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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부러지는 완벽주의, `똑`소리나는 연기, <하루>의 고소영

폭설이 계속되고 있는 날, 흰 눈과 검은 눈이 뒤섞인 길을 달려 도산공원 옆 한 카페에서 고소영을 만났다. 고소영은 매니지먼트사 로고가 찍힌 흰 패딩코트에 장식없는 까만색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미끄러운 길을 대비한 듯한 그 실용적인 차림은 똑 부러지는 그의 ‘아메리칸 스타일’을 대변하는 듯했다. 표지촬영을 위해서도 단출하게 회색 정장 한벌. 워낙 옷 잘 입고 옷 많기로 소문난 그라 조금은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개인적으로 옷 자랑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루>에 나온 영화배우로 사진을 찍는 거죠.” 까만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는 그의 말이 모두를 설득한다. 이야기하고 표정짓고 움직이는 하나하나에서 인간적인 매무새와 제스처야 묻어났지만, “사생활은 얘기 안 해요”라는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곧바로 ‘관계자외출입금지’라고 쓴 방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스타’였다. 다행히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그 방의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고소영은 기자에게 커피를 권하고, 자리를 비울 때도 “언니, 잠깐 옷 좀 갈아입고 올게요” 하는 친절하고 예쁜 ‘옆집 언니’의 웃음을 보였다.

“아기를 좋아하나요?” “아니요. 강아지가 더 예뻐요.” 끔찍이도 아기를 원하는 <하루>의 진원과는 달리 고소영은 아기보다 강아지를 더 예쁘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사는 논현동 집에는 요크셔, 페키니즈 등 종도 다양한 강아지 다섯 마리가 살고 있다. “길 가다가 아기 보면 아유 예뻐라,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전 그러지 않아요. 강아질 보면 그러지만.” 아기에 대한 감수성도 그렇고, 결혼도 아기엄마도 당연히 경험이 없는 그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번 연기에 특별한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결혼한다고 제가 하던 것을 못하게 된다든지 하는 거는 없을 테니까요. 지금이나 결혼한 뒤나 달라지는 건 없을 테고, 그래서 저대로 연기를 했죠.” 아니나 다를까 속으로 ‘오! 수정(受精)’을 외치며 침대 위에 머리를 박고 물구나무를 서는 진원에게는, 5년차 주부 캐릭터지만 말괄량이 처녀 고소영의 장난기가 쏙 배어 있다.

<하루>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고소영은 맛사지를 받는 중이었다. “그거 봤어요? <허삼관 매혈기>? 그거 되게 재밌어요”, <해리포터>를 읽고 요시모토 바나나를 좋아하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같은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책도 즐겨보는 고소영은 재밌는 책이라면 밤새서 다 읽어버리지만 시나리오는 “소설책하고 달라서” 한꺼번에 다 읽지 못하곤 했다. 그런데 “맛사지 받는 동안 심심해서” 펼쳐든 <하루> 시나리오를 누운 채로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눈물까지 흘렸으니… 그렇게 해서 “누구나 꺼릴 임신부 역이지만” 고소영은 자신을 울린 시나리오에 반해 <하루> 출연을 결정했다. 하루밖에 못 사는 아기의 엄마, 진원의 슬픔을 떠안게 된 데는 그렇게 그의 울음이 한몫 했다.

“울음도 패턴이 있어요. 엉엉 우는 울음, 참으면서 삼키는 울음.” 진원을 연기하면서 <하루>에서 고소영은 강약의 정도가 다양한 여러 울음을 보여준다. 깡다구 있어서 안 울 것 같은 그가 눈물 연기를 어려워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절 밝게만 보는데 저처럼 감수성 풍부한 사람도 없어요. 그냥 잘 울거든요. 음악 듣다가도 울고, 우울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도 울어요.” 자신은 생각보다 눈물이 많고, <하루>의 진원은 생각보다 눈물이 적은 거라고, “보이는 거랑은 달라요”라고, 그녀가 작은 오해를 바로잡는다. 슛 들어가면 바로 우는 것보다 오히려 힘든 건 ‘어떻게’ 울지를 정하는 거였다. 그렇게 ‘패턴’에 있어서 한지승 감독과 의견이 다를 땐 ‘절제’와 ‘폭발’ 두 버전을 따로 찍었다. “제가 원래 잘 설득당하지 않거든요. 설득하는 건 잘하지만요. 내가 잘못했을 때도 얘기하다보면 끝에는 상대방이 사과를 해요. (웃음)” 두 버전을 찍는 걸로 촬영장에서 무승부로 끝났던 감독과 배우의 캐릭터 해석 싸움은 결국 편집실에서 감독의 승리로 마무리된 모양이다. “어쩐지 성재 오빠하고 편집실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은 감독님이 이기셨죠, 뭐.”

“소영씨는 사람을 좀 많이 만나라. 술 한잔하면서 지내보면 사람들이 너보고 차갑다고 안 할 거다.” 고소영은 이런 충고를 종종 듣는다. 여러 사람을 사귀지 않고, 친한 사람 몇몇하고만 “되게 친한” 탓. “소영아, 이번에 우리 모델 좀 해줘”, “싫어.” 친할 땐 친해도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는 그는 친하니까 봐주는 건 절대로 안 해서 그러는 걸 보고 차갑다 하는 이들도 많은가보다. “그래도 그게 제 스타일인데요, 뭐.” 공과 사를 정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못 참는 고소영은 연기에서나 실제 삶에서나 제 스타일을 살리지 않으면 못 배기는 확실한 여자의 매력을 풍겼다. 그녀의 스타일은 포근하면서도 차가운 눈 같은 것? “주위에 사람들이 많은 건 하나도 필요없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저한테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제일 잘해요.” 지금 고소영한테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군가요,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적인 질문이 될 것 같아 그냥 두었다. 사진 찍으랴 인터뷰하랴 그녀의 바쁜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포토제닉= 글쎄요, 실물이 더 낫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기자가 영화에서보다 얼굴이 작아 보인다고 하자) 그죠? 화면보다는 사진이 나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냥 자동카메라로 막 찍으면 되게 이상하게 나와요. 얼굴이 평면적이지 않아서 조명을 잘해야 잘 나오거든요. 사진 찍을 때 친구들이 ‘네가 얼굴 작으니까 맨앞에 서’ 해서 맨앞에 있으면 제일 얼굴이 크게 나오곤 했어요.

영화관= 저도 영화 보러 극장에 자주 가요. 주로 깜깜할 때 들어가서 깜깜할 때 나오죠. 아셈에 있는 극장에 갈 때는 영화 보고 오락도 하고 그래요. 좋아하는 배우는 여자는 애슐리 저드하고 기네스 팰트로, 남자는 숀 코너리랑 리처드 기어.

“멜로는 이제 그만”= 인터뷰하면 다음 작품이 뭐냐고 항상 질문을 받아요. 시나리오를 여러 개 보고 있거든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대작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쉬는 동안 무술이나 액션을 미리 배워 두려고 해요. 멜로는 이제 그만할 거예요. SF나 무협, <매트릭스> 같은 영화를 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말을 탔거든요. 그래서 다른 배우들이 말 타는 연기하는 거 보면 다 보여요. 배역 때문에 급하게 배워서 하는 건 서투를 수밖에 없죠. 총쏘기든 활쏘기든 제대로 배워서 영화에 써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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