사실 문화귀족이다. 그녀는 오즈 야스지로와 톨스토이를 사랑면서도 그 사실을 한번도 남에게 알린 적이 없다. 부유한 아파트 주민들에게 나이들고 못 배운, TV나 보는 관리인 여자라고 낙인찍힌 채 혼자만의 낙원을 즐기는 게 그녀의 낙이다. 겉보기엔 무감각한 듯하지만, 고집스럽게 홀로 있고 지독하게 우아한 고슴도치처럼.
‘30주 연속 프랑스 전체 도서 베스트셀러 1위’를 했다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은 지성을 숨긴 채 살아가는 아파트 관리인 르네와 그 아파트에 사는 열두살 소녀 팔로마의 이야기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된다. 두 사람은 꽤 흡사하다. 팔로마
바보 가면을 쓴 지성인들의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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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리셋> 쓰쓰이 테쓰야 지음/ 학산문화사 펴냄
“당신의 인생은 실패했습니다, 리셋하십시오.” 실패했다고 리셋하는 건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쓰쓰이 데쓰야의 만화 <리셋>에는 실제 상황에서 눈앞에 그런 문구를 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리셋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플레이어 자신이 죽는 것뿐이다. 하지만 게임을 벗어난 실제상황에서 죽는다면 결론은 리셋 불가, 오직 죽음뿐이다. <리셋>은 게임에 빠져 살다 자살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연속으로 발생하는 사건을 그린다.
쓰쓰이 테쓰야의 <맨홀> 1, 2, 3권과 <리셋>이 박스 세트로 함께 출간되었다. ‘테츠야 츠츠이 공포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나왔지만 이토 준지풍의 만화에 익숙한 독자라면 특별히 공포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 그림체가 주는 잔혹함보다는 쓰레기만도 못한 최악의 인간을 보는 공포쪽이 훨씬 강렬하다.
<맨홀>은 벌거벗은
인간쓰레기 폐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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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하진 지음 | 시공사 펴냄
만약 사랑과 마음의 평화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당신은 무엇을 택할 것인가? 하진의 <기다림>은 20년 가까이 선택을 피하고 기다림을 택했던 남자 쿵린과 그의 두 여자들 이야기다.
1983년 중국. 육군병원에서 내과의로 일하는 쿵린은 해마다 여름이면 이혼 청원서를 들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딸을 낳은 뒤 17년간 사실상 별거하고 있는 아내 수위와 이혼하기 위해서다. 병상에 누운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떠밀리듯 한 결혼이었는데, 수위는 시대에 맞지 않게 전족을 한 박색이었다. 린이 이혼을 원한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린은 병원에서 함께 일하는 간호사 만나와 오랫동안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20대 중반이던 만나는 린의 이혼을 기다리다 40대가 되었다. 그래서 린은 여름이면 고향으로 가 아내에게 이혼을 청한다. 수위는 이혼에 동의하지만 법정에서 눈물을 보이고 마음을 돌린다. 린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병수발을 끔
기다림에 대한 간결하지만 아름다운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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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맨, 천국을 만나다> 대니얼 타멧 지음, 배도희 옮김 | 북하우스 펴냄
전혀 몰랐던 아이슬란드 언어를 4일 만에 습득해 아이슬란드의 TV토크쇼에 출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행복할까. 5시간9분 동안 한번의 실수도 없이 파이(원주율)의 소수점 이하 숫자 2만2514개를 암송할 수 있다면 명예로울까. 대니얼 타멧은 10개 언어를 구사하고,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 줄 알며, 만나자마자 당신의 60살 생일이 무슨 요일인지 계산해낼 줄 아는 ‘브레인맨’이다. 그렇지만 신은 그에게 처음부터 행복과 명예를 안겨주지 않았다. 타멧은 고기능 자폐서번트다. 아스퍼거 장애를 갖고 태어났고, 네살 때 심한 간질 발작을 일으킨 뇌기능 장애를 갖고 있다.
<레인맨>이나 <말아톤>에서 보여주듯, 아스퍼거 증후군을 포함한 자폐증은 철의 장막을 두른 인격을 선사받았다. “말을 할 때면 거의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고, 눈을 맞춰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자폐의 내면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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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영화였다> 신상옥 지음 l 랜덤하우스 펴냄
세상 어떤 감독이 영화라는 거대한 신전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을까. 한술 더 떠 자신의 존재를 영화와 동일시하는 감독이라면. 오만하게까지 여겨지는 책 제목에서 누군가는 ‘피∼’ 하고 코웃음부터 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발화의 주인이 신상옥이라면 수긍 못할 일도 아니다. 스스로 술회하듯 그는 “영화에 미친 놈”이었다. 한국영화사 연구자인 조영정의 표현대로 그는 “영화라면 무엇이든 저지를” 사람이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을 돌며 그가 남긴 전설을 한번이라도 귀동냥으로 들어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그가 마지막 남긴 글의 첫머리에 ‘난, 영화였다’라는 서명을 남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4월 타계한 고(故) 신상옥 감독의 자서전은 “부모의 돈을 훔쳐 고물 영사기를 샀던” 함경북도 청진 출신의 꼬마의 꿈으로 시작한다. <악야>(1952)로 충무로에 뛰어든 뒤 <어느 여대생의 고백>
영화로 존재한 생(生)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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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풍경> <감염된 언어> 고종석 지음/ 개마고원 펴냄
신문 이름 ‘한겨레’는 시대착오적이다. 발음하기 어렵고 제대로 쓰기 힘들며 글의 맵시까지 어정쩡하다. 영어로 번역하면 ‘one-nation’ 또는 ‘one-ehtnic’쯤 될 터인데, 파시스트 매체에나 어울릴 이름이다. 인간, 시민, 인류, 생명 따위가 아니라 ‘겨레’에 주목한 그 기의(記意)는 정치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 이 신문사에서 ‘씨네21’이라는 외국어 제호의 자매지가 탄생한 것은 그래서 기적에 가깝다. <한겨레>의 ‘궂긴 소식’(부음란)과 <씨네21>의 ‘컬처잼’(바로 이 지면)의 공존은 한겨레 사옥에서 일어나고 있는 ‘말들의 풍경’이다. 보수주의 언어와 대당하려는 <한겨레>의 말과 집단주의 언어와 긴장하려는 <씨네21>의 말은 어쩌면 서로 상극이다.
심지어 같은 신문사 안에서도 말과 말을 싸움 붙이고, 말을 말에서 해방시키며, 말로 말을 죽이
학자적 논객의 말, 문학적 언론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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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온다 리쿠 지음/ 비채 펴냄
책을 덮자 순간 주변의 온도가 낮아진 것 같다. 후텁지근했던 장마가 끝난 뒤 숨막히는 더위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온다 리쿠의 <유지니아>는 2006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인데, 책의 분위기는 추리물보다는 미스터리한 환상소설 정도로 에둘러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유지니아>를 구성하는 퍼즐 조각들은 마치 유기체처럼 움직이고 그 모습을 바꾸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여기 하나 저기 하나 끼워맞춰서는 커다란 그림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서들이 들어맞지 않는 데서 오는 다소간의 불안, 빈틈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찬 상념들이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주변의 온도를 낮춘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데서부터다.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을 듣는 사람인지 궁금해하면서 책장을 넘기다보면 20년 전 살인사건의 이야기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호쿠라쿠 지방의 K시에서 어
한없이 불투명에 가까운 미궁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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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창비 펴냄
물난리에 물자난에 초토화된 90년대 북녘 이야기가 해외뉴스로 들려오는 아프리카의 슬픈 풍경처럼 느껴진다, 고 해도 누굴 탓하랴. “개새끼들.” 북한 소녀 바리의 아버지가 험한 일을 당하고 내뱉는 유일한 욕설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 소설 안에서는 비교적 분명하지만, 세상에는 크고 작은 개새끼들이 너무 많다는 걸 소설은 국제적으로 체험케 해준다. ‘개새끼들’이 빚어내는 비극의 향연을 당장 중지할 방도는 없어 보인다. 외과수술로는 어림없는 그 상처들을 어루만져주고 싶어 영혼의 씻김을 끌어들인 걸 체념의 제의라고 시비걸 여지 역시 없어 보인다. 바리와 그의 할머니에게 영혼을 보고 대화할 수 있는 신묘한 능력을 준 건 판타지스럽지만, 겪지 않은 비극의 풍경도 멀찍이 선 자에겐 일종의 판타지일뿐이다. 바리가 하필 식량난에 줄줄이 죽어나가는 북녘의 소녀이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 옌지로 흘러들어가는 것도, 잘살아보겠다고 영국으로 목숨 건 밀항을
개똥밭을 구른 구원의 여신, 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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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베르나르 베르베르 글, 뫼비우스 그림, 열린책들 펴냄
<파피용>은 마치 그래픽 노블을 글로 읽는 것 같은 책이다. 그래픽 노블을 글과 그림으로 분리해, 글은 더 많이, 그림은 더 함축적으로 만든다면 이런 책이 될까. <개미> <나무>를 비롯해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은 뫼비우스의 그림과 환상적인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책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다져진 디테일을 꼼꼼히 쌓아 거대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보여주었던 작품이 <개미>라면, <파피용>은 우주를 향해 ‘파피용’이라는 이름의 노아의 방주, 즉 우주선을 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세계를 바라보는 베르베르의 시선을 보여준다.
이브 크라메르는 항공 우주국 소속의 엔지니어다. 그는 최고의 요트 선수인 엘리자베트 말로리를 차로 치는 사고를 내고, 그녀는 하반신 불수가 된다. 그 일로 두
베르베르가 쓴 노아의 방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