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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에 사랑을 장단 맞추며, <춘향뎐>의 조승우, 이효정

몽룡과 춘향은 피곤한 모양이다. 지방 시사회를 마치고 밤차로 올라왔다는 두 사람. 갸름한 턱의 거뭇한 수염도 깎지 못하고 패딩점퍼로 몸을 돌돌 말아 서둘러 나온 행색의 몽룡이나 조명기 앞에서 빡빡한 눈을 연신 껌벅거리는 춘향이나 사정은 비슷했다. 1년간 같이 호흡을 맞추어서일까. 그래도 의관 갖추고 서로 어깨에 손올려 놓으니 금세 춘향의 볼은 발그레해지고 몽룡은 의젓한 태를 내보인다. 300년의 시간여행이야 문제없다는 듯.

<춘향뎐>의 몽룡은 크지 않은 눈과 긴 코, 가지런한 눈썹과 넓은 미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보아온 굵직하고 큼직한 양반집 자제 이몽룡의 외모와는 사뭇 다르다. 외려 평범한 얼굴. 대신 유연한 선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한량의 웃음을 풀어놓다가도 위엄있게 좌중을 바투 당기는 몽룡의 ‘낭창한’ 얼굴선은 판소리의 장단만큼이나 매력있다. “<춘향뎐>을 하기 전까지 영화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어요.” 80년생인 조승우는 컷을 연결하는 영화가 작위적으로 보였다. 배우의 감정을 뭉텅 잘라내는 것 같은 카메라도 싫었고. 몽룡으로 나선 5월3일 첫 촬영일, 카메라를 의식하다 보니 동선 자체가 위축되어 눈 깜박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만둘 순 없잖아요.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몽룡은 감독님이 아니라 제 역할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순둥이’였던 자신의 성격도 조금 변했다고 한다. 남원 세트에서 지낸 마지막 촬영기간이 몽룡에겐 고비. 평균 보름 정도 걸리던 촬영이 한달 정도 이어지자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어딜 갈 수 없으니 우울할 수밖에. 춘향가와 윤도현을 번갈아 들으면서 방에서 뒹굴던 기억은 지금 돌아보면 궁상맞기까지 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됐다. 고등학교 때 연극동아리에서 무대맛을 본 뒤로 평생 그 느낌을 갖고 싶어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한 그의 꿈은 뮤지컬. <춘향뎐> 오디션에 응해보라는 교수님의 제안으로 시작한 영화도 꾸준히 하고 싶다.

촬영 내내 ‘독한’ 춘향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이효정은 이목구비가 뚜렷해 얼핏 눈길을 줘도 강단있고 야무져 보인다. 사진 촬영 중간에 몽룡과 장난치는 것을 보면 통통 튀어오르는 발랄함도 엿보인다. 복스러워 보이던 오디션 때와 달리 촬영을 마친 지금은 살이 조금 빠진 상태. 한결 성숙해진 춘향의 모습이다. 이효정은 처음 춘향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세번 이상 들으라는 숙제를 받아들고선 이걸 어찌 다 듣나 싶었다. 할아버지 뻘 감독님이 내주신 건데 안 한다고 버티거나 금방 탄로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일. “귀에 익다보니 은근한 맛도 있던데요”라고 수줍게 말하는 이효정은 조승우보다 세살 아래, 고등학교 1학년이다. “십장가를 찍으면서 나름대로 감정을 실었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툭 치시면서 그건 아니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냥 스친 건데도 왠지 서럽다는 느낌이 밀려왔어요.” 연기 반 서러움 반 섞었다는 십장가 장면도 힘들었지만, 말발굽에 배를 밟혀 실려가기도 했던 사고도 빼놓을 수 없다. 출연하지 않는 장면이지만 현장을 떠나지 않고 분위기를 살피다 보면 자신이 서툰 부분들이 보이더라는 이효정은 이미 중학교 시절 몇편의 CF에 얼굴을 내민 경험이 있다. 신문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응했지만 처음엔 자신이 없어 집엔 아예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고. 그는 당분간은 춘향으로 살겠다 한다.

“감독님이요? 예고편 보신 분들은 저희 혼내키는 감독님 보고 되게 무섭구나 하시겠지만요, 자상한 면도 많으신 분이에요.” 조승우와 이효정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효정에겐 치과 예약까지 직접 해주셨다 했다.

주연으로 데뷔작을 찍은 신인 배우라면 모두 비슷할 것이다. “제 앞에 앉아 있는 관객이 무서워지더라구요. 도마 위에 놓인 생선 같은 느낌이랄까. 관객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만큼이나 기대감도 컸지만요.”(조승우) “인터뷰 하고 나면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쑥스럽기도 하고. 좋은 연기자가 되려면 먼저 저 자신을 버리고 비워내야 할 텐데.”(이효정) 첫 번째 시사회 날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두 신인의 솔직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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