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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또하나의 국제영화제를 맞아

제1회 전주영화제 포스터

94년 봄, 처음으로 칸영화제엘 갔다. 당시로선 일간지들이 아직 해외영화제에 기자를 보내지 않을 때였고, 나는 대종상 예심 심사료 받은 것과 약간의 돈을 모아 자비출장을 결행했다. 내가 놀랐던 건, 영화제 본부 건물은 외관이 예상보다 작고 수수했다는 것이고, 일단 영화제가 시작되니 해변을 따라 뻗어있는 시가지가 모두 행사장이더라는 것이다. 그해 칸영화제에서 받은 좋은 인상과 나쁜 인상 몇가지. 좋았던 건, 첫째, 영화제 주요 행사장과 호텔 로비들에 아침마다 가지런히 비치되는 각종 영화제 일간지들. <버라이어티> 등 잡지들이 현지에서 발행하는 일간지들은 매일매일의 영화제 상황을 환하게 알려 주었다. 둘째, 아이디카드의 위력. 아이디카드 발급 기준은 까다롭지만 일단 받으면 견본시 소극장들을 포함해서 본부 건물안에 있는 수십개 상영관을 자유자재로 들락거릴 수 있다. 단, 입구에 줄서서 입장권을 받아야하는 경쟁부문 메인 시사회만 빼고. 그래서 상영일정표를 들고 체크해가며 한 극장에 들어갔다가 영화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튀어나와 옆방에 들어가면 되었다. 셋째, 영화제가 오래되고 유명해지니 매년 그맘때만 되면 영리.비영리 목적의 재주꾼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어 영화제 주변에선 공연과 퍼포먼스들이 끊이지 않아 눈을 즐겁게 해준다. 그다음 나빴던 것. 첫번째, 불어 자막 원칙. 프랑스 영화의 경우만 영어 자막이고 나머지는 공식시사에서 모두 불어자막이라, 불어를 못하는 사람에겐 고역이다. 두번째, 비슷한 이야기인데, 자원봉사요원들 상당수가 불어만 한다. 세번째, 영화제 기간엔 각종 기념품과 1회용 상품들이 상가에 범람하는데 품질을 전혀 보증할 수 없는데다 비싸다.

어느새 한국에도 명실공히 '국제 규모'의 영화제가 세개나 생겨났다. 과연 국제영화제가 세개씩이나 필요한가라는 문제제기들도 나오지만, 많아서 나쁠 건 없다. 정부와 기업체가 쓰는 돈인데, '국민복지와 문화창달'에 지방정부의 예산과 기업체의 이윤이 일부 환수되는 게 특별히 잘 못 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도쿄영화제나 홍콩영화제의 예에서처럼, 어떤 영화제든 충분한 산업적 효과와 문화적 기능이 뒤따르지 못하면 자연도태될 수 밖에 없다. 오는 4월28일엔 전주국제영화제 첫해 행사가 개막한다. 대안의 영화, 디지털 영화, 아시아인디영화의 깃발을 올린 이 영화제가 분명한 개성을 유지하면서 전주 지역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경험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부산영화제와 부천영화제에서 각각 1회때부터 꾸준히 영화제 일간지를 발행해온 <씨네21>은 이제 전주영화제를 위해서 일간지를 준비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 전주에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