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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금성, 화해할 순 없어도 이해할 순 있다
2001-01-31

<왓 위민 원트> 속 남자와 여자, 그 심리를 읽는 5가지 코드

기획/ 남자들은 왜? 여자들은 왜?

그때 나는 언제나 그러하듯 올 들어 세 번째 지갑을 차에 두고 내린 상태였다. 그 지갑이 어떤 지갑이냐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대학원 후배들을 무료로 스터디해 준 뒤 받은 특별한 보답이었다. “언니는 왜 항상 짧은 지갑을 가지고 다녀요. 여기다 돈 넣고 다녀 보세요. 장지갑이 얼마나 편하다구요.” 항상 지갑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좋은 지갑을 사지 않는 버릇을 귀여운 후배들은 알아차린 모양이다. 이 지갑만큼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미루고 미루다 사용한 지 채 한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한눈을 팔다 또 잃어버리다니 이러고도 내가 정신이 있는 사람일까?

우리, 같은 땅에 사는 사람들 맞아?

지갑을 잃어버린 뒤 즉각적인 남편의 반응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아보고 은행에 신고하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조치를 취한 뒤, 남편은 아주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니 또 지갑을 잃어버렸어? 돈이 얼마 안 들어 있어서 다행이다”라며 가볍게 웃었다. 그에 비해 난 도로변 한가운데 앉아 울먹울먹한 표정으로 방금 내 곁을 떠나버린 지갑의 역사를 시시콜콜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괜찮아. 내가 다른 지갑 사줄게.” 언제나 그렇하듯 남편은 서둘러 사건을 봉합하려 든다. “다른 지갑이라구? 대체 내게 있어 그 지갑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기는 아는 거야? 아니 몇년을 나랑 살았다는 사람이 내 표정을 보고도 저렇게 속을 모를까?” 남편의 대수롭지 않은 태도에 은근히 화가 난 나는 퉁명스럽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지갑이 나한테 무슨 필요가 있어. 또 잃어버렸는데 뭐. 아무 데나 넣고 다니지.”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내리 세 시간을 강의한 데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상실감이 뒤범벅되어 척추에서부터 스트레스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남편은 무언가를 사주겠다고 했는데도 화를 내는 나를 보며 얼굴이 굳어진다. “왜 그래. 아까부터. 신고는 내가 다 했는데. 뭐 잘한 일 있다고. 내가 사주겠다잖아. 똑같은 걸로 사주면 되잖아.” 이러기 시작하면 더이상의 이야기는 쓸모없어진다. 세상에 똑같은 지갑이라니…. 내게 있어 필요한 건, 그 지갑이 어떤 의미인지를 시시콜콜 말하게 내버려두고, 오히려 “지갑 같은 거 말야, 천개쯤 잃어버려도 괜찮아. 그래도 그런 지갑은 돈주고 살 수 없는 거지?”라는 말을 듣는 거였는데. 남편은, 아니 남자들은 늘 이런 식이다. 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믿는다. 아, 남자와 여자가, 아니 다른 언어를 쓰는 화성인과 금성인인 우리가, 같은 땅에서 살긴 사는 사람들일까?

게임의 규칙 - 여자는 소꼽놀이, 남자는 전쟁놀이

영화 <왓 위민 원트>에서 한때 끗발날리던 광고기획자 닉 마샬은 안하무인의 성격을 가진 마초 남성의 전형이다. 그는 여자들이 자신의 윙크와 부장이라는 직책이면 무엇을 원하든 오케이하면서 말을 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아침에 뿌린 크리스찬 디오르의 패런하이트 향수와 자신의 재기넘치는 능력이라면 너끈히 여자들을 조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자신에게 잘해주면 자신이 정말 굿가이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광고회사의 여직원들이 닉 마샬의 넥타이 칭찬을 하고 닉 마샬의 안경을 찾아다 주는 이유는 아주 간단한다. 왜냐면 그는 자기 상사니까.

직장이 여학생회는 아니지만 여자들은 조직 내에 들어가서 일단 성공을 하려면 누구와도 친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떠어떠한 일로 ‘모 영화비평가 집단’을 나오게 되었을 때, 나는 더이상 그들이 나를 불러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었다. ‘그들은 이제 나를 부를 일은 없겠지. 왜냐면 우리는 더이상 친하게 지내지 않을 테니.’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남자친구는 아주 이상하게 여겼다. ‘당신이 유능한 평론가라면 그들은 당신을 무시할 수 없는 법이야. 당신이 실력만 있다면 일을 위해서 언제든 당신을 다시 부르게 되어 있어.’

남자들은 성공하기 위해 능력이라는 스코어에 계속 신경을 쓰면서 동시에 파워게임을 병행하는 경향이 있다. 여자들이 소꼽놀이를 하는 동안 남자들은 전쟁놀이를 하는 것이다.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는 적도 있고, 적이 아닌 척할 필요도 있고 또 진짜 동지도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세상에, 여고에서는 왜 이런 걸 가르쳐 주지 않는 거지?) 남자들에게 성공이란 여자들과 달리 친밀감이나 충만성을 획득하는 일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성공이란 나이 서른에 연봉 1억원과 랜드로바 지프에 40평짜리 아파트를 의미하기도 하고 구체적인 성취를 추구하는 것을 훨씬 속편해 한다. 반면 친밀감 때문에 여자들은 성공을 향해 질주하면서도 ‘완벽해. 그렇지만 어쩐지’ 증후군에 시달린다. <왓 위민 원트>에서 나이키 광고 속 대사 “나이키. 인생은 게임이 아니라 스포츠입니다”와 달시(헬렌 헌트)가 마음속으로 읊조리는 대사 “성공할수록 실패자가 되는 것 같았어요”는 정말로 여자들의 성공에 관한 갈등을 꿰뚫는 명대사이기도 하다.

돈 - 유입되는 연못, 말라가는 연못

내일 연구소를 이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후배 대학원생 모두에게 근사한 점심을 사는 선배를 본 적이 있다. 마치 그는 금방이라도 통장에 돈이 쑥쑥 불어날 것처럼 한껏 자신이 개발한 심리검사에 대해 자랑을 하며 밥을 먹는다. 남자들은 돈을 계속 유입되어 들어오는 연못으로 이해한다면, 여자들은 돈을 언젠가 말라없어질 연못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부부싸움 중 돈 문제는 그 어떤 전장보다 격렬한 곳이고, 남자들은 투자 위험의 정도나 경제적 압력 등에 대해 큰소리 뻥뻥치는 전사가 되는 반면, 여성들은 돈이 들어와도 항시 없어질 것에 대비하는 수비수가 된다. 콩나물값도 아끼고 자기를 위해서 옷 한벌 사는 것도 꺼리던 부인들은 결국 부부싸움 끝에 남편에게 내 인생 내놓으라고 원망하게 마련이다.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의 저자 게일 에반스는 성공한 회사의 중역 여성들이 재활용 가구를 쓰고 사무실 지출을 아끼기 위해 기꺼이 비좁은 자리에 만족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샐리는 샌드위치값으로 6달러90센트까지 계산을 하는가 하면, <왓 위민 원트>의 달시 맥과이어는 초유의 기획부장자리에 스카우트되었으면서도 ‘연봉을 더 달라고 할걸’하고 후회한다. 흔히 여자들은 작은 돈에 강하고 큰돈에는 약하다. 정말로 자신의 몸값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며, 인간관계의 네트워킹을 하기 위해 쓰는 돈보다 더 값있는 돈이란 없다는 것. 이건 여자친구들과 매일 더치페이를 하거나 남자들이 데이트 비용을 댈 때 멀거니 있어서는 모르는 덕목이기도 하다.

섹스 - 가슴과 엉덩이의 차이

매일 검도와 풋샵을 200개씩 하는 내 남자에게 왜 그렇게 운동에 열중하냐고 물어보니까 가슴을 키우려고 한다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자기 역시 풍만한 여자 가슴이 좋다나. 많은 남자들은 여전히 알려진 바대로 여성의 가슴에 집착한다. 수박이다 참외다 귤이다 해서 아주 노골적으로 과일과 여자의 가슴을 비유하는가 하면, <노팅 힐>의 여주인공 줄리아 로버츠조차 착한 남자 휴 그랜트에게 “남자들은 왜 그렇게 여자들의 가슴에 집착하죠?”라고 정색을 하고 물어볼 정도이니까. 그렇다면 남성 동지들이여, 대체 여자들은 남자들의 어떤 부위에서 성적 매력을 느끼는지 아시는지? 성 심리학 강의 시간에 남학생들에게 여자들이 자신들의 어떤 부위에 성적으로 끌릴 것 같냐고 물어보니 50% 이상이 떡 벌어진 어깨라고 대답했다. 오빠들, 웬 갑빠?

<왓 위민 원트>에서 이미 엉덩이 대역이 필요없을 정도로 핸섬한 닉 마샬 역의 멜 깁슨을 보고 여자 흑인 수위가 아 ‘저 빵빵한 엉덩이’라며 침을 삼키는 것은 정말 사실이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 글렌 윌슨과 심리학자 데이비드 나이어스는 남자와 여자의 외모와 매력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하던 중, 남자들은 여자들이 자신에게 끌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가슴과 어깨라고 생각하는 반면, 여성들이 실제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남자의 신체 부위는 엉덩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여자들의 시선도 허리보다 훨씬 밑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몇달 전, <으랏차차 스모부>를 본 날, 영화동아리의 게시판에는 극중 일본 남자배우들이 끈 팬티 같은 마와이만 차고 돌아다니던 통에 신나게 남자들 엉덩이 구경을 했노라고 좋아해하는 여성관객의 글이 줄이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가슴은 헬스로 키울 수 있지만 예쁜 엉덩이를 가지는 비법은 뭐지?

데이트와 외모 - 남녀는 친구가 될 수 없다?

근 10년을 데이트할 커플, 해리가 샐리를 처음 만났을 때, 해리가 샐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예쁘다고 하자 샐리는 그게 유혹하는 거냐고 물어본다. 사실 여자들 중 자신의 몸매나 얼굴에 만족하는 여자들은 매우 드물고(은총하실 TV의 영향으로 여대생들의 80%는 자기 몸매가 뚱뚱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때 여자들은 남자들의 외모에 대한 칭찬이나 호감의 표현을 데이트 신청이나 진지한 관심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반대로 남자들은 여자들이 ‘싫다’는 의미를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왓 위민 원트>의 닉 마샬 역시 카페 여급이며 배우 지망생인 로라가 “난 당신 타입이 아니야”라고 말하는데도 줄기차고 끈질기게 데이트 공세를 펼친다. 전통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데이트 신청을 먼저 해야 한다고 믿고 있고, 여자가 데이트 신청을 먼저 하는 경우 그것을 성관계로 이끌 수 있는 사인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성의 ‘NO’를 ‘Yes’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Yes’를 ‘Special Yes’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 때문에 빚어지는 심각한 부작용이 바로 데이트 강간 같은 사고. 데이트는 사회적인 자원의 교환으로 데이트에 돈이나 시간,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투자했다고 믿는 남성일수록 여성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여성이 그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 느낌에 화가 나게 되는 것이다(그럼 여자는 아무것도 안 했나?).

사실 여자가 ‘친구’로 지내자고 말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믿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해리와 샐리가 입증하듯 남녀 사이의 친구란 성적인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방패이자 전통적인 섹스에 대한 마일드한 거부이기도 하다. 정말 남자가 친구가 되자고 한다면 어떤 여자들은 그건 나한테는 육체적인 관심은 없다는 뜻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해리는 “예쁜 여자와는 친구가 안 돼. 왜냐면 예쁜 여자한테는 꼭 섹스를 원하게 돼 있거든”이라고 샐리에게 한 마디 대꾸하겠지.

정서 - 남자는 동굴에, 여자는 바다에 산다

난 정말로 화가 나거나 우울해지면 친한 친구들과 전화로 1시간 이상 수다를 떨 때가 있다. 물론 그런 나를 보고 어머니는 늘 전화비 많이 나온다고 화를 내곤 하셨지만.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여성독자 중 대부분은 한번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을 읽었을지도 모르겠다(<왓 위민 원트>의 각본가이자 감독인 낸시 마이어스 역시 이 책을 참조해 시나리오를 썼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저자 존 그레이 박사는 남자의 정서 상태를 동굴에, 여자의 정서 상태를 파도에 비유한다. 화성인은 혼자 동굴 안으로 들어가 해결책을 찾고 나서야 기분이 좋아진다. 동굴에 들어간 화성인에게 도움과 위로를 주려하는 금성인의 노력은 화성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무능하다는 증거로 비칠 뿐이다. 반면 금성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심리학 박사학위를 가진 양,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기 문제를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도, 샐리는 남자친구였던 조가 회사 여직원과 결혼하자, 온갖 새침을 다 떨던 태도를 버리고 해리에게 전화해서 크리넥스 한통을 다 쓸 만큼 울며불며 심경을 하소연한다. 반면 정치 고문인 해리는 울적하면 혼자서 정치와 연관된 책을 읽는 것으로 시간을 소일한다.

여자들은 남자친구와 헤어진 그 순간에도 자신들의 친구에게 연애하는 방법을 코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 남자들은 남의 도움없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평생 자랑으로 삼는다. 군대 시절 자신이 어떻게 완전 군장으로 80km를 행군했는지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는 숱한 대한민국의 남성들을 보라. 그런 화성인들을 가끔은 혼자 있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반대로 화성인들은 금성인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자신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느낌을 돈 한푼 안 들이고도 줄 수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왓 위민 원트>에서 여자 마음을 읽게 된 닉 마샬은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여비서에게 먼저 전화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기다리라는 꼼꼼한 조언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그렇게하자 여자들은 자청해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가깝고도 먼 그대, 남과 여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다르다. <왓 위민 원트> 시사회 때 여자인 나는 헬렌 헌트의 “남편하고 헤어진 건 내 자신이 돼갈수록 치르는 대가였죠”라는 대사에 뭉클했던 반면, 같은 시각 옆의 남자 기자는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그렇다고 그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나는 <아트 오브 워> 같은 영화를 볼 때 꾸벅꾸벅 존다). 아마 어쩌면 이 글 역시 여성독자들이 훨씬 관심을 두고 읽을지도 모르겠다. <왓 위민 원트>는 바로 이러한 남녀 사이에 발생하는 심리적 틈을 이용하여 슬리퍼 히트를 친 기발한 영화이다. 결국 멜 깁슨 혼자서 슈퍼파워의 힘을 얻어 북치고 장구치고 우울증에 걸린 소녀 사환까지 구해준다는 점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찌됐던 더 많은 여성들이 돈을 벌고 스스로 생활을 해결하는 주체가 되었을 때 남자들이 ‘여자들은 과연 무엇을 바라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사실은, <왓 위민 원트>가 가진 다가올 시대에 대한 예시적인 힘이다.

사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환상과 현실의 차이나 우리가 매일매일 부딪치는 성공과 실패의 차이보다도 더 적을 수 있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 주인공 존 쿠색은 “난 평생 여자들의 에로틱한 속옷에 둘러싸여 사는 꿈을 꾸었지. 그런데 내 애인은 한번 입은 팬티를 닳도록 빨아 입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바로 낡은 팬티의 주인공과 결혼한다. 반대로 <제리 맥과이어>에서 이혼녀들의 모임에 나간 르네 젤위거는 “언니들의 푸념과 비판을 하루종일 듣고 있다보니 한마디 하고 싶어요. 그래요, 남자들은 다 적이에요. 그래도 난 아직도 적을 사랑할래요.”라고 선언한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서로를 채워주는 원동력이다. 필름누아르는 사는 게 정말 비정하고 눈물나게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지만, 로맨틱코미디들은 그래도 이 와중에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멈출 수 없는 이유를 가르쳐준다. 가끔은 작은 복어 같이 허세를 부리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 들다, 결국에는 관용이란 손을 내미는 남자들의 어떤 면은 여전히 참 귀엽고 괜찮은 구석이 있다. 그러니 내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처럼 인생을 사랑한다면 꽤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지는 않을까? 비록 오늘 아침 또 네 번째 지갑을 차에 두고 와 길 모퉁이에 주저앉은 채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처지가 될지라도 말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chinablue9@hanmail.net

디자인 정경욱jk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