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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3]
사진 이혜정문석 2001-04-20

<승부>의 허종호 인터뷰

“승부의 양면을 보여주고 싶다”

영화를 그저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수단 정도로만 생각했던 허종호(26)씨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들어가게 된 사연은 평범하지 않다. 대학 2년을 마치고 들어간 군대의 고참 병사는 열혈 영화광이었다. 그는 허씨에게 “너 <블레이드 러너> 봤냐? <블러드 심플>은… ?” 등등 질문을 퍼부으며 시종 영화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고참이 휴가 다녀올 때 들고 왔던 <필름아트> 같은 책이나 영화잡지가 어느새 허씨의 소일거리가 됐을 때, 그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과연 뭘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고, “그림이나 음악은 몰라도 영화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발상을 하게 됐다. 결국 그는 <씨네21>에서 본 기사를 떠올리며 제대 직후 영상원에 입학해 4학년이 된 지금까지 점점 어려워지는 영화의 세계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뉴스데스크>라는 작품을 진출시키기도 했다.

-<승부>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같은 데 보면 경쟁이나 대결을 묘사하면서 한쪽은 선, 다른 쪽은 악, 이런 식으로 이분법 논리가 득세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살아가다보면 결코 나쁘지 않은 두 사람이 맞붙어 승부를 겨루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서 아니겠나. 남을 이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선수간의 대결을 한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두 사람에게 모두 공정한 시점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권투 경기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의 상황을 교차해 배치했다.

=권투 경기장에서 두 선수가 맞붙어 한쪽이 이긴다는 것만으로는 내 생각을 보여주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의 총체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과거와 미래로 이어지는 삶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작품 구상은 어떻게 하게 됐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데,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마라토너들의 삶을 보여준 적이 있다. 해서 마라톤영화를 찍을까, 하는 생각도 한때 했었다. 하지만 상호간의 직접적인 마찰이 일어나는 스포츠인 권투쪽이 더 나을 듯했다. 작품 준비를 위해 나나 촬영감독 등 스탭과 연극원에 다니는 배우들은 현재 학교 근방에 있는 ‘김광선 권투도장’에 나가서 운동을 하고 있다.

-한 선수는 경기에서 패한 뒤 권투를 그만둔다고 한다. 어차피 승부의 세계가 선과 악의 대결도 아니고 삶 속에서 일상적인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비장할 필요가 있었을까.

=시나리오에도 보이듯 그 선수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가정환경조사서의 직업란에 ‘복서’가 아니라 ‘회사원’이라고 적는다. 그는 힘들기만한 권투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써놓고 나니 다른 생각도 들고 있다. 혹시 그런 시각은 나 같은 외부인의 관점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실제 복서들은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즐겁게 운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 시나리오는 초고이기 때문에 좀더 고민해볼 것이다. 특히 양 선수의 과거 이야기 부분은 보다 세밀하게 취재해본 뒤 이야기를 좀더 다듬을 계획이다.

-작업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7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가장 어려운 것이 권투 링을 구하는 일이다. 태릉선수촌이나 성남체육관 등을 알아보는 중인데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해서 스튜디오를 빌려 링을 설치해야 할 것 같다. 스탭은 영상원 친구들로 구성했다. 배우들이 권투도장에서 실제 스파링을 해봤는데 별 것 아닌 듯한 주먹 한방이 엄청나게 아프더라고 전한다. 사실감 넘치는 액션을 위해선 배우들이 서로 진짜 펀치를 날려야 하는데….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 계획인가.

=사실 아직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뛰어난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고 나 자신과 배우, 스탭, 그리고 관객이 만족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 공부를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 중 기억나는 한마디가 있다면.

=“한 컷의 중요성을 깨달아라.” 편집할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아쉬운 부분이 없이 완벽을 기해 촬영에 임해야 한다는 것인데, 정말 절감하고 있다.

시놉시스

권투선수인 ‘홍수환’(이름 미정)과 ‘문성길’(미정)은 밴텀급 한국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권투 경기를 갖는다. 화려한 테크닉과 빠른 푸트워크를 자랑하는 홍수환, 강한 턱과 펀치력을 보유한 전형적인 인파이터 문성길의 경기는 초반부터 격렬하다. 문성길은 발이 무거운 홍수환의 허점을 파고들어 강펀치를 작렬시키며 다운으로 몰고가는 등 우세한 경기를 펼치지만 근성과 체력이 우세한 홍수환 역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반격을 가한다. 권투 경기 장면 중간중간에는 홍과 문의 인터뷰와 함께 일상도 소개된다. 애인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머뭇거리는 홍에게나, 딸의 맑은 눈망울을 저버리지 못하는 문에게나, 챔피언 벨트는 절박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결국 승부는 마지막 라운드로 가고 두 권투선수의 투혼은 한계 지점에 다다른다. 경기의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순간, 승부를 가르는 펀치가 작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