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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영화제 - 한국영화회고전
2001-04-10

억세고 귀여운 악녀들 - 한국영화회고전

60년대 한국 코미디영화에는 남성과 여성의 갈등과 충돌, 협상과 화합의

소재가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여성으로 복장 전환하는 남성, 여성의 직업을 취하는 남성, 강한 여성과 약한 남성 커플 등이 빚어내는 소동들은,

근대화와 더불어 진행된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개념 및 구성 변화라는 의미심장한 화두를 펼쳐 놓는다.

<남자와 기생>

감독 심우섭 1969년 출연 구봉서, 도금봉, 허장강

60년대

코미디영화를 대표하는 심우섭 감독의 복장전환코미디들 및 <남자식모> <남자미용사> 등 ‘남자 연작’ 중 하나. 이 영화는 이른바 ‘여자

짓’을 즐기며 직장에서 10원을 받고 양말과 스타킹을 빨아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해고당한 구봉서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고심 끝에 기생이

되기로 결심하고, 요정에서 한복을 입고 ‘여성성’을 수행하며 뭇 남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남자와 기생>은 여성으로

복장전환하고 성 역할을 바꾼 남성의 모습을 통해 ‘여성’이라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적인 것’을 가리키는 재현체계를 통해서 구성되는

것이며 인용과 반복을 통해서 수행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시종일관 성과 젠더를 둘러싼 포복절도할 웃음거리들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또 당시 근대화 과정 속에서 서로 경합하고 있는 전통적인 것/가치/성역할과 근대적인 것/가치/성역할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근대화와

성별분업이 맺는 역동적인 관계들을 성찰할 수 있는 한 계기를 마련해 준다.

<제트부인>

감독 이규웅 1969년 출연 도금봉, 김진규, 김승호

마치 제트기처럼 움직임이 빠르다하여 제트부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그녀는 ‘일수놀이’를 하는 사채업자다. 말단 사원인 남편의 박봉

때문에 사채업에 뛰어들게 된 그녀는 친한 친구의 어려운 사정까지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돈을 회수하려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부부의 침실에

뛰어들기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독한’ 여자다. <젯트부인>은 근대화, 자본주의화가 심화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가계수익에의 기여, 그리고 그에 따른 여성들의 발언권이 증가하면서 코미디

장르의 주소재로 등장하게 된 ‘강한 여성과 유약한 남성’ 커플, ‘전통적인 가부장제 성 역할의 전도’라는 패턴을 따르고 있다. 특히 <젯트부인>에는

당시 새롭게 부상한 ‘또순이’ 유형의 대표적인 아이콘인 도금봉이 주연을 맡고 있는데, 영화 <또순이>의 또순이가 억척스럽고 적극적인 노동과

알뜰살뜰한 살림으로 결국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면 제트부인은 ‘자본주의의 악의 꽃’이자 가부장적 질서를 조롱하는 위험한 ‘또순이’다.

결국에는 장르의 규칙에 따라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따라서, 다시 집으로 아내로 모성으로 그리고 박봉의 살림 속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말띠신부>

감독 김기덕 1966년

출연 황정순, 엄앵란, 남미리, 최지희, 허장강, 신성일, 김희갑, 박암, 윤일봉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고 억세다(?)’. ‘백말띠 여자’에 대한 이러한 주술적이고 성화된(sexualized) 사회적 믿음은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작동하는 편견들 중 하나 <말띠신부>는 바로 1966년 병오년 백말띠 해를 맞아 이렇게 사회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젠더화된(gendered) 편견 때문에 특히 그

편견의 희생자로서 그것을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말띠 여성들의 필사적인 노력과 거짓말, 그리고 그를 둘러싼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거짓 임신을 빌미로 남편들에게 온갖 봉사와 금욕을 강요하거나 친구를 성희롱하는 사장을 혼쭐내는 말띠 신부들. 이 ‘억세고

귀여운 악녀’들을 등장시키는 서사는 그 자체로 말띠 신부에 대한 편견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그녀들의 적극성과 자발성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백말띠 해의 미신을 거부하기로 결단을 내리는 종결부를 통해서 여성들에 대한 사회·문화적 편견에 균열을 낸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국가권력을

대변하는 남성 산부인과 의사의 장광설은 산아제한이 국가적 이슈였던 당시의 정황을 반영하는데, <말띠신부>에서 산아를 둘러싼 여성의 몸은

이처럼 개인의 성욕과 가치관, 전통적인 사회적 믿음체계, 그리고 국가권력이 싸움을 벌이고 협상하는 공간이 된다.

<공처가 삼대>

감독 유현목 1967년 출연 황정순, 허장강, 조미령, 신성일, 고은아, 최남현

60년대 코미디 장르를 위시해서 ‘시민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폭넓게 재현되었던 ‘강한 여성과 약한 남성’ 커플들을

소재로 한 영화로 ‘작가’로 인정받은 유현목 감독의 작품으로서는 다소 이례적인 작품이다. 공주사는 뼈대있는 양반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이래 평생을 공처가로 살아간다. 그의 아들 공치산은 이따금 여성들의 권위에 쓸모없는, 곧 수포로 돌아갈 저항도 해보지만 하릴없이 ‘이 집안의

전통’에 따라 공처가다. 강한 여성들이 가부장의 위치를 점유하면서 벌어지는 남성과 여성의 갈등을 주소재로 채택하면서 당시 사회의 성적,

젠더적 변화의 양상들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는 <공처가 삼대>가 흥미로운 점은 그 전도된 성 역할의 원인을 근대적이고 서구화된 문화의 유입이

아닌 봉건 신분사회의 데릴사위 전통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핵가족이라는 서구적인 근대적 가족 모델이 이 불균등한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오는 골칫거리들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60년대 한국사회가 전통적인 것과 젠더를 어떻게 관련지으면서

새로운 가족 형태 및 가족 이데올로기를 재현하고 구성해내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권은선/ 한국영화회고전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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