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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2001-02-06

다큐 <끝없는 싸움-에바다> 주인공 ‘해아래집’ 사람들

지난해 12월 열렸던 제26회 한국독립단편영화제는 4년 넘게 지속돼온 에바다 싸움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켰다. 1996년 11월27일 청각장애자 교육기관 에바다학교의 학생과 교사들은 온갖 추악한 비리를 저지르는 재단에 맞서 농성을 시작했다. 이 싸움을 기록한 영상기록 다큐-인의 다큐멘터리 <끝없는 싸움-에바다>(연출 박종필)를 상영한 집행위원회는 싸움의 주체 ‘해아래집’ 사람들에게 특별상인 ‘연대와 인권상’을 수여했다. 이를 계기로 <씨네21>은 늦었지만 이들의 더운 손에 악수를 청했고, 시사지가 아닌 잡지와의 접촉은 처음이라며 이들 또한 흔쾌히 방문을 허락했다.

‘해아래집’은 해 아래,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진위천 강가에 있었다. 해아래집은 에바다 싸움을 해온 이들이 일곱 번째로 자리잡은 농성장소이자 2차선 국도변에 ‘청각장애인들의 보금자리’라는 명패를 내건 이들의 작은 삶터다. 원래 음식점 용도로 지어진 방 세개짜리 단층 건물에서 스무명의 청각장애인과 네명의 교사가 월세 20만원을 내며 생활하고 있다. 신을 벗고 들어가니 거실 벽면 가득 붙은 신문기사들 위로 “에바다 비리재단 퇴진과 정상화를 위한 철야농성 1500일째(1월6일)”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검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이날은 1월4일, 언젠가 ‘그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안고 이들은 이틀을 먼저 살고 있었다. “이번주 내로 이사회가 열립니다. 이사진 개편을 시도해보고 안 되면 시장 직권으로 선임이 이루어질 겁니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에바다 사태 해결을 약속한 대통령이 노벨상을 타고, 500여건의 기사로 언론에 메아리쳐도 해결되지 않은 이들의 싸움. “될 듯 될 듯하다가 안 되고 말던” 싸움은 아직도 한창이었다.

제본공장에서 10만원씩 월급을 타며 10년간 일해 모은 안병호씨의 천만원을 재단에 강탈당한 이야기, 시청 정문을 막고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인 이야기, <끝없는 싸움-에바다> 테이프를 보게 된 버스기사가 인근아파트에 이를 전하고, 반상회마다 이 테이프가 상영되면서 ‘해사모’가 생겨난 이야기, 그리고 언제나 후렴처럼 반복되는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연한 손말들. 지도교사 권오일 선생님, 학교 제본공장에서 일했던 안병호씨, 쉰여섯 최연장자인 장양씨, 친자매인 박미자,미애씨, 용인대 특수체육과 학생인 탁구선수 이경훈씨. 여섯명의 해아래집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되풀이했지만 너무나 오래 계속해야 할 이야기였다. <끝없는 싸움-에바다>는 이들의 큰 희망. “어떻게든 성금을 모아서 이 테이프를 사오천개 제작해 뿌릴 생각입니다.” 유인물 100장보다 설득력 있는 이 50분짜리 테이프를 해아래집 사람들은 진정 희망으로 여기고 있었다.

권오일 선생님은 탁구로 특수교육과 인연을 맺었다. 일반학교의 탁구부 코치였던 그는 청각장애인 학생이 지체부자유자보다 탁구를 못 치는 것을 보고 ‘대화불가능’이 청각장애인에게 주는 ‘장애’를 인식했다. 두달 반 공부해서 특수교육과에 입학, 다른 학교 한 곳을 거친 뒤 에바다 학교의 교사로 부임했다. 그가 지도한 탁구부가 일반인 전국탁구대회 3위에 입상했을 때, 권 선생님은 학교쪽의 비정상적인 반응을 감지했다. 탁구실 문에 대못이 박히고, 스포츠 잡지기자를 학교쪽이 출입시키지 않았던 것. “워낙 비리가 많은 학교쪽이 어떤 식으로든지간에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으려 했던 거죠.” 그는 파면되었고, 이후 복직되었으나 에바다 사태 때 다시 파면, 3년 만인 지난해 9월1일 다시 교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끝없는 싸움-에바다>는 에바다 학교 정문에 걸렸던 ‘권오일 선생님 복직 반대’ 피켓을 자주 보여준다. “재단이 아이들을 시켜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장 가슴아픈 일이었습니다. 말을 안 들으면 스스로 폭력을 당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던 아이들이, 이제는 하나씩 사과를 해오고 있습니다.” 힘겨웠던 1500일을 돌이키는 그의 옆에 해아래집에서 가장 발랄하다는 박미애씨가 너무도 밝게 앉아 있다. 누구의 집이나 해아래 있지만, 이곳만큼 해를 바라는 집도 없는 듯했다.

글 최수임 기자sooeem@hani.co.kr

사진 정진환 기자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