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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킹 아저씨, 우아 아줌마
2001-01-19

비디오카페

나는 한달에 한번쯤 우리 대여점을 거쳐간 아르바이트생들과 즐거운 단합대회를 갖는다. 그들 대개가 영화와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갑자기 호출을 해도 만사 제쳐두고 나타날 만큼 결속력이 대단하다. 가끔씩 안줏거리로 고객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서로 특징적인 고객에 대한 생각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가장 화제에 자주 오르는 고객은 단연 애칭 ‘에로킹 아저씨’다. 이 고객은 마치 ‘에로가 아니면 영화가 아니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느껴질 만큼 오로지 에로영화만 본다. 그것도 한국에로만 본다. 하루에 두편씩…. 그분은 우리 사이에서 ‘에로킹’이라 불리는지 아마 모를 거다.

두 번째 화제의 인물은 ‘우아 아줌마’이다. 항상 여왕 같은 우아한 옷차림과 말투에서 우아가 번져나올 만큼 근사하다. 나는 물론이고 아르바이트 아이들과도 항상 대화를 나누면서 비디오를 빌려가곤 하는데, 늘 ‘아트적인 것’을 찾는다. 그러나 대화로 그칠 뿐, 빌려가는 영화는 항상 다른 영화들이다. 아트영화 달라고 해서 열변을 토하며 추천하면, 다 듣고 나서 <욕망의 일기장> 빌려가는 식이다. 우리 모두가 이 아줌마에 대한 재미난 에피소드를 갖고 있을 정도이다.

단합대회 안주의 꽃은 아마도 연체료 시비에 관한 무용담이다. 연체료 안 내려고 갖은 방법을 쓰는 사례에 대한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이미 냈다고 우기는 상습적인 유형에서부터 반납날짜가 잘못 기록되었다고 컴퓨터를 바꾸라고 할 정도의 막가파도 있다. 심지어 돈을 던지면서 ‘여기 안 오면 되잖아’라고 소리치는 사람들까지…. 한번은 아르바이트의 얼굴에 비디오테이프를 던진 사람도 있다. 이런 경험은 아르바이트 하는 이들의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럴 때엔 “나는 이런 적도 있어” 하면서 서로 위로를 해주기까지 한다.

사람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정말 비슷하다. 나는 고객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정말 궁금하다.

이주현/ 영화마을 종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