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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음 백구
2001-03-24

비디오/메인과 단신

내 동무 백구야!

2000년, 감독 성백엽 장르 애니메이션(손오공) 명불허전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도 될지 모르겠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인 80년대 초반. 험난한 시대탓에 곡절많은 대학생활을 하던 외삼촌이 한분 계셨는데, 졸업후 <창작과 비평사>(창비)라는 출판사에 다니고 계셨다. 그 덕에 필자가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혜택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창비에서 내놓기 시작한 아동문고 시리즈를 몽땅 공짜로 가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중에는 어린 내 감성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바로, 권정생, 손춘익 님과 같은 분들의 작품이었다. <몽실언니>, <마루 밑 센둥이> 등으로 대표되는 그 작품들은 아마 번역물에 그치던 동화의 세계를 우리네 삶과 정서로 다듬어내기 시작한 순수한 한국 아동문학 1세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주로 전후 빈곤한 민중들의 순박한 삶을 다루는 그 작품들은 외국동화의 이국적 정서에 젖어있던 어린감성에 새롭게 각인되는 매우 강렬하고 아름다운 리얼리즘 문학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국산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방영되면서 시청자와 각계의 호평을 받아 비디오로 출시된 <하얀마음 백구>시리즈는 정말이지 간만에, 필자가 어린 시절 받았던 그 감성을 새삼 상기하게끔 만드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조도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어린 남매와 하얀 진돗개 백구와의 우정을 총 13편의 시리즈로 담은 이 작품은 도시로 팔려간 진돗개가 7개월만에 다시 주인을 찾아온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던 솔이와 동이 남매는 어느날 숲속에서 하얀 진돗개 새끼를 발견해, ‘백구’라 이름지어 키우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고기잡이를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병약한 솔이는 진돗개 ‘백구’에 유난히 애정을 쏟게된다. 하지만 그나마도 생활이 여의치 않아지자 동이는 백구를 도시의 투견꾼에게 팔게되고 이때부터 백구의 험난한 여정이 펼쳐진다. 이야기 전반적으로는 솔이와 백구의 순박하고 눈물겨운 우정을 전제로 하지만, 백구의 투견생활에서부터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짜임새있게 구성된다. 물론 드라마 자체는 착한 사람과 동물이 맺는 우정에 관한 뻔한 드라마일지 모른다. 특히, 백구의 앙숙으로 등장하는 투견, 블랙과의 결투나 대립구도는 다소 길다싶긴 하다. 하지만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과 문화를 평정하고 있는 일본만화영화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미와 재미가 <…백구>에는 있다. 섬세하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조도의 풍광은 물론이고, 친근감과 사실감이 살아있는 솔이와 동이 그리고 순박한 조도 사람들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정감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구수한 사투리로 더빙된 목소리도 독특한 재미를 전한다. 일본애니메이션만큼의 세련됨이나 스펙터클한 기교는 덜하지만, 대신 <…백구>의 미덕은 소박한 우리네 삶에 근거한 이야기를 우리의 방식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정지연/ 영화평론가 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