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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질 들뢰즈는 장 뤽 고다르를 접속사 ‘그리고(et)’의 작가라고 말한 바 있다. 고다르의 영화가 규정된 동사나 명사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무분별한 결합이자 모든 것을 변주하는 기제라는 뜻이다. 교과서적인 관점에서 고다르의 작업은 영화 문법을 해체한 혁신적 영화로 이해되기 쉽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기존의 원리를 해체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고다르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무관해 보이는 대상과 의미를 끝없이 접속하게 하는 ‘그리고’의 몽타주를 실천한 작가이다. A와 B를 인과율이나 동일성으로 연결하지 않는 몽타주의 실행은 역설적으로 모든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 그의 영화가 남긴 궤적에서 우리는 잠재적으로 무한히 조합되고 변모하는 영화의 자의적 가능성을 배운다. 이처럼 영화가 여전히 비정합적이고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난폭한 몽타주의 장소라 믿는 이들이라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시네필 전주’ 섹션의 상영작들을 주목해봐도 좋을 것이다. 아래의 목
JeonjuIFF #3호 [기획] 난폭한 몽타주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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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A.I.> A.I. at War
플로랑 마르시/프랑스/2021년/107분/프론트라인
불에 타 식별 불가한 사망자. 건물 잔해에 깔린 백골. 포대 자루에 넣어 짐처럼 운반되는 시체들. 그리고 이런 광경이 낯설지 않은 주민들. ISIS가 야기한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이라크 모술과 시리아 라카의 모습이다. 한편 반정부 시위인 노란 조끼 운동이 한창인 파리에서는 경찰이 쏜 고무탄에 시민의 눈과 손이 처참히 파열되고 있다. <전장의 A.I.>는 감독 플로랑 마르시가 이 전장들의 실황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주인공은 몰티즈만한 A.I. 로봇 ‘소타’ . 영화는 주로 감독과 소타의 만담 같은 대화로 이뤄진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소타가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의 일종으로…”라며 사전적 정의를 늘어놓는 식이다. 혹은 시신들이 묻히는 황야를 보고 저곳은 농장이라며 엉뚱한 답을 내놓기도 한다.
소타가 읊는 지식은 인류가 구성해낸 최소한
JeonjuIFF #3호 [추천작] 플로랑 마르시 감독, '전장의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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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
신수원/한국/2021년/109분/코리안시네마
49살인 지완은 세 번째 영화를 내놓은 후 영화감독으로서의 미래에 대해 고민에 빠진다. 어렵사리 내놓은 신작 영화는 관객이 찾지 않고, 오랜 기간 함께했던 동료 프로듀서는 영화를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선언한다. 생업이자 꿈인 영화 활동과 가정 사이에서의 갈등도 더해진다. 그 무렵 지완은 영상자료원의 의뢰를 받아 영화 필름을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한다. 지완이 복원해야 하는 필름은 한국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영화 감독인 홍은원의 1960년대 작품 <여판사>. 오래된 필름은 검열로 부분부분 잘려 있고, 음성은 일부 소실되었다. 지완은 <여판사>의 재구성에 필요한 자료를 좇는 과정에서 홍은원 감독의 생애와 영화인으로서의 고뇌를 마주한다.
<오마주>의 묘미는 주연을 맡은 이정은의 담담한 연기에 있다. 소리내 울 법한 상황에도 괜찮다 털어내는 그녀의 모습에 관객은 어느샌가 마음
JeonjuIFF #3호 [추천작] 신수원 감독,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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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 애니메이션> ANIME SUPREMACY!
요시노 고헤이/일본/2022년/128분/월드시네마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꿈이 있다. ‘패권 애니메’, 즉 시청률 1위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이다. <대결! 애니메이션>은 ‘패권 애니메’를 제작하기 위한 분투기를 그린다. 신인감독 사이토 히토미는 첫 작품 ‘사운드백: 연주의 돌’을 완벽하게 선보이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만 일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천재 감독 오지 치하루와 시청률 경쟁을 펼치는 상황에서 프로듀서 요키요사는 작품성보다 상품 가치를 중시하고, 스탭들은 젊은 여성감독인 사이토를 무시한다. 그럼에도 사이토에게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자 하는 충만한 의지가 있다.
어떤 애니메이션은 영웅이나 마법을 믿지 않는 아이에게도 지난한 삶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애니메이션 한편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장면은 감동을, 실제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이
JeonjuIFF #3호 [추천작] 요시노 고헤이 감독, '대결!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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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로 근무하는 경아(김정영)는 독립한 딸 연수(하윤경)가 늘 걱정이다. 어리게만 느껴지는 연수가 혹여 다치지는 않을지 남자친구를 만나 사고를 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다. 그런 경아의 기우가 현실이 된 것일까. 어느 날 연수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닥친다. 집요하게 재회를 요구하던 전 남자친구가 둘만의 은밀한 영상을 인터넷상에 유포한 것. 타인의 눈빛이 두려워진 연수의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연수와 경아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긴다. N번방 사건 이후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논의는 공론화 되었지만 피해자의 일상 회복은 여전히 요원하다. 김정은 감독은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 다루면서도 모녀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피해자의 회복 과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 전주국제영화제를 다시 찾았다. 노량진의 임용고시생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청춘을 돌아본 단편 <우리가 택한 이 별>(2015),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함께 하며 우정을 쌓아간 두 여성의 이야기 <야간근무>(20
JeonjuIFF #2호 [인터뷰] '경아의 딸' 김정은 감독, 디지털 성폭력을 맞닥뜨린 모녀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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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개새끼>, <관종쓰레기>. 홍다예 감독을 설명하는데 이만큼의 적절한 시작은 없을 테다. 이전의 영화 제목들처럼 홍다예 감독은 속내를 감추는 데 취미가 없다. 그녀의 연출론은 영화에서 오직 진심만을 전달하고 싶다는 것. <잠자리 구하기> 역시 본인의 감정적 서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학생을 오직 성적으로만 규정하는 사회에서 자아를 상실해가는 고3의 일기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어서 과거의 자책과 현실의 고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20대 중반의 참회록까지 자기 파괴의 정동이 거짓 없이 펼쳐진다. 그러나 <잠자리 구하기>의 진심은 비관적인 넋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조리의 사회를 살아가려고 미약하게나마 소생하는 힘에의 의지. 혹은 그 의지를 잃은 동료들을 향해 건네는 도움의 손길. <잠자리 구하기>는 친구, 가족, 자신의 과거를 구원하려는 강렬한 성장통으로 확장된다. <잠
JeonjuIFF #2호 [인터뷰] 20대 청년의 반성장 보고서, '잠자리 구하기' 홍다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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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자인 자신을 선주(船主)라 비유한 한 남자가 있다. 태흥영화사의 고 이태원 전 대표다. 그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술회하는 <중앙일보>의 연재 시리즈 ‘영화 한편 보고 가세나’에서 “선장은 물론 감독이다. 제작자로서 나는 촬영에 들어가면 감독에게 전권을 넘긴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원칙하에 그는 회사를 설립한 1984년부터 2004년까지 20년간 총 36척의 배를 띄웠다. 그 배들 중 몇척은 다른 곳에서 온 배들과 함께 큰 파도를 만들어 부산에 도착한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이 파도를 일컬어 ‘코리안 뉴웨이브’라 명명했고 전세계에 한국영화의 흐름을 조명했다. 2022년 여전히 그 파도는 유효할까?
마스터에 대한 예우, 신인에 대한 지지
영화 제작자인 자신을 선주(船主)라 비유한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대표다. 그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술회하는 중앙일보의 연재 시리즈 <영화 한편 보고 가세나>에서 “선장은 물론 감독이
JeonjuIFF #2호 [기획] 태흥영화사, 메타픽션 유니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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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야르 협곡> BABI YAR. CONTEXT
세르히 로즈니챠/네덜란드, 우크라이나/2021년/121분/마스터즈
“말로 설명할 수 없으며 말해질 수도 없다. 천재적인 조각가만이 그녀의 형상과 감정을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비탄과 고통은 상상할 수 없었다.” 바비 야르 학살 피해자에 대한 목격자의 증언이다. <바비 야르 협곡>은 나치가 약 3만3771명의 키이우 거주 유대인을 집단 학살한 바비 야르 사건에 대한 사료만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추가 내레이션이나 인터뷰는 없다. 현장감을 극대화할 사운드 디자인만 덧씌운다.
영화의 목적을 ‘관객이 시대의 사건들과 대기를 직접 마주하고 경험하는 것’으로 설정한 감독의 의중에 따른 것이다. 나치의 키이우 점령, 소련군의 후퇴 및 탈환, 구소련 형성, 전범 사형 등 풍부한 역사적 맥락의 제시가 이를 돕는다. 그리고 이 속엔 늘 군중이 있다. 학살에 동조한 키이우 시민, 스탈린과 히틀러를 환영한 이
JeonjuIFF #2호 [추천작] 세르히 로즈니챠 감독, '바비 야르 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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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내가 사라졌다>
김진화/한국/2021년/108분/한국경쟁
삶에서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가. <윤시내가 사라졌다>를 보고 나면 이 뻔한 질문의 통속성과 심오함 모두를 붙잡고 싶어진다. 헤어진 연인을 속인 몰래카메라로 온라인 방송 시장의 재기를 노리는 VJ 장하다는 관심을 끌 수 있다면 사생활을 파는 일도 개의치 않는다. 그녀의 영혼은 현실이 아니라 댓글과 좋아요, 별풍선에 깃들어 있다. 평생 윤시내를 사랑했고, 그를 따라 이미테이션 가수가 된 장하다의 엄마 순이 역시 본명보다 ‘연시내’로 불리기를 희망하는 여자다.
어느 날 콘서트 직전에 가수 윤시내가 잠적하면서 덩달아 밥줄이 끊긴 연시내와 또 다른 이미테이션 가수인 ‘운시내’, 그리고 이제는 엄마의 고군분투 스토리를 라이브로 중계하려는 딸이 사라진 스타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이상한 동행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평생 우상의 그림자를 짊어지고 살아온 아마추어 가수들의 추레한 실생활이
JeonjuIFF #2호 [추천작] 김진화 감독, '윤시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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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동 집행위원장이 전주영화제의 안살림을 도맡은 것이 올해로 3년차, 그사이 전주를 비롯한 전세계 영화제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오프라인 영화제의 의미와 필요성을 자문했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투했다.
“참고 사례 없음의 나날들” 속에서 영화제 개최를 지속한 행보 뒤편에는 영화 제작자로서 길러둔 변수와 궂은일에 대한 이준동 집행위원장의 담력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위협에도 불구, 관객과 창작자의 안전한 대면 만남을 모색하는 한편 OTT 플랫폼을 통한 온라인 상영의 활로를 개척했던 전주영화제는 올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축제의 정상화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 지난 2~3년간 팬데믹은 물론 OTT 플랫폼의 대두로 영화, 그리고 영화 제가 맞닥뜨린 위기를 최전선에서 겪었다.
= 그게 전주영화제의 운명이고 나의 운명인 것 같다. 임명된 지 9일 후에 바이러스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 정신없이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요즘은 ‘다른 분이
JeonjuIFF #1호 [인터뷰]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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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3년차, 봄의 길목에서 시작되는 전주영화제는 ‘오프라인 행사 정상화’를 외치며 더이상 고요한 축제는 없을 것임을 공표했다.
마침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면서 전진수, 문석, 문성경 프로그래 머는 성대한 행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4월28일 전주영화제가 개최되기 전, 세 프로그래머와 함께 새롭게 그려질 전주영화제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 올해 전주영화제에선 오프라인 행사를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영화제 풍경이 지난 2년과는 확연히 달라지겠다.
문성경 지난해에는 영화제가 열리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올해는 정말 축제 느낌이 날 것 같다. 예정된 해외 게스트는 60명 정도인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배우 저스틴 민, 전주시네마프로젝 트의 네 감독, 국제경쟁 섹션 심사위원인 클라리사 나바스 감독 등이 현재 리스트에 올라 있다.
문석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70%만 열었던 좌석도 100% 오픈하게 됐다. 사실상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전주돔이
JeonjuIFF #1호 [인터뷰] 전진수, 문석, 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