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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4]
사진 이혜정문석 2001-04-20

<가리봉 슈퍼맨>의 임성운 인터뷰

“리얼리티? 거짓말을 해 보고 싶다”

‘caraxx’라는 아이디를 쓰는 임성운(30)씨는 예상대로 프랑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추종자다. 그가 연세대 영화동아리 ‘연세 영화패’에서 활동하게 된 것 또한 카락스의 여파 때문이었다. 또렷또렷하면서도 낙천적일 듯한 첫 인상과는 달리 한때 그는 존재론적 질문을 끌어안고 방바닥을 뒹굴던 나날을 보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을 머리 위에 얹어놓은 채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하던 어느 날 그는 친구로부터 비디오테이프를 받았다. 카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가 바로 그 영화. 아직 개봉되기 전이었던 그 영화를 보는 순간 그는 엄청난 마력을 느꼈다. 수없이 반복해서 보면서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졸업 뒤 영화아카데미 14기로 들어간 그는 지난해에는 아카데미 선배이기도 한 박흥식 감독 밑에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스크립터로 일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아는 사람 중 엄청나게 잘 사는 사람이 있었다. 으리으리한 집에서 무지막지하게 잘 살았는데 어느 날 그야말로 홀라당 망했다더라. 예전엔 당당하게 살았을텐데 지금 기분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사춘기적 질문도 이야기 속에 녹아들었다. 지난해 12월 중순쯤 구상했는데 처음엔 슈퍼맨 옷을 입은 50대 아저씨가 배를 척 내밀고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떠올렸고 거기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상당히 코믹한 분위기이면서도 무거운 이야기가 섞여 있다.

=분위기를 코믹하게 이끈 것은 다소 의도적이었다.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도 있다 싶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단편영화를 보면 무겁고 난해하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과 경향이 있다. 존재론적인 문제를 계속 던지다보면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나 스스로에 도전하기 위해서라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무기력해진 슈퍼맨은 IMF 등으로 힘빠진 남성을 가리키는 것인가.

=물론 그런 점도 있다. 하지만 그보단 거짓말을 해보고 싶었다.

-거짓말이라니.

=요즘 상업영화건 단편영화건 보면 리얼리티를 꽤나 강조한다. 상당히 이건 뿌리가 깊은 것 같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고 싶었다. 아주 황당한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거짓말치곤 꽤나 실감난다.

=거짓말이지만 형식적으로는 거짓말 같지 않은 형식으로 보여주고 싶다. ‘공들인 거짓말’이랄까. 극중 슈퍼맨의 실종을 다루는 TV프로그램을 등장시키는 것도 거짓말을 실제같이 강조하기 위해서다.

-가벼움과 무거움이 부조화를 이루는 것 같긴 하다.

=처음 내 생각대로 시나리오 쓰고나서 보니 완전히 시트콤이었다. 웃기긴 웃긴데, TV 코미디 프로그램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더라. 한심해져서 자숙을 하는 마음으로 새로 시나리오를 썼다. 말로 풀어줄 수 없는 머릿속의 이미지를 그려보면 사실 이 영화는 좀 진지하다. 극중 슈퍼맨이 느끼는 감정은 진지한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최대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할 것이다. 무겁지도 않고 코미디도 아닌 스타일로.

-막상 제작하는 데는 까다로운 점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 기술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한다. 슈퍼맨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에서는 와이어 액션도 해야 하고 일식 장면이라든가 하는 곳에서는 컴퓨터그래픽도 필요하다. TV프로그램도 실제와 똑같이 하고 싶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 같다. 그같은 기술적 완성도가 있어야만 이 영화가 여느 시트콤이나 코미디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좌충우돌하는 분위기나 이미지 위주의 구성이 카락스적이다.

=한 7년 정도 그를 좋아했는데, 좋아한다는 것과 내가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그 역시 나와 나의 것을 찾아가는 길을 가다 잠시 들르는 경유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는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가.

=예전의 작업들은 관념적인 경향이 다분했다. 하지만 언제가부터 이것들이 내 영화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모사랄까. 책으로 영화를 배운 선배들과 보면서 배운 후배 세대들과 달리 나는 중간지점 정도인 것 같다. 하여튼 책으로 배운 영화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에게 충실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시놉시스

정의를 위해 불굴의 투혼으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활약해온 슈퍼맨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TV 프로그램에서도 슈퍼맨 실종의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 시간이 지난 뒤 한때 슈퍼맨이었던 현석은 백수로서 생활을 영위한다. 예전과 달리 배가 튀어나오고 볼품없어진 현석은 여자를 위협하는 불량배를 만나도 예전처럼 당당하지 못하다. 결국 그는 ‘슈퍼 정력 팬티’ 광고의 모델 노릇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버린 자신의 인생을 비관한다. 현석이 슈퍼맨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보는 진희는 그에게 갑자기 은퇴해버린 이유를 묻는다. 현석은 일식이 있던 날, “갑자기 내가 슈퍼맨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내 의식이 내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하자, 그 순간부터 난 슈퍼맨으로서의 모든 능력을 잃고 말았어요”라고 이야기한다. 진희는 현석을 설득, 슈퍼맨으로서 재기를 위한 훈련을 시킨다. 급기야 현석을 고층빌딩 옥상으로 데리고 간 그녀는 다시 하늘을 날아보라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