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뎁(37)의 아름다움은 명료하다. 뾰로통한 입술, 아르누보풍의 예리한 호(弧)를 그리는 눈과 눈썹. 순백의 도화지에 세필로 먹을 찍어 그린 듯한 그의 선(線)은 아주 작은 움츠림으로도 공기를 흔든다. 호화로운 색채도 구구한 대사도 군더더기로 느껴질 뿐이다. 1995년 <데드 맨>과 <에드 우드>에서 그가 흑백 스크린의 순수한 음영 속으로 걸어들어갔을 때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1920년대 유럽 멜로 드라마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이목구비를 가지고 표정과 제스추어만으로 수만 가지 수사를 구사하는 이 배우는, 초기 무성 영화 스타들의 혼과 교령(交靈)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런 까닭일까. 조니 뎁은 100년 전 세상에서 길을 잃고 아직도 지상을 헤매고 있는 미아 같다. 버스터 키튼에 관한 책을 탐독하며 채플린처럼 행동하는 몽상가로 분한 <베니와 준>에서는 마치 혼자 달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뎁의 출연작 가운데 비교적 현실을 ‘똑바로’ 쳐다본 영화에 속하는 <에드 우드>와 <조니 뎁의 돈 주앙>에서도 뎁의 캐릭터들은 스스로 지어올린 꿈의 궁전 안뜰을 거닌다. 그로서는 이례적인 선택이었던 스릴러 <닉 오브 타임>에 이르면 조니 뎁은 영락없이 물 밖에 나온 생선 꼴이다. 음모에 말리는 결백한 남자 이야기를 좋아하던 히치콕이 아직 살아 있었다면 꽤나 탐내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서부 ‘싸나이’들에게 위협받는 <데드 맨>의 소심한 안경잡이 블레이크, 벌레 한 마리에 바들바들 떠는 <슬리피 할로우>의 수사관으로 분한 뎁은 마천루에 대롱대롱 매달린 슬랩스틱 코미디 스타 해럴드 로이드를 빼닮았다. 사나운 어른들의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눈을 동그랗게 치켜뜬 미소년의 이미지는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를 떠날 줄 모른다.

조니 뎁의 페르소나가 가진 또다른 매혹은 ‘텅 비어 있음’이다. <가위손>의 에드워드는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와 온갖 욕망과 사연을 던져넣고 가는 우물 같은 존재다. <데드 맨>의 블레이크는 심장 언저리에 총알이 박힌 채 어딘지 모를 곳으로 ‘아무도 아닌 자’(Nobody)라는 이름의 인디언과,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로 여행한다. 그런가 하면 스크린 밖 조니 뎁의 사진은 대부분 간밤에 잠을 설친 듯한 헤어스타일로 셔츠 자락을 비죽이 내밀고 휘적휘적 걷는 그를 보여준다. 인공미에 가까운 그의 정밀한 미모 뒤에는 그처럼 어떤 의도도 품지 않은 투명함이 있다. 기괴한 세계를 그린 영화 속으로 천진하게 관객을 잡아끄는 안내자로 뎁이 적역인 것도 그 덕분이리라.

조니 뎁은 여성 관객으로 하여금 ‘함께 세파를 뚫고 나가긴 무리겠지만 그래도 이 남자라면…’ 하는 심정이 들게 하는 스타다. 땅거미 내린 숲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는 애처롭지만 보호본능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비록 어눌하고 심약할지언정 그 안쪽에는 오로지 제 영혼의 중심을 향해 고정된 집중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긴 완벽하게 외롭고 철저히 겁에 질린 사람만이 괴물과 싸워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