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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잡기 힘든 황당한 설정, <분닥 세인트>
이유란 2000-04-11

트레비스의 후예들이 코미디의 옷을 걸치면 이런 모습일까? 코너와 머피 형제는 도시의 성자를 자처하고 나서 도시의 쓰레기를 제거해나간다. 그들은 총을 든 도시의 십자군이 되어 마피아와 폭력배들을 살해한다. 그리고는 “네 칼은 빛나고, 내 손은 심판을 내린다”로 시작되는 기도문을 외운다. 그렇다고 해서 <분닥 세인트>가 진지하게 선과 악, 살인과 죄의식의 문제 따위를 다루는 건 아니다. 또한 신랄한 살인 장면 묘사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분닥 세인트>는 이런 것들을 반쯤은 농담 혹은 장난으로 그린 코미디영화다.

무엇보다 <분닥 세인트>는 영화광의 영화다. 사실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낯익다. 도시의 성자를 자처한 머피 형제와 범인들의 뒤를 쫓다 그들에게 동화된 형사라는 주요 인물의 설정에서, 시간의 앞뒤를 뒤섞은 구성, 사운드와 화면의 대위법적 충돌까지 지금껏 익히 봐오던 것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만날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게 아니라 익숙한 재료들을 가지고 재미있고 맛깔난 새 요리를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만의 인용방식이 없는 것. 장엄미사로 영화 서막을 여는 것이나 머피 형제에 관한 시민들의 반응을 듣는 극중 TV뉴스의 인터뷰로 끝을 닫는 것이나 그럴싸해 보이는 장면들이 있지만 영화 전체에 녹아들어가지 못한다. 또 웃음을 터뜨리게 하기엔 부족하고 이야기를 밀도있게 짜기엔 지나친, 황당한 설정과 장면들이 너무 자주 눈에 띈다. 등장인물들처럼 <분닥 세인트>는 종잡기 힘든 영화가 돼버렸다. 악역 전문배우 윌렘 데포가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사건을 수사하는 FBI요원으로 출연한다. 트로이 더피 감독이 연출을 비롯 제작, 각본, 음악까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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