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꽤 많은 분량의 1년 전 원고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물론 지겹지만, 돌이켜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뭘 그리 허겁지겁 살아왔는지 출판한 책을 ‘교정본’ 용도로나마 들여다본 게 아주 최근 일이니 미출간 원고를 ‘개작’하는 일은 20년 만에 최초라 할 만하겠다. 나 같은 사람을 문인이라고 해도 되나…. 나는 뒤늦게, 아니 세월을 뒤집으며 ‘절차탁마’의 재미를 기대하고 있는 셈이다.‘그러나’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싫어진다. 삶이 ‘복합적으로 복잡’해져, 아니면 숱한 동전 양면에 사고 자체를 포기해서, 아니면 ‘그러나’의 ‘단절-단호’보다는 총체를 느끼고 싶어서? 하긴 옛날에, 아메리카인디언 소설을 번역하면서 ‘그러므로’와 ‘그러나’를 바꿔쓰는 방식으로 미국 내 인디언의 처지를 형상화하는 것에 경악-감동한 적이 있기는 했다. <새벽으로 만든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좀더 온기가 느껴지지만 너무 길고 부대낀다.어쨌거나, 그렇게 문장(혹은 문체)에 ‘예민’을 떨다보니 좋은
이혜경 소설집 <꽃그늘 아래> 등
-
<오버 더 레인보우>는 뇌라는 하드 디스크에서 연애에 관련된 데이터들이 저장된 폴더를 일부러 손상시킨 뒤, 다시 그것을 복구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잊어버리는 행위 자체는 보통 삶의 현재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잊어버린 기억’은 물건이 아니라 나 자신인 것이다. 그러나 보통 ‘기억상실’을 다룬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는 기억을, 혹은 망각을 물건 다루듯 한다. 주인공 스스로가 바로 그런 방식의 내러티브에 저항하기라도 하듯 ‘남들에 의해 기억이 되찾아지더라도 그것을 스스로 생생하게 느끼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논지의 말을 하지만, 그것은 작은 몸짓에 불과하다. 지하철 유실물센터에 모인 가방들과 기억의 하드에 모인 추억의 데이터들의 상동성. 영화는 그렇게 ‘대상화’시켜놓고 조작한다. 잃어버린 기억을 말이다.음악은 박호준, 음악감독은 이영호·이소윤이 맡았다. 영화를 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음악은 제목에서도, 기억 속의 여자를 가리키는 상징적 이름에서도 등장하는 ‘무지개’,
<오버 더 레인보우> O.S.T
-
1990년대 한국 만화계 최고의 성과로 손꼽히는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 하드커버의 고급 장정으로 복간되었다. 바다 그림판의 ‘한국 만화대표선’ 세 번째 작품으로 나오게 된 <구르믈…>은 1996년 문화관광부 선정, 대한민국 만화문화상 저작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그 명성을 널리 떨쳐온 작품이다.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견자라는 한 인물이 칼을 통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서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켜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임꺽정> <장길산> 등 한국적 만화들의 전형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양화의 전통을 이어받은 유려한 흑백의 선과 초현실주의적인 비유의 장면들은 이미 고전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대전국제만화대상전 공모대전국제만화연구가 주관하는 제11회 대전국제만화대상전이 오는 6월30일까지 참가작 접수를 받는다. 응모부문은 과제부문(기쁨, 슬픔)과 자유부문(시민생활, 건전문화 등)으로 규격 내 1∼4컷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하드커버 복간
-
한동안 참 많은 요리를 먹었다. <미스터 초밥왕>에서 최고의 초밥이 담긴 접시를 건네받았고,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짜장면>도 맛보았다. <맛의 달인>이 차려주는 궁극의 메뉴까지 샅샅이 섭렵했다. 배도 제법 불렀고, 이젠 좀 지겨워질 때도 되었나? 잠깐, 그래도 입가심이라도 해야지. 달짝지근한 케이크에 아이스크림 정도가 어떨까? 요리만화라면 나올 것은 다 나왔다 싶었지만, 이 만화들을 보니 정말 확실히 중요한 뭔가 빠져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서울문화사에서 현재 2권씩 차려내놓은 구보노치 에이사쿠의 <쇼콜라>와 요시나가 후미의 <서양 골동 양과자점>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케이크와 과자들로 우리를 유혹하는 케이크 가게 만화다. 그런데 역시 요리점과 제과점은 다른 분위기, 정통 요리만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쪽은 정말로 온몸이 끈적거릴 정도로 달짝지근하고, 한쪽은 과연 언제 케이
<쇼콜라>와 <서양 골동 양과자점>
-
-
얼마 전 TV에 나온 한 시사프로그램의 내용이 꽤 눈길을 끌었는데, 인간의 뇌 속에 있는 특정부위의 조건에 따라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가 나온다는 연구결과에 대한 것이었다. 일부분만의 과학적 분석 차이를 그러한 현상에 대한 전반적인 원인 규명인 양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어린아이의 그림에 나타난 표현들이 앞서 말한 경향의 분석에 이용되는 것은 흥미로웠다. 남자아이는 움직이는 물체에 대하여 간결하고 차가운 색 계통을 써서 그리는 반면, 여성적 성향을 지닌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똑같이 정지된 물체를 화려한 색조로 표현해내고 있다. 이렇듯 그림을 통한 내면탐구는 아동심리나 정신병 연구에 주로 쓰이는데, 사람이 표현해내는 그림에 그 사람의 내면이 부지불식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ASIFA 1978년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미국의 여성작가 수잔 피트의 <아스파라거스>(Asparagus, 국내에서는 제1회 전주영화제 애니메이션 비엔날레
색의 에로티즘 <아스파라거스>
-
브람스 <바이올린/비올라 소나타 전집>(SKCD-L-0243~4 바이올린/비올라:닐스-에릭 스파르프 피아노:엘리자베스 베스텐홀츠)영국 음악은 ‘평정’을, 이탈리아 음악은 ‘일상’을 지향한다. 음악문화 전반이 그렇다. 프랑스 음악은 아름다움을 그리고 독일 음악은 순수를 지향한다.평정과 일상을 지향하는 것은 다소 과하더라도 과하지 않다. 음악은 ‘평정’, 그리고 일상과 상호 심화-확대 관계에 있다.하지만 ‘순수’와 ‘아름다움’은 다르다. 음악이 순수=아름다움 그 자체인 까닭이다. 순수가 순수를 지향한다… 순수의 순수, 예술의 예술, 아름다움의 아름다움, 이런 단어들이 함축 혹은 응축하는 어떤 ‘절대성’은 자칫, 파시즘을 낳는다.프랑스 문화의 ‘예술성’이 극우파를 온존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최근 프랑스 대선과 맞물린 ‘극우파 충격’을 보며 잠시 고개를 든 적이 있지만, 그건 아니다. 프랑스 문화는 ‘예술적’이라기보다는 ‘예술의 예술’이 인위-작위성을 발하는 면이 있으므로
브람스 <바이올린/비올라 소나타 전집>
-
언젠가부터, 백인들은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해왔다. 마이클 무어의 <멍청한 백인들>을 보기 훨씬 전의 일이다. 십자군전쟁으로 이슬람문명을 파괴한 것도 백인이고,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을 학살한 것도 백인이고,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도,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무기와 환경오염을 유발한 것도 모두 백인들의 짓이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혹시 그런 선입관 때문에, <멍청한 백인들>이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올해 칸영화제 경쟁에도 오른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신랄하게 ‘백인’을 욕한다. 세계를 망치고 있는 미국과, 미국을 쥐고 흔드는 백인들을 씹어댄다. 미국의 제도적 부조리와 정경유착, 여성과 흑인에 대한 차별 등 미국사회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간다. 목소리만 높이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통계와 자료를 치밀하게 제시한다. 의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의석은 13%이고, 상위 500개 회사 중 496개는 남성이 경영한다. 연평균 흑인 수입은 백인 평균보다
마이클 무어의 <멍청한 백인들>
-
벌써 ‘난 나’라고 말하던 세대는 구리다. 지금 세대는 ‘넌 누구?’라고 물어본다. 아바타, 닉네임, 버추얼 아이덴티티. 이 세대의 연애 스토리는 ‘넌 누구?’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내러티브로 짜여진다. 너는 실제 너와 버추얼한 너로 나뉜다. 버추얼한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모든 버추얼한 존재는 ‘오프라인’, 즉 ‘실제 너’를 지닌다. 실제 너를 만나고 싶다. 그러나 실제 ‘너’를 만나는 일은 배반의 행위이다. 그것은 버추얼한 너와 일정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런 구조가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미 모든 ‘가면 놀이’가 이런 구조를 지닌다. 그렇다면 <후아유>의 해결방식은? 순하디 순하다. 버추얼한 너와 실제 너를 하나의 ‘너’로 정리하면서 끝난다. 그렇게 쉽게?방준석과 서준호가 음악을 맡았다. 방준석은 예전에 ‘유엔미 블루’라는 밴드를 했다. 그리고 어어부프로젝트를 위시한 각종 인디프로젝트에서 기타리스트로 세션을 한 바 있다. 그는 <
<후아유> O.S.T
-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아가사 크리스티/ 황금가지 펴냄/ 8천원셜록 홈스, 아르센 루팽, 애드거 앨런 포가 국내에 나왔다. 자, 다음은 누구? 애거사 크리스티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1차분 4권이 먼저 나왔으며 1권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 9편을 모은 <빛이 있는 동안>. 포와로가 등장하는 단편 <크리스마스 모험>, 소박한 트릭이 등장하는 <여배우>, 몽환적 낭만이 깃든 <꿈의 집> 등 크리스티 마니아를 만족시킬 신선한 단편들이 실려 있다.철이 없으면 사는 게 즐겁다홍성만, 설윤성/ 우물이 있는 집 펴냄/ 8800원젊은 부부가 3년만기 적금을 받아들고 세계를 향해 튀었다! <철이 없으면 사는 게 즐겁다>는 “삶의 직선궤도 대신 자유활강을 택한” 부부가 1년 동안 세계 32개국을 돌아다닌 여정을 적은 기행문이다. 여행지의 유물이나 유적에 대한 역사적 정보제공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겪고 듣고 느낀 바에 초점을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 / 철이 없으면 사는 게 즐겁다
-
살타첼로 내한공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6월7일 7시30분/ DSD/ 1588-7890
<진도 아리랑> <나그네 설움> <옹헤야> 등 우리 음악을 단순한 재즈 스타일의 편곡이 아닌, 새로운 한국음악으로 바꿔 세계에 소개하고 있는 독일의 크로스오버 밴드 살타첼로의 세 번째 내한공연. 지난 공연 때 장사익, 해금 강은일, 소프라노 이정해 등과 협연했던 살타첼로는 이번에는 네명의 국악 연주자로 구성된 가야금 앙상블 ‘사계’와 협연, 가야금과 재즈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음악에 도전한다.
살타첼로 내한공연
-
DevilB’z 비잉뮤직코리아 발매새 음반이 발매될 때마다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일본 록그룹 비즈(B’z)의 영어 음반 이 발매되었다. 2002 한·일월드컵 공식 앨범에 수록된 외 4곡이 들어 있는 미니 앨범. 남성적 보컬이 오히려 현란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 여자의 나지막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활기찬 , 전반부의 기타연주를 보컬이 받아 현란하게 이어가는 등 비즈의 파워풀한 매력을 느끼기에 ‘딱’인 곡들이 실려 있다.Spinner Jump 슈가도넛 쌈지 발매2001년 ‘쌈지 싸운드 페스티발’에서 신고식을 치른 펑크밴드 슈가도넛의 첫 음반이다. 밴드 결성 뒤 첫 노래였다는 에 어린, 딴지를 거는 듯한 명랑함이 <책받침 아가씨> 등의 곡들에 깃들어 있다. 발라드곡인 <몇해 지나>, 복고적 느낌의 <몰라>와 <오예>, 감상적이면서 포근한 기타멜로디가 시종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집> 등 욕심껏, 그러나 소박하게 메뉴
Devil / Spinner Jump / 로망스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