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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 같은, <비포 선라이즈>

‘나만의 컬트’라는 말이 있다. 남들은 시큰둥한 영화를 극장에서 몇번씩 보고 비디오로 출시되면 한두세번 더 보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 왠지 마음이 울적하거나 싱숭생숭해지면 가끔씩 ‘땡기는’ 영화.

나에게도 이런 영화가 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단 호크, 줄리 델피 주연의 미국영화 <비포 선라이즈>. 사실, 감독이나 주연을 보면 그렇게 눈길을 끄는 영화도 아니다. 이 작품 이후로 뭐하는지도 모르는 신인감독에, 그냥 평소 나쁘지 않게 생각하던 정도의 주연배우들. 인생을 움직인 영화로 꼽히기엔 아무래도 미약하다. 아무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 즉 고다르, 베리만, 브레송에 비하랴! 하지만 영화보기는 보통의 예술작품 감상과는 다른 것 같다. 마치 ‘물’과 ‘밥’ 같은 영화가 있는가 하면, 반찬 같은 영화들도 있다. <비포 선라이즈>는 내게 별미 같은 영화이다.

이 별미 영화와는 대부분 첫 만남부터가 특별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느낌이 팍!’ 온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느낌이란 것은 그냥 ‘맨땅에서’ 생겨나지는 않는다. 상대에게 콩깍지가 씌워지는 건, 그럴 만한 사연이 있게 마련이니까.

<비포 선라이즈>는 개봉 전부터 벼르고 별러서 본 영화이다. ‘해뜨기 전’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따사로운 빛을 받으며 로맨틱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남녀. 그뒤로 보이는 어느 유럽의 고풍스런 건물. 충실하게 영화의 내용을 보여주는 포스터, 그리고 하룻동안의 비엔나 여행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랑이야기. 다소 평범해 보이는 이 멜로 영화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 건, 그럴 만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공부를 하고 싶어 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유럽의 예술 영화나 모더니즘 영화들을 접하면서, 할리우드영화 중독자였던 나는 그야말로 ‘개안’의 경험을 했다. 크고 작은 영화제들을 열심히 쫓아다니고, 자막도 없는 비디오테이프를 여러 번 보면서 열심히 리포트를 쓰고, 동료 선배들과 영화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는 사이, 영화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있어 영화는 너무나 거대하고도 심오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는 할리우드영화 따위(?)는 의식적으로 거부했던 것 같다. 블록버스터 영화 보는 시간에, 유럽의 예술 영화를 한편이라도 더 보겠다는 일념에 불타는 그야말로 열혈영화학도였던 까닭이다.

하지만 몸에 좋은 음식도 빨리 먹으면 체하는 법인가 보다. 마치 가스검침원처럼 이론서에 언급된 영화들의 목록을 체크해가면서 보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영화 보는 일이 수업 듣는 것처럼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고교 시절, 지루한 선생님 수업이면 영락없이 졸곤 하던 나의 ‘지병’이 발동하기 시작해, 롱테이크가 반복되는 다소 난해한 예술 영화는 절대로 한번에 보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세기의 걸작이라는 타르코프스키의 <희생>도 ‘그놈의 지병’ 때문에 3번이나 보고도 아직 다 못 봤다.

하여튼 이런 지병이 거의 노이로제 수준까지 심각해지고 있던 어느 봄 날, 나는 하나의 포스터를 접했고 마치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그 영화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번도 못 가 본 비엔나의 젊은 남녀가 의기소침해져 있던 나에게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되찾아 주기를 기대하면서.

평일 한적한 오후, 일찌감치 시네코아 극장의 맨 앞 보조석(안방에서처럼 다리를 쭉 뻗고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을 차지했다. 마침내 영화가 시작되었다. 고전주의풍의 경쾌한 바이올린 협주곡이 흐르고, 끝없이 펼쳐지는 유럽의 철로가 오버랩으로 겹쳐진다. 난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심지어 고급스럽기까지!’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영화는 정말 섬세하고 로맨틱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청춘의 두 남녀가 비엔나를 하루 동안 여행하면서 보고, 느끼고, 대화하는 과정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비엔나는 왜 그리 아름다운지, 새로운 만남이란 어쩌면 그리도 설레는지… 소박한 감상에 흠뻑 빠져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난 계속 빙그레가 되어 있었다. ‘참, 인생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즐거울 수 있구나!’하고 제법 초탈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심오한 예술 영화뿐 아니라, 다소 감상적일지라도 삶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기도 했다. 마치 별미반찬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는 내가 미리 점찍었고, 나의 기대치를 훨씬 웃도는 만족감을 주었기에, 기특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영화홍보를 하고 다녔다. 그 중 몇몇 친구들은 나의 호들갑 때문에 보고 나서 실망했다고 불평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럴수록 ‘역시 나만의 컬트군!’하며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몇 개월 동안은 이상하게도 지병이 발동하지 않았다.

다음해 나는 1년간의 파리생활을 통해 유럽을 접할 기회가 생겼고, 힘없는 동양의 유학생에게 유럽은 결코 관대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뒤 지금까지 이 영화를 한번도 보지 않았다. 왠지 이제껏 이 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낭만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지금은 학업을 마치고 한국영화의 마케팅일을 담당하고 있는 까닭에, 흥행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가장 대중이면서도 매력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포장해야 한다고들 한다. 물론 이를 위해 아직 경력이 짧은 마케팅 직원인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씩 관객의 입장이 되어 영화사의 홍보에 영향 안 받고 자기만의 경험과 기준으로 영화를 고르는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나만의 컬트’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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