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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영화를 가르쳐준 책 [5] -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B급영화의 제왕, “내 멋대로 했다”

로저 코먼의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어쩌다가 나는 영화보기를 잠깐 멈추고, 영화에 관한 책을 보게 된 것일까. 잡지 말고, 영화에 관한 책으로 처음 봤던 것은 아마도, <신과 악마의 동화>일 것이다. 배우들의 라이프스토리와 출연작들의 스틸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책이었다. 그 다음에는 주로 대학 시절에 읽었다. 당시로서는 유일한 영화 개론서인 <영화의 이해> <민족영화를 위하여> <영화의 이해> 에이젠슈체인에 관한 책도 몇권 있었다. 영화언어나 한길사에서 두번인가 나오다만 고급스러운 영화잡지도 있었다. 그런 책들을 그냥 주절주절 읽었다.

나는 영화과를 나오지도 않았고, 영화 동아리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8mm 단편영화를 찍지도 않았다. 영화마당 우리의 단편영화 워크숍에 참가한 것은 후의 일이었고, 그 전까지는 그저 잡지나 뒤적거리며 ‘보기’에 몰두해 있었다. 그러다가 <영화의 이해>를 보게 된 것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즐겨보는 영화란 것이, 어떤 ‘매체’인지를 한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 생기듯이, 영화라는 것의 내면을 좀 뜯어보고 싶었던 것. 그래서 편집이나 카메라 기법 같은 것들의 명칭도 대충 알았고, <현기증>을 보면서 이게 ‘줌 인 트랙 아웃’이군, 하며 중얼거릴 줄도 알게 됐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영화보는 취향은 여전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공포영화를 즐기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뻑 가고, 싸구려 영화를 보며 낄낄거렸다. 한편으로 모 시네마테크에 드나들며 이른바 예술영화와 인디영화들에도 빠져들었다. 그렇게 따져보면, 영화책을 읽은 것이 내 시야를 ‘예술영화’로 넓혀준 것일까? 하지만 영화 이론서를 보기 전에도, <대부> <파리 텍사스>나 <지옥의 묵시록> 같은 영화를 열광적으로 ‘소비’했다. 내 입장에서는 예술영화나 블록버스터나 B급영화나 인디영화나, 다 똑같은 영화다.

지나치게 긴 서두였지만, 요지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파고 들어가려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같은 책은 전혀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 책은 ‘B급영화의 제왕’으로 불린 로저 코먼의 자서전이다. 제목에서 보이듯, 로저 코먼은 오만하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할리우드라는 비효율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사회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자화자찬하고 있다. 코먼이 주로 만든 영화는, 말그대로 싸구려 영화다. 코먼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 배우들을 여러 배역으로 동시에 기용하고, 스턴트맨으로도 이용하고, 심지어 특수효과까지 담당하게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읽다보면 영화라는 ‘예술’을 이렇게 만들어도 되나,란 생각이 저절로 든다. 심지어 코먼은 “영화감독이란 새로운 분야를 연습할 필요”를 느끼고, 하루동안 시간을 내 8분짜리 단편을 촬영한 뒤에 “쓸데없이 이런 데 돈과 시간을 버리지 말자”고 결심한다. 그게 코먼의 감독 수업 전부다.

물론 코먼은 “예술가로서의 길을 가다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주류에 들어가기를 회피”했던 싸구려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이기도 하다. 코먼식 영화만들기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평론가들이 작품성을 인정했을 때의 기쁨 또한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가 코먼은 비주류의 상징이 되었을까. <나는 어떻게…>에는 그 과정이 시시콜콜 다 나온다. 여자들, 특히 그와 데이트해 본 여자들이 말하는 코먼은 “청교도적인 구석, 거의 보이스카우트 같은 면”(베벌리 갈란드)이 있고, “스탠퍼드대학 출신이고, 대단히 보수적이며 항상 머리를 짧게 깎는 아주 착실한 사람. 극단적으로 열정적이며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만난 첫 번째 여피.”(애비 돌튼)다. 코먼의 학사학위 주제는 ‘경영관리의 효율성’이었다. 애비 돌튼의 표현처럼 ‘여피’라는 한마디에는 코먼식 영화만들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예술과 상업주의를 가리지 않고 도전한 사람이 바로 로저 코먼이다. 그가 영화를 택한 것은 영화를 만들면 돈을 벌 수 있다, 가 첫 번째. 창조적 만족감을 가질 수 있고, 자극적인 일이기 때문에 좋다, 가 두 번째 이유다.

<나는 어떻게…>를 읽으면, 영화‘산업’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영화보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느낄 수 잇다. 로저 코먼의 영화는 관객의 흥미거리 하나에 맞추어 만들어낸 영화가 많다. 그런데 영화란 늘 그런 것이다. 코먼이 말도 안 되는 영화의 앞뒤를 짜맞추기 위해 내레이션을 쓴 것이나, 왕가위가 시나리오도 완성되지 않은 채 일단 찍고 난 뒤 내레이션으로 채우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조너던 카플란의 말대로 코먼은 ‘영화가 무엇인지를 아는 경영자’였고, 조 단테의 평가대로 “좌파 성향의 포스터들이 붙어 있는 사무실에 들어앉아 돈다발을 세고 있는 인습 타파주의자”였다. 그것이 코먼을 이상한 유형의 영화작가이자, 장사꾼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코먼은 샌드라 불럭의 인기이 힘입어 그녀가 무명 시절에 출연한 영화를 대충 편집해 개봉하려 시도한다. 그게 바로 로저 코먼이다. 그의 자서전은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다양한 얼굴을, 현실적인 코미디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소개/ 로저 코먼

1926년 디트로이트에서 출생. 지금까지 300여편의 영화를 제작, 감독했는데 그 중에서 280여편이 이익을 냈다. 일반적으로 할리우드영화의 성공확률이 1/3, 1/4인 것에 비하면 기적에 가까운 타율이다. 코먼이 만든 영화는 주로 선정적인 소재와 주제를 우려먹는 ‘익스플로테이션’ 영화였다. B급영화의 제왕, 팝 시네마의 교황 등으로 불렸던 코먼은 <켈리> <침입자> <X레이 눈을 가진 사나이> 등의 작품으로 주제의식이 뚜렷하고, 분명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영화작가로 평가받는다. 감독 프랜시스 코폴라, 피터 보그다노비치, 제임스 카메론, 조 단테 등과 배우 잭 니콜슨, 로버트 드 니로 등이 로저 코먼 사단에서 성장하여 할리우드에 진입했다. “60년대 반문화적 교육을 받은 젊은 영화인들은 그를 기득권 세력과 대항하는 고집스러운 작가, 기업인으로 평가한다.” 뉴월드 영화사, 콩코드-뉴 호라이즌 등을 경영하며 70년대에는 잉그마르 베르히만, 구로사와 아키라 등의 예술영화를 수입 배급하여 그 중 5편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요즘에는 각종 영화제와 시네마테크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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