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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실버의 <리메이킹 에덴>
2001-04-20

SF라고? 천만에! 현실이야!

이 책은 과연 누가 인간 생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흔히 짐작하듯이 생식유전학을 끌고 나가는 것은 괴짜 과학자의 무모한 시도나 기술의 자체 논리가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자본의 힘과 자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는 디스토피아일 수도 유토피아일 수도 있다.

조홍섭 |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

하영미·이동희 옮김/ 한승 펴냄/ 1만원

지난 97년 첫 체세포 복제동물 ‘돌리’가 탄생했을 때 주간지의 표지를 떼지어 돌아다니는 히틀러가 장식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마돈나, 마이클

조던 같은 이름이 새로운 복제목록에 오르면서 공포는 묘한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신기술은 종종 공포와 함께 다가온다. 그러다가 두려움이 사그라든

자리엔 맹목적인 낙관이 들어서곤 했다. 처음 자동차가 발명됐을 때 사람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너무 빠른(시속 20km 정도였지만) 속도가

건강을 해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원자력발전소가 처음 나왔을 땐 전깃값이 너무 싸져 계량기가 불필요해질 것이라고 속단했다.

21세기는 생명과학의 시대다. 신의 권한이던 생명의 창조가 실험실에서 가능해졌다. 그 정점이 인간복제이다. 인간 유전자의 암호가 해독됐고,

동물도 식물을 꺾꽂이하듯 세포 하나를 잘라내 생명체로 키워낼 수 있게 됐다. 위험성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지만, 적어도 기술개발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한번 나온 기술이 위험성이나 나쁜 부작용 때문에 스스로 사라진 예는 없다. 돈이 벌리는 한 말이다. 게다가 생명과학은 가장 돈이 벌릴 분야

아닌가.

이제 기술도 있고 자본도 있다. 인간복제 기술이 어디로 튈 것인가. 상상력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이제껏 그래왔듯 공상과학영화와 소설은 이

기술의 미래를 얼마 전 개봉된 처럼 종종 허무맹랑하게, 또 가끔은 통찰력 있게 그려낼 것이다.

리 실버의 <리메이킹 에덴>은 탄탄한 전공 과학자의 빼어난 상상력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미리 얘기하지만 그는 인간복제 찬성론쪽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복제 불가피론’이다.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분자생물학과, 생태학과, 진화학과, 신경과학프로그램의 겸임교수인 그는 복제분야에서

저명한 생식유전학자이다. 이 책에서 그는 복제의 의미를 생물학과 생식학, 유전학의 관점에서 정확히 살펴보자고 주장한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볼 때 복제된 인간은 단지 나중에 태어난 일란성쌍둥이와 마찬가지”라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이 분야 다른 과학자들과 시각이 비슷하다. 인간복제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이 새로운 의학적 응용을 가로막는 암초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1990년 미국에서 커다란 윤리논쟁을 불러 일으킨 멜리사의 경우를 환기시킨다. 그의 부모는 치명적인 백혈병에 걸린 언니에게 골수를 이식해주기

위해 멜리사를 임신했다. 필사적으로 골수 제공자를 찾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장기 제공자로 쓰기 위해 아이를 가지는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결혼생활이 무언가 부족한 듯해서, 외동이가 외로울까봐, 성생활의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로 아이를 갖는

경우”보다는 숭고한 뜻 아니냐는 것이었다. 리 실버는 멜리사의 부모 같은 처지라면 누가 복제를 거부하겠느냐고 묻는다. 복제된 아이는 완벽하게

장기이식이 가능하다.

그는 정부나 사회 또는 과학자들도 복제기술을 통제하지 못할뿐더러,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한 이 기술로 인해 인류는 다음 밀레니엄에는 양극화된

새로운 인종들로 나뉠 것이라고 내다본다. 에덴동산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복제의 기술에 우호적인 이 과학자가 그려낸 에덴의

풍경은 비극에 가깝다. 그가 그린 2350년 모습은 이렇다. 복제기술과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은 자식의 유전자를 개량하려는 본성에 불을 붙인다.

그 결과 46개의 염색체를 가진 자연인과 세대마다 새로운 유전자 팩을 더할 수 있도록 고안된 특수한 염색체 한쌍을 추가해 48개의 염색체를

가진 부유유전자 계층으로 분화돼 간다. 운동선수, 연예인, 정치가 등은 이들에 의해 장악된다. 부유유전자 계층 부모들은 그들의 우수한 유전형질이

희석되지 않도록 자녀들에게 강한 압력을 넣는다. 사회적, 유전적인 이유로 계층간의 교류는 점점 줄어든다. 마침내 인간은 서로 생식이 불가능한

다른 종으로 나뉜다. 유전자의 98.5%가 같은데도 인간이 침팬지에게 연애감정을 느낄 수 없듯이 이들도 더이상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리 실버의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유전자보강산업이 3개의 대기업에 장악되면서 ‘호환’이 안 되면서 개량형 인간은 다시 4개의 종으로 나뉘고,

화성 정착촌에 적응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인종이 나타나면서 종분화는 가속된다.

이 책을 영화인에게 소개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생식기술의 현주소와 발전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공상과학에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일들이 병원과 연구실에서는 현실에서 이뤄지곤 한다. 폐경기가 끝난 여성이 임신을 하거나 죽은 남편의 정자로 임신을 하기도 한다. 쥐의

고환 속에서 불임인 남편의 정모세포를 이식해 정자를 생산해 임신하는 기술도 개발이 한창이다. 앞으론,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소포를 이용해 건조동결한

우수정자를 배달해 주는 서비스가 등장할 전망이다. 현실에도 못 미치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없지 않은가.

두 번째로 이 책은 과연 누가 인간 생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흔히 짐작하듯이 생식유전학을 끌고 나가는 것은 괴짜 과학자의

무모한 시도나 기술의 자체 논리가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자본의 힘과 자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는 디스토피아일 수도 유토피아일

수도 있다. 기술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인간복제를 포함한 유전공학의 문제도 공상과학영화만의 소재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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