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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강렬하다고 할 순 없어도 오랫동안 기억 속에 잔잔하게 남아 있는 영화 중에 <베니와 준>이 있다. 이 영화는 정신병을 앓는 준과 사려 깊은 그의 오빠 베니, 그리고 그들 사이에 끼어든, 희극적이고 약간은 비정상인 샘 사이에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과 해결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아픔을 섬세하고도 따뜻한 시각으로 관찰한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매력을 발휘하는 배우는 역시 조니 뎁이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희극배우와 우울한 멜로배우의 역할을 한몸으로 해냄으로써 그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연기의 영역을 개척해내고 있다. 샘이 보여주는 버스터 키튼 스타일의 슬랩스틱코미디는 현실 바깥에, 정상적인 일상 바깥에 존재하는 외로운 예술의 상징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것만이 준을 정신병원의 철창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 예술은 그렇게 사실들로 너무나 꽉 차 있어서 도무지 움직일 틈도 주지 않는 현실에서 한 걸음 빗겨 나와 있는 바보스러
<베니와 준>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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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재동의 만화를 처음 만난 것은 <한겨레신문>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창간된 신문에서였다(시위현장의 깃발이나 노동조합의 회보에서나 봄직한 백두산 천지 그림이 ‘일간’ 신문의 제호에 인쇄되어 있었다). 80년대 거세게 불어닥친 민주화의 열기 속에 국민주주운동으로 탄생한 신문의 2면에는 늘 박재동의 ‘한겨레그림판’이 있었다. 박재동의 만화는 시사만화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을 넘어서며 다양한 용도로 진화했다. 신문에 수록된 만화는 대자보를 장식했고, 자료집에 수록되었다. 격정적인 폭로와 서정적 이야기, 만화의 웃음을 가장 적절히 사용한 유쾌한 풍자와 금단의 영역이었던 정치인들에 대한 명쾌한 비꼼. 박재동의 만화는 그 시절 나(우리)에게 가장 선명한 정치적 상징이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 많은 젊은이들이 박재동의 만화를 보며 정치적 올바름을 배워나갔다. 나의 정치적 입장의 8할은 박재동 만화가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만화의 힘을 아는 작가 박재동 만화의 힘은 만화에
박재동의 시사만화집 <목 긴 사나이>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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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야마시타 가즈미의 작품이 2001년 여름부터 한꺼번에 출판되고 있다. 1988년 작품인 <넌 킹카, 난?>은 인기 남자배우와 코미디 매니저의 연애담을 다룬 가벼운 코믹터치 극화이다. 유명한 가수가 열광적인 팬의 수호신이 되고, 열광적인 팬이 죽은 가수를 잊어버리자 수호신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유쾌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1996년 작품인 <고스트 랩소디>, 그리고 단편모음집인 <걸프렌즈>가 출판되었다. 이들 작품은 모두 <천재유교수의 생활>에서 보여준 것처럼 꽉 짜여진 이야기의 틀이 매력적이다. 별것 아닌 이야기나 가벼운 코믹터치라도 독자를 작품 속으로 몰입시키는 이야기의 재미가 살아 있다. 특히 단편집 <걸프렌즈>는 두 장편 <넌 킹카, 난?>이나 <고스트 랩소디>와 달리 획일성을 거부한 주인공들과 획일성에 편입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야마시타 가즈미의 단편집 <걸프렌즈>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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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곳에서 사오정을 만나게 될 줄이야. 보랏빛 피부에 천진난만한 표정. 안국동 참여연대 사무실 입구에 서 있는 건 분명 사오정이었다. 사람보다 크게 만들어진 이 모형은 국민의 소리를 못 알아듣는 정부를 상징하고 있었다. <날아라 슈퍼보드>의 위력을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1990년 KBS를 통해 처음 방영된 <날아라 슈퍼보드>는 방영 초기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당시 시청률은 42%. 얼마 전까지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포켓몬스터>의 시청률이 약 20%였음을 상기해보면 실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제작사인 한호흥업 역시 예상치 못한 인기에 어리둥절했다고 하니, 기실 사람 마음을 휘어잡는 건 치밀한 계산이 아니라 플러스 알파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허영만 원작 <날아라 슈퍼보드>는 2001년 10월19일, 이윽고 5탄 방영을 시작했다. 이번 환상여행편은 애니메이션을 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구성됐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30분
저팔계 랩에 맞춰, “치키치키 차카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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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수선>의 메인 테마를 맡은 최경식의 음악은 묘한 매력이 있다. <모래시계>로 대중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 바 있는 그의 선율은 때로는 과도하게 감상적이긴 해도, 그 아니면 발산할 수 없는 특유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가 지은 곡들은 바그너의 어떤 부분을 연상케 한다. 끊임없이 지속될 것만 같은, 동시에 아무리 지속되어도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끝없는 반음계의 흐름은 에로틱하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하다. 이른바 ‘무한 선율’은 아주 높고 먼 세계를 암시하면서 동시에 아주 낮은, 이 땅의 몸들의 부딪힘, 속절없는 몸부림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바그너는 후자의 것을 전자의 높이로 너무 드높이려 하는데, 최경식에게서 그런 느낌까지 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영화음악 작곡가들 중에서는 최경식의 것이 가장 그런 선율들의 느낌을 개성있게 잡아내는 것으로 보인다는 뜻. 어떻게 생각하면 유성영화 이후의 많은 영화음악이 반음계 화성의 미묘한 뒤척
[영화음악] <흑수선>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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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영화를 향한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는 소년 베리만은 어느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던 날 자기 형이 시네마토그래프를 선물로 받는 일이 일어나자 마구 울부짖었다. 결국 베리만은 그날 저녁 주석으로 만든 병정 인형 100개를 형에게 주기로 하고 시네마토그래프를 자기 소유로 만들고 만다. 이튿날 아침 그는 시네마토그래프의 손잡이를 직접 돌려보게 된다. 그때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흥분을 노년의 베리만은 결코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흥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뜨겁게 달구어진 금속의 냄새, 옷장 안의 좀약과 먼지의 냄새, 손에 잡힌 손잡이의 감촉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벽 위의 떨리는 직사각형 화면도 눈에 선하다.”<마법의 등>은 스웨덴의 거장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이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쓴 책이다. 여기서 베리만은 일흔살이 거의 다 된 노령임에도 불구하고(이 책은 베리만의 나이 68살이 되는 1986년에 완성
잉마르 베리만 <마법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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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영상물로 변신한 ‘해리 포터’ 열풍이 지금 전세계를 항해 휘몰아치고 있다. 소설에서 출발하여 영화와 게임, 캐릭터상품으로 발전하는 전형적인 ‘원 소스 멀티 유징’의 전철을 착실하게 밟고 있는 이 작품은 한국에서 쉽게 쓰이는 비유인 ‘자동차 몇 만대 수출량’에 비견되는 또 하나의 대박상품임에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가장 알기 쉬운 이 투자대비 수익률만으로 콘텐츠를 보는 것은 학생이 수학문제를 풀 때 참고서에 나와 있는 답만 베끼겠다는 생각과 똑같다.올해 가장 주목받았던 애니메이션인 <슈렉> 역시 성공한 콘텐츠상품답게 제작사인 ‘드림웍스’의 상업적 부와 함께 자사의 기술을 전세계에 홍보하는 등 여러 부수적인 개가를 올렸다. 하지만 ‘해리 포터’가 <슈렉>과 다른 점은 이 작품은 ‘영국’이라는 한 나라의 이미지를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한 나라가 가지는 문화의 어느 특정한 요소 하나만으로 판단될 수는 없겠지만 문화마다 타문화사람이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살아있는 감정, 문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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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화 칭찬을 한 것에 대한 앙갚음(?)인지 위 만화집이 뒤늦게 내게 전해졌다. 올해 4월에 출간되었으니 반년도 더 지난 셈인데 그 사이 4쇄까지 펴냈으니 걱정할 것 없어 다행이기는 하다. 사실 이 만화책 술턱을 일찌감치 얻어먹기는 한 셈이다. 한쪽으로 실내 낙시터가 있고 민물찌개탕이 종류별로 일품이었던 일산의 한갓진 명물음식점에서 작곡가 김민기가 후배 노래평론가 김창남의 영국 연구교수행 환송을 겸해 마련한 자리에서였다.야, 은홍이가 상을 다 받으니(이 책은 상금 500만원짜리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이다) 민주주의가 되긴 됐구나…. 김민기는 그렇게 흔쾌히 웃어주었지만 그의 운동권 만화보다야 사람 됨됨이를 훨씬 더 좋아했던 나로서는, 물론 축하할 일이되 긴가민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글쎄 만화가 얼마나 좋아졌을까….‘됐냐? 00야----!!!!!’로 끝맺고 있는 ‘술꾼 이은홍, 자필 이력서’에는 ‘스스로를 노동운동가라 착각하고…(중략) 1989년 결혼 후에야 전문 만화가로서 자기
이은홍 그리고 씀 <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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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사쿠이시는 내게는 제법 신비로운 만화가이다. 그 신비란 ‘추앙’이라기보다 ‘미스터리’에 가깝다. 80년대 후반에 나온 그의 대표작 <고릴라맨>(학산문화사 펴냄)은 고단샤 만화상을 수상할 정도로 일본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수상스럽지만 강한 남자 ‘고릴라맨’을 주인공으로 한 학원 액션물로, 예상을 살짝살짝 빗나가는 개그 터치에 독특한 청춘물의 뉘앙스도 겸비하고 있어 나 역시 즐겁게 읽었다. 90년대 후반 국내에 번역되어 나오자 당연히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했는데, 이상스럽게도 그들은 이 책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일진회’ 파동을 만들어낸 <로쿠데나시 블루스>(최근 ‘비바 블루스’라는 제목으로 정식 번역), <오늘부터 우리는> <상남 2인조> 등 비슷한 계열의 만화들이 해적판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는데도, 이 만화는 유독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무엇 때문일까? 내가 볼 때 이 만화가 훨씬 재미있는데. 왠지 무덤덤해
청춘 록만화, <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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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뿌리>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으로 두번 콩쿠르상을 받은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집. ‘인간이라고 하는 거대한 허영에 대한 신랄한 탄핵’이라는 말처럼, 로맹 가리의 소설은 인간이라는 종의 비애를 돌아보게 한다. ‘생의 비리고 안타까운 아름다움’을 그린 <모든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빠른 호흡과 거친 말투로 독특한 느낌을 던져주는 <몰락>, 인간의 욕심을 공격하는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 등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의 처절한 육탄전을 맛볼 수 있다.
[책]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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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라면 나직하게 말을 걸어오듯 흐르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 같은 클래식 연주가 귀에 익지만, 첼로 어쿠스틱스는 첼로를 비롯한 현악기의 소리가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새삼 일깨운다. 이들은 재즈 첼리스트 요시히로 기카와를 중심으로 바이올린, 피아노, 퍼커션의 4인조로 구성된 일본의 첼로 앙상블 그룹. 피아졸라의 애수어린 열정을 재해석한 <Liberte Tango>, 첼로의 피치카토와 피아노의 서정적인 즉흥연주가 어우러진 <AURORA> 등 재즈와 뉴에이지, 클래식을 넘나드는 사운드가 들려준다.
[음반] 첼로 어쿠스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