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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부산간다 - 셋쨋날
2001-04-06

불멸의 고향, 소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세쨋날

아침 11시 국제호텔 나이트클럽 | 동수의 죽음

“도루코 장례식 때 못 가서 미안하다. 일이 너무 바빠가꼬….”

“많이 컷네… 동수.”

“원래 키는 내가 좀더 컸다 아이가. 니 시다바리 할 때부터.”

“간단하게 말할께.”

“복잡하게 말해도 된다.”

부산을 떠나기 2시간 전이다. 이틀 전과 달리 공기가 오슬오슬하다. 푸근한 해풍은 온데간데 없다. 국제호텔 앞은 버스 한대가 지나가도

복잡할 정도로 좁은 일방 통행로다. <친구>팀은 3개월 촬영기간 내내 이곳에서 잠자리를 해결했다. 식사는 곽 감독이 뉴욕에서부터 즐겨먹었다는

꼬리곰탕을 주메뉴로 하는 호텔 뒤쪽 한 식당. 한참 북적거리다 요즘엔 통 손님이 없으니 그곳의 ‘아지메’는 올 4월부터 또다른 영화촬영이 있다고

해서 그때만 손꼽는 눈치다.

“많이 묵었다 아이가. 고마해라.” 동수가 회칼을 맞고 널브러지는 빗속 하이라이트 장면을 찍은 것도 호텔 앞. “대형 강우기 2대에다…, 크레인까지

동원해 가 4일 내내 찍었으니 큰 공사였십니다. 동선도 복잡했고, 애초부터 이 장면은 촬영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찍겠다고 생각한 장면입니다.”

배우와 스탭 모두, 최고조로 물이 올랐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감독은 천으로 해를 막고서 이 장면을 찍었다. “빗방울이 반짝반짝 제 빛을 내는

거는 전적으로 황기석 촬영감독과 신경만 조명감독 공이지요.” 동수를 찌르는 액션의 사운드 이펙트가 듣기에 좋지만 너무 오버한 것 아니냐고 했더니,

“안 그러면 음악에 묻힐테니까. 그리 했십니다” 한다. 이 장면의 경우 주어진 상황에 비해 결과물이 만족스러운 눈치다.

“그럼, 어디까지가 진짜예요?” 맨 마지막으로 미뤄놓은 질문을 던졌더니 곽 감독이 담담하게 말한다. “동수가 죽었다는 소식은 유학 갔다와서

들었습니다. 근데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취재를 하다, 가까운 친구한테서 그간의 사정을 듣고나니 이야기가 쉽게 안 풀리지 않겠구나 싶었십니다.”

젊은날 친구들이 치러야 했던 예정된 비극의 전말을 듣고서 가슴 먹먹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걸 또 이야기로 옮겨야 한다니, 곽 감독의

그것은 곱절이었으리라. “중앙동 근처 육교 아래가 진짜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지요…, 비오는 날 대낮이었다는데. 영화에는 서른번 넘게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스물네 군데 찔렸십니다. 동수쪽 조직이 실제로도 많이 크니까, 준석이쪽에서 동수쪽 막내를 잡아다가 길거리에서 톱으로 다리를 잘라버렸다지요.

은혜도 잊지 않지만 복수도 잊지 않는 게 건달이거든. 얼마 안 되가 동수쪽에서도 볼링장에서 일하는 준석이 애들 몇명을 담가버렸지. 그러다 치고박고

치고박고 한 거이고…. 친구들한테 미안한 게 많지요, 막말로 하면 우리 얘기를 상업적으로 팔아묵은 거니까. 준석이는 쭉 경주에 있다가 지난달에

영등포로 옮겨갔는데 이제 4년쯤 남았습니다. 그동안에 신문에 난 <친구> 기사는 스크랩까지 해서 감방 안에서 자랑한답니다, 봐라, 내가 이런

놈이다. 뭐 이란다 카더라고.”

나고 자라난 골목과 사람들을, 그 공기를 불러내는 작업이 어디 그리 편하기만 했을까. 자신의 기억을 영화로 담아내는 일은 추억을 공유하는 동시에

추억 잃어가는 작업이다. 잊고 살아도 누구하나 비난하지 않는 ‘친구’. 십여년전 “니는 니처럼 살아라, 내는 내처럼 사께” 했던 친구의 말을

약속처럼 가슴에 새긴 감독은 “그놈 나와도 다시 깡패짓 할 깁니다. 내는 영화 찍는 게 일이고 지는 그리 사는 게 지 일이니까네”라는 자조적인

말을 마지막으로 흘렸다. 바야흐로 꽃피는 동백섬엔 봄이 왔건만, 친구 떠난 부산항엔 갈매기만 슬피 울고 있었다.

▶`친구`

따라 부산간다

▶`친구`

따라 부산간다 - 첫쨋날

▶`친구`

따라 부산간다 - 둘쨋날 I

▶`친구`

따라 부산간다 - 둘쨋날 II

▶`친구`

따라 부산간다 - 둘쨋날 III

▶<친구>

배우 이재용이 본 ‘부산’

▶<친구>

촬영감독 황기석이 본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