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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은 아름다워
2001-04-06

비디오카페

어제는 마치 영화 <스모크>의 한 장면 같은 일이 있었다. 고객 한분이 <하나 그리고 둘>을 빌리면서, “저, 여기 온 지 오래되는데요. 제 파일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네요” 했다. “그러세요? 저도 왠지 낯이 익네요.” “저는, 기억이 나는데요.” 나는 자판을 두드리며 “근데, 성함이?” “필감성인데요….” 순간,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다. 아, 내가 그리도 기다려온 옛날 옛적의 고객….

비디오대여점이란 곳은 많은 이들이 주거지에 따라 단지 스쳐지나가는 곳일 뿐이지만, 특별한 만남으로 오랜 우정을 쌓아가는 이들이 때론 있을 수 있다. 지금은 그 인연을 소중히 여겨 ‘황혼에서 새벽까지’란 팀을 만들어놓았지만, 초창기엔 그저 떠나보냈을 따름이다. 올해 들어 부쩍 5년 전에 고객이었던 그가 가끔 생각났는데, 마침 어제 그가 다녀간 것이다.

95년 당시, 고객이었던 필감성군은 영화를 골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은데다 훤칠한 미남이어서 나의 눈길을 끌었다. 대만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직장 때문에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전혀 외국인이란 생각이 안 들 만큼 우리말을 잘하는 그는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 휴학한 뒤 한국의 비디오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국 곳곳을 여행하는 등 젊음을 누리던 멋쟁이였다. 우리 대여점에서 시간을 쪼개 대화를 나누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시사회를 같이 가는 등 좀 친해졌을 즈음, 그와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문득 상념에 빠질 때마다 ‘그는 지금 한국에 있을까? 대만? 아님 미국? 혹시 그 방랑벽에 세계일주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등등 몹시 궁금하던 차에 5년의 세월이 흘러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영화 <무사>의 연출부로 계속 중국에 있었다고 한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일상의 사사로운 기쁨을 주는 이곳…. 내가 어찌 이곳과 이곳을 거쳐간 고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주현/ 영화마을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