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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드는 방법이 싸움 뿐이라면 싸운다”
2001-05-08

전주에서 만난 <북경자전거>의 왕샤오슈아이 감독

그의 영화를 스크린에서 쉽게 만날 순 없지만, 부산과 전주의 영화제를 부지런히 다닌 영화광이라면 왕샤오슈아이란 이름이 그리 낯설지 않을지

모른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북경 자전거>를 들고온 왕샤오슈아이는 지아장커, 장위엔 등과 더불어 지하영화 진영에서 활동하며

6세대 감독이라 불리는 중국의 젊은 감독군 중 하나다. <나날들> <머나먼 낙원> 등으로 9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한국관객을 만난 그는 지난해 전주에서 <극도한랭>을 공개했었다. 영화제 시작 전에 예매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북경

자전거>는 자전거를 매개로 만난 두 소년의 일상을 사실주의적 시선으로 들여다본 작품. 시골에서 베이징으로 상경한 구웨이는 자전거 배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자전거를 도난당한다. 베이징의 뒷골목에 사는 고교생 지안은 또래 친구들, 특히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전거가

필요하다. 자전거를 찾아헤매던 구웨이와, 동생의 입학금으로 몰래 구웨이의 자전거를 산 지안. 각각 다른 이유로 자전거가 절실한 두 소년의

만남과 갈등을 촘촘히 엮은 성장기 속에 중국사회의 현재를 투영한 이 작품은 올 베를린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왕샤오슈아이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북경 자전거>는 중국에서 상영금지 판정을 받은 상태. 베이징영화학교 출신인 왕샤오슈아이는

몇몇 동세대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93년 데뷔작 <나날들>부터 중국 정부와 불화를 겪어왔다.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가난한 두

연인을 통해 급변하는 중국사회의 풍경을 그려낸 <나날들>은 해외 평단의 주목을 받았으나 중국 정부의 상영허가를 받지 못했다.

<머나먼 낙원>은 상하이로 온 두 시골청년이 범죄세계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린 작품. 95년 말 완성된 뒤 빛을 보지 못하다가

99년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이 영화도, 젊은 행위예술가의 자살과 내면을 다룬 <극도한랭>도 역시 중국관객을 만날 수 없었다.

전작들에 비해 좀더 사적이라는 <북경 자전거>도 끝내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한 채 베를린영화제에 출품됐다가 괘씸죄를 적용받아

중국 상영이 금지됐다. 이처럼 오랫동안 불법 영화감독으로 낙인찍혀왔지만, 전주에서 만난 왕샤오슈아이는 의도적인 투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힘겨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 그들 개인의 내면”에 관심이 많을 뿐이라는 그는, 덤덤하고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영화담을 들려줬다.

<북경 자전거>는 중국사회의 일상에서 아주 보편적인 자전거를 소재로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가

있다면.

특별한 이유랄 건 아니고, 내가 살아온 중국이란 나라 자체가 자전거의 나라다. 어릴 때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누군가에게 도난당한 경험,

그래서 다른 이의 자전거를 훔쳐서 타 본 경험들이 있다는 게 동기라면 동기일까. 나뿐 아니라 대부분 자전거를 훔쳐 본 경험이 있을 만큼

너무 보편적인 현상이라서 훔친다는 개념조차 애매하다. 누군가 내 자전거를 훔쳐가면 화가 나고, 그렇기 때문에 나도 훔치는 거니까. 그런

경험에서 <북경 자전거>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경쾌하고, 덜 절망적이다. 소년들의 세세한 성장기가 좀더 사적이고 무난한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로 읽히기도

하는데.

이미 나이가 들어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세대들은 자전거를 하나 잃어버리면, 다시 사면 그만이라며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현재 중국의 기성세대는

이미 그런 면을 갖고 있다. 반면 나도 그런 경험이 있지만, 아직 안정된 직장이나 지위가 없는 17∼18살 소년들에게는 옷 하나, 자전거

하나라도 자신의 물건이기 때문에 굉장히 소중하다.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어느 시대가 됐든 아이들은 다 자기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있다. 시대에 상관없이 그 나이 또래가 갖는 경험들을 다뤄보고 싶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는 커다란 새 건물들이 들어서고 변화하고

있지만, 이런 흐름과 상관없이 젊은 아이들이 그 나이 또래에 겪는 경험 말이다. 그런 아이들의 상황을 변화하는 베이징의 풍경이 아니라 그나마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옛날 뒷골목에 집어넣어서 일종의 정지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시대에 상관없이 보편적인 경험을 다뤄보고 싶었다지만, 각각 생계를 위해, 또래 문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전거를 원하는 농촌 소년과

도시 소년의 대비처럼 여전히 현재 중국사회의 모습이 겹쳐지는데.

맞다. 사실 지안의 친구들의 옷만 봐도 예전에는 보기 힘들던 옷들이다. 구웨이가 하는 자전거 특송 일도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일들이고.

그뿐 아니라 예전에는 시골에 있다가 상경해서 베이징으로 들어오는 것도 사실 힘들고 복잡했다(출입허가증이 따로 필요했다). 구웨이말고도 많은

아이들이 시골에서 상경한 모습은 변화하는 중국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날들>부터 <머나먼 낙원> <북경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카메라가 애정을 갖고 다가가는 대상은

아무래도 주류 밖의 사람들인 것 같다.

예전 중국영화들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 혹은 어떤 대표성을 띠는 사람이나 주류적인 사람들을 많이 다뤘다. 변두리, 주류 밖의

인물들은 사실 거의 영화 속에서 표현되지 않았다. 중국에는 사람도 굉장히 많고, 사람이 많다보면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아주 다양한데,

내가 영화를 시작할 때까지도 그들 다수는 영화의 밖에 있었다. 동세대의 다른 감독들도 그렇지만, 나 자신도 사실 비주류영화를 하는 사람,

주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어선지 그런 사람들을 찍어야겠다는 약간의 각성이 있었던 것 같다. 뭐 사실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하기는 좀 애매하지만.

내가 찍었던 주류 밖의 사람들도 주류가 될 수 있는 거니까. 어쨌든 이미 세력을 가진 주류의 사람들보다 상대적인 약자에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지아장커, 장위엔 등 동세대 감독들과 함께 6세대라 구분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5세대 감독들은 중국감독으로는 좀 특수한 경우다. 그들이 먼저 중국영화를 세계에 알리며 명성을 얻지 않았나. 그러고나서 영화평론가나 기자들이

5세대 이후, 그보다 젊은 사람들이 영화를 찍으면 6세대란 식의 세대 구분을 해왔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세대 구분이 적절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6세대 내에서도 MTV적인 감각으로 찍는다든지, TV드라마나 광고를 찍는다든지 굉장히 여러 부류가 있다. 그렇게 볼 때 세대 구분을 하는

것보다는 개인의 스타일에 따른 구분이 좀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세대 구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6세대라 불리는 중국감독들의 영화는 몇 가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개인의 일상을

통해 중국사회의 현재를 보여준다든가, 사실주의적인 접근법이라든가.

그런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어떤 것들을 찍어야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의 주류영화나

5세대가 찍지 않았던 것들, 다른 것들에 관심을 돌리면서 찍다보니까 무의식적으로 비슷한 부분들이 나온 것이다.

그 밖에도 일상에 대한 접근법이 우리들의 보편적 흐름으로 자리잡게 된 이유는 있을 것이다. 서구인들은 표현방식 자체가 외향적이고 크다.

액션도 많이 들어가고.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아마 다른 아시아 나라도 비슷하겠지만, 사랑한다든지 여러 감정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내면에 숨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시아 사람들의 감정 표현이라든가 성향이 사실주의적 표현에 부합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이건 좀 실질적인

문제인데,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영화작업을 할 때 다양한 기교를 구사하기보다는 가장 단순하게 리얼리즘에 입각해 찍게 된다. 배우들도 대부분

비전문배우라서 복잡한 연기기교 같은 걸 주문한다면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사실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는 거다. 물론 돈이 많아지고, 영화를 만드는 조건 자체가 좋아진다고 해도, 소재를 계속 일상에서 끌어온다면 다른 방식으로 찍을

것 같진 않다.

<나날들>이 중국 광전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 <극도한랭> <머나먼 낙원> 등 계속해서 중국 정부와

마찰을 빚어왔다.

중국에서 영화를 하는 사람들 중 아마 의도적으로 중국 정부와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싸우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만드는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영화를 만드는 것뿐이다. <북경 자전거>의

농촌에서 올라온 구웨이도 자전거를 도난당한 것에 대해 답답하리만치 변명도, 항변도 제대로 못한다. 시골 사람들의 내성적인 성격이나 도시라는

사회에 대한 공포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로 거기서 쫓겨나 집으로 돌아가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중국의 문화수준 문제겠지만, 내가 옳다 해도 관철시키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 힘있는 사람들도 그런 경우가 허다한데, 하물며 시골에서 올라온

소년이야 말할 것도 없다. 더 큰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압박감 같은 게 있는 것이다. 내 경우도 비슷하다. 영화를 찍어도 중국 내에서는

다 상영이 금지돼왔다. 사실 아주 불합리하지만, 합리적으로 얘기한다고 해서 통하지는 않는다.

그 밖에 가장 어려운 점은 뭔가.

앞으로 계속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시장 자체의 존재를 말할 수 없는 지하영화를 찍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들이다. 지하영화는 현상도 잘

안 해주고, 시장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투자를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계속 영화를 찍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인물이 달라지고 캐릭터가 달라지는 건 있지만 내 관심사는 늘 힘겨운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관계다. 열악하고 힘든 상황에서 사람들이 겪는

문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내면을 담아내고 싶다.

글 황혜림 기자 사진 이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