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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아름다운 청년들 [2]
김혜리 2000-02-22

톰 크루즈

스타덤은 아름다운 육체와 청춘에 대한 우리의 강박적 욕구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에드거 모랭의 의견이 옳다면, 젊음과 미모를 최고의 셀링 포인트로 삼는 스타들은 피자마자 낙화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셈이다. 이런 냉엄한 현실을 가장 실감나게 한 배우들은 ‘브랫 팩’의 남자 멤버들. ‘브랫 팩’은 청춘 영화의 황금기였던 1980년대에 일련의 영화들에 어울려 출연하며 사적인 친분까지 맺었던 한 그룹의 남녀 아이돌 스타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 가운데 앤드루 매카시, 앤서니 마이클 홀, 저드 넬슨은 빠른 속도로 몰락했으며 기대주였던 ‘반항아’ 로브 로는 코미디 <웨인즈 월드>의 여피 악당, <오스틴 파워>에 얼굴을 내밀어 추억을 상기시킬 뿐 예전의 무게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때 브로마이드계를 평정했던 ‘가라데 키드’ 랠프 마치오도 <나의 사촌 비니> 이후로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1980년대를 ‘탑건’의 솜씨로 날아서 통과한 미남 스타는 톰 크루즈(38). 몇편의 그저 그런 청춘 영화에서 낮은 고도를 유지하던 그는 <탑건>으로 솟구쳐 올라 <7월4일생> <칼라 오브 머니> <레인맨> 같은 오스카 인증 명작들로 중량을 늘인 다음 1990년대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이상적인 미국 남성상의 전통을 상대적으로 충실히 계승한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성사시킨 여피, 마음 따뜻한 터프가이의 이미지를 고수하며 최근 들어 ‘예술 영화’에도 자주 눈길을 주고 있다. 남녀 모두의 호감을 사는 핀업 스타로 일찍이 정상의 인기를 맛본 맷 딜런(36)은 주류 청춘 스타의 자리를 박차고 작은 영화들의 우군으로 선회한 경우다. 존 쿠색(34)도 맷 딜런과 마찬가지로 흠잡을 데 없는 이목구비의 미남이면서도 스스로의 몸을 ‘미남 배우’의 테두리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간 케이스. <존 말코비치 되기> <씬 레드 라인>의 쿠색을 보면서 <클래스> <열여섯개 촛불> 같은 10대 영화에서 등장했던 귀여운 미소년을 기억하는 관객은 없다.

<가을의 전설>의 브래드 피트

1990년대 연예 잡지 표지를 가장 자주 장식했을 법한 스타는 X세대판 로버트 레드퍼드로 세계에 소개된 금발 미남 브래드 피트(37)와 인종적으로 모호한 매력으로 온몸을 휘감은 동양적 미남 키아누 리브스(36)다. 일찌감치 맘에 드는 구석을 찾아 만족스레 틀어박힌 ‘그늘의 왕자’ 조니 뎁과 달리, 두 사람은 블록버스터와 저예산 독립 영화를 흥뚱항뚱 오가며 할리우드의 허리를 이루는 중견으로 자리잡았다. 가는 곳마다 비명을 자아내는 최고의 아이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세기말에 터진 하나의 ‘사건’. 디카프리오는 작품 고르는 눈이 범상치 않아 조니 뎁과 비슷한 외진 길을 갈 것이라 짐작되었지만, <타이타닉>은 빙산처럼 그를 들이받아 본인도 꿈꾸지 못했던 지점에 그를 데려다놓았다. 할리우드가 다양한 인종과 성적 취향을 가진 소수 관객들의 시장에 관심을 기울임에 따라 비앵글로색슨계 스타들의 입지도 비교적 넓어진 편. 그들 중 여성들을 두근거리게 하는 미남 스타로 분류되는 배우는 덴젤 워싱턴(46). 불평등과 투쟁하는 전사의 모습으로 익숙해진 워싱턴은 주류 스릴러,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행동반경을 넓혀 흑인 여성 관객들의 환성을 샀다.

귀족적인 영국식 악센트의 미남들은 라틴 혈통의 야성남들과 더불어 할리우드의 적극적인 영입 대상. 야단맞은 소년처럼 깜박대는 눈과 부드러운 곱슬머리로 미국과 일본에 열성적인 고정 팬을 모은 ‘귀족 도련님’ 휴 그랜트(40)에 이어 최근 들어서는 주드 로, 랠프 파인즈가 대서양 건너편까지 그 매력을 떨치고 있다. 1990년대 말 부활한 틴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붐을 딛고 도약한 푸릇푸릇한 스타로는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의 라이언 필립과 <스크림>의 스킷 울리히(30),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프레디 프린스 주니어(24)가 손꼽힌다.

한때 영화 마케팅의 과녁이었던 10대 후반 남성들이 인터넷과 컴퓨터 게임으로 소일거리를 바꾼 요즘, 데이트 영화 선택권을 쥐고 있을 뿐 아니라 여자친구끼리 영화를 되풀이 감상하기를 꺼리지 않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여성 관객은 할리우드가 눈치를 살피는 첫 번째 관객이다. 어머니 세대보다 언니 세대보다 똑똑하고 민감한 관객인 그들을 매표소 앞에 줄 서게 만들 진짜배기 매력을 가진 남성 스타의 발굴은 21세기 할리우드가 골몰하는 과제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