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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영화만들기의 마술?
2000-04-04

영화 <허리케인 카터>에서 수감중인 루빈 카터가 “writing is magic”(글쓰기는 마술)이라고 했을 때, 이 발언은 과연 카터가 유죄냐 무죄냐 하는 시비를 덮으면서 마치 영화 전체의 메시지인 것처럼 강력한 힘을 발산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글쓰기란 자신을 심화(가운데점) 확장시키며, 그것은 종신형의 죄수를 구원할 만큼의 놀라운 힘을 지닌 것이다. 진정성을 가진 진술이라면, 수기든 소설이든 영화든 모든 창작행위가 다 마찬가지 효과를 가질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언젠가 “내 내부에서 아직 정리가 안 된 문제들을 영화로 다룬다”고 말한 적 있는데, 영화 만들기가 자신을 정신적으로 고양시키는 경험일 수 있다는 것, 그처럼 사적인 창작행위의 진정성을 고수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문학도 아닌 영화에서 말이다. 영화산업은 감독 개인에게 사적인 창작행위의 여지를 그닥 허용하지 않는다. 그보다 영화는 시장전략의 산물이고, 산업시스템과의 흥정이며, 기껏해야 관객과의 두뇌게임 내지는 지적인 유희인 것이다. 오직 자신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구상을 가지고 제작자와 투자자를 설득해 돈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그 프로의 비즈니스 앞에서 어떤 영화감독도 자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작품 몇편을 실패한 뒤 신작 <제너럴>을 거의 게릴라식으로 제작해야 했던 존 부어맨 감독은 “영화를 만들다보면 어쩔 수 없이 범죄자가 된다. 남의 돈을 훔치고 속이고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라고 고백했다. 이미 거장 반열에 오른 뒤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조차 작품마다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제작비를 적게 써서 제작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했다고 전기에서 고백한 적 있다.

이럴 때 감독이 영화 한편을 완성한다는 건, 세상과의 싸움인 동시에 자기 자신과의 지난한 싸움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에서 감독의 자의식이 고스란히 살아 있을 때, 감독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통과해왔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감독도 감독이지만 특히 제작자에 대해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변혁 감독의 데뷔작 <인터뷰>도 그렇다. 최근 한국에 왔던 대만 감독 차이밍량이 한국영화에 대해 부러워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그는 “대만 영화산업이 감독의 재능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대만에서 영화를 진짜 사랑하는 제작자를 만나지 못했다. 새로운 영화를 포용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개탄했다. 지금 한국영화에 대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시장점유율 때문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