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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신혼여행>

스파이크 없는 <노팅힐>을 수긍하기 어렵듯, 송강호 없는 <넘버.3>를 상상하기 힘들듯, <신혼여행>에 엄춘배가 없다면 너무 허전할 거다. 신혼여행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꽤 여러 겹의 복선으로 엮어낸 <신혼여행>은 분명히 범죄스릴러 모양새지만, 능청맞은 조연들의 좌충우돌이 본론과 여담을 흐려놓을 만큼 맛깔스런 영화다. 엄춘배가 연기하는 송충호는 교명이 너무 노골적인 ‘남녀혼합교’ 신자. 개량한복을 입고 근엄한 표정으로 말도 안 되는 주문을 외우고는 변태성교에 돌입한다. 강도강간 전과가 밝혀져 용의자 조사를 받는 데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엉터리 주문을 외우고 앉아 있는 그를 보노라면 조형기, 권해효, 박상면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웃기는 조연은 더 있다. 신혼여행팀에 잘못 끼어든 중년 이인철-신신애 부부의 고뇌에 찬 정사도 외면하기 힘들며, “저도 뭔가 조사를 받아야 될 것 같아서 왔는데요”라며 괜히 경찰서를 기웃거리는 호텔 보이 역의 김태욱도 몇번 기를 막히게 한다.

조연들의 맹활약에 비하면 주연급들은 약간 심심한 편이다. 차승원은 예의 기름기와 바람기로 일관하며, 조은숙이 연기한 정은진은 어떤 인물인지 감이 잘 안 잡힌다. 스릴러의 긴박감을 이끌어가는 형사 캐릭터는 앞뒤가 잘 안 맞다는 느낌이 든다. 이례적으로 매우 우아하면서도 복합적 성격의 여인을 연기한 정선경만은 막강한 비중에 힙입어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편. 아무래도 조연들의 코믹한 연기가 앞서나오는데다, 중심 인물들의 캐릭터가 튼실하지 않은 탓에, 스토리의 정교함에도 불구하고 스릴러적인 긴박감이 크진 않다. 코미디, 범죄스릴러, 호러, 멜로의 혼탕이지만 역시 코미디맛이 제일 강한 편. 마지막 반전은 이런 장르에 꽤 익숙한 사람이라도 쉽게 알아맞히기 힘들다.

긴 휴면기를 거친 태창흥업이 <화이트 발렌타인>에 이어 두 번째 내놓은 재기작. 자체 공모로 당선된 윤제균씨의 각본을 강우석 감독 밑에서 수업한 나홍균 감독이 연출했다. 제목의 신혼은 ‘新婚’이 아니라 ‘身魂’. 몸과 혼이 각각 제 거처를 찾아떠나는 여행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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