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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사는법
2001-08-08

김봉석 칼럼

일요일 저녁에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일요스페셜>을 봤다. 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이야기였다. 서재응과 송승준이 마이너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경기장면 보여주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은 야구’라는 인터뷰 등등을 덧붙이며.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엔딩 자막이 올라갔다. 너무 늦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자막과 함께 나오는, 마이너리그에서 활약중인 한국선수들의 얼굴을 죽 보고 있었다. 서재응, 송승준, 최희섭, 조진호, 김선우 그리고 이상훈 등등.

그 선수들 중에서 나는 이상훈에게 가장 관심이 있다. 프로야구 출범부터 끊이지 않고 MBC 청룡, 지금은 LG 트윈스의 일종의 팬(좋아는 하지만 단 한번도 직접 경기를 보러 가거나, 뭔가 구체적인 행위는 하지 않고 오로지 TV중계에만 의존했던)인 나로서는 이상훈의 행적을 잘 알고 있다. 사실 이상훈의 행보는 그리 상식적인 것은 아니다. 박찬호나 김병현처럼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중이거나, 열심히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많지만 그들은 모두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뛴 적이 없는 경우다. 이상훈처럼 FA자격을 얻어서 미국으로 진출한 경우는 없다. 이상훈도 바로 미국으로 오지 못하고, 일단 일본으로 갔다가 오기는 했다. FA자격을 얻는 선수들은 나이가 많기 때문에, 뒤늦게 메이저리그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꼭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상황에 적응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종범이 일본 프로야구에서 결국 돌아온 것처럼.

그런데 이상훈은 굳이 메이저리그를 택했다. 한국에서 최고의 자리에도 섰고, 일본에서도 나름대로 주니치의 우승에 공헌을 하며 나름의 성과를 거둔 이상훈은 지체없이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마이너리그에서 구르고 있다. 사실 마이너리그는 육체적으로 대단히 큰 고통이 뒤따른다. 마이클 조던이 한때 야구를 하겠다며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마이너팀에 들어갔을 때, 제일 못 견딘 것은 이동을 버스로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고속버스 수준의. 견디다 못한 조던은 최고급버스를 구단에 기증했고, 그걸로 편하게 원정경기를 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못할 짓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농구로 돌아갔다. 이미 정상에 올랐던 선수가 마이너리그에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견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훈은 사서 고생을 하는 중이다.

하긴 이상훈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선배들의 기합이 싫어서 뛰쳐나갔고, 프로야구 시절에도 완강하게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도 잘 맞았지만 20승도 올리고, 최고의 구원투수가 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면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야구를 했다. 미국에 가서 고생하는 것이 이미 충분히 돈과 명성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사람들도 이제는 최희섭이나 서재응에게는 관심을 쏟아도, 이상훈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꿈을 향해서 뛰고 있다.

과연 이상훈이 메이저리그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을까? 아니 뛸 수나 있을까? 상관없다. 나는 이상훈의 사는 방식이 좋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그 태도가. 남들이 보건 말건, 남들이 평가하건 말건.

lotu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