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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만들기
2001-08-10

이렇게 하면 누구나 민동현만큼 만들 수 있다 (2)

#Scene 6

감독의 위치를 확고하게 하라

며칠 전 어느 청소년영화캠프의 강사로 아이들과 함께 4박5일간 영화를 찍고 왔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영화를 만들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아이들이 모두 감독이었던 점이다. 한명의 연출자를 정해서 그 아이의 진두진휘 아래 일이 진행되는 게 아니고, 영화 촬영장에서 토론하고, 말싸움하고, 영화는 대체 누가 찍고 있는지…. 난 어떤 조보다 많은 시간을 PRE-PRODUCTION에 투자하도록 아이들에게 가르쳤지만, 아이들은 정작 촬영 때는 준비했던 사항들을 잊어버리고, 다들 각자의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옛말이 틀린 게 없다고, 정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많은 단편영화 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이다. 이 아이들이 어려서라기보다는 누구나 이 아이들 같은 맘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친구들과 함께 봐도 누구는 좋다고 하고, 누구는 싫다고 하는데 영화를 찍을 때 그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각자 얼마나 다르고 다양하겠는가? 여기 감독의 역량과 위치가 정해진다. 감독은 괜히 감독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진두진휘하고 진행시켜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고함을 질러가면서 악을 써가면서 사람들을 몰아세우라는게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감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이 이해하고 함께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스토리보드가 중요한 것이다. 난 항상 스토리보드를 모든 스탭에게 쥐어주고 다음 찍을 게 무슨 장면인지를 말해준다. 그러면 모든 스탭들이 그 장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다음 장면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고 각자의 일을 해나갈 수 있다. 감독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나가고 있어야만, 다른 스탭들도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한번 장편영화의 엔딩크레디트를 보라. 그 많은 사람들은 각자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감독의 생각을 읽고 배를 저어가는 것과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각자 배를 저어가는 것과 어느 배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겠는가? 감독의 권위는 스탭들에게 얼마큼 이해받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 때 폴란드에서 9일간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촬영이 끝나고 나면 그날 촬영본 러시필름을 바로 뽑아서 자신의 스틴벡에 앉아서 밤새 편집을 해보고는 다음날 촬영계획과 함께 추가로 어제의 모자란 부분을 촬영했다고 한다. 이런 감독에게 어떤 스탭이 헌신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현장에서 친절하고 스탭들에게 잘해주더라도 소용없다. 영화가 엉망으로 나오면 어느 누구도 당신을 감독이라 부르지도 다시 함께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그 점을 항상 기억하려 한다. 마지막 시사회날 스탭들의 만족스럽고 기뻐하는 표정. 난 그 모습을 위해 영화를 찍을 때 악을 쓰고 찍는다. 그런 모습이 바로 감독의 권위를 찾아가고 스탭간에 서로 하나가 되는 길인 것 같다.

#Scene 7

찍은 필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어봐라

난 집에 있는 잡지들의 멋진 사진이나 그림들을 잘라서 모으는 것을 즐기곤 한다. 그리고 그 여러 사진들을 이리저리 잘라서 붙여보곤 한다. 그 중에 하나는 영화 <터미네이터> 레이저디스크의 재킷사진을 복사한 것에다가 모청바지회사의 광고에 쓰인 “WOW∼”라고 적힌 만화 글풍선을 잘라서 붙인 게 있다. 복사한 검은색 거친 ‘터미네이터’의 얼굴에 밝은 노란색 글풍선에 빨간색의 만화스런 글자체의 “WOW∼”가 옆에서 반짝이는 것. 그 그림엔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듯해서 난 그 그림을 내 책상 앞 창문에 붙여놓았다. 내가 생각할 때 편집이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를 순서와 계획에 맞게 찍고 나면 남는 건 찍은 필름 또는 비디오테이프다. 이젠 그걸 어떻게든 순서를 정해서 이리저리 붙여서 뭔가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편집은 내 책상 앞 터미네이터 그림처럼 엉뚱한 화면을 연결시켰을 때 묘한 감정과 긴장감을 일으킬 때가 있다. 나의 4번째 창작작업인 편집은 그래서 더욱더 설레는 작업이기도 하다. 혹 당신이 영화를 찍을 돈도 없고, 카메라도 없다고 불평한다면 친구네집 비디오를 빌려와서 당신의 비디오와 연결하여 녹화 버튼과 일시정지 버튼을 쉼없이 눌러가면서 편집연습을 해보라고 말할 것이다. 예전에 군대에서 나를 가르쳐주셨던 중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넌 1년간 편집만 해라. 그 전엔 카메라 찍을 생각도 마. 편집을 하면서 어떤 화면이 편집 때 쓰일 만한 건지 알아두고 나중에 카메라를 들 때 그런 화면을 찍어와∼.” 난 아직도 이 말을 머릿속에 신조처럼 기억하고 있다. 편집을 알아야 무슨 화면이 필요하고, 어떻게 만들어낼지를 알게 된다. 영화를 찍을 돈과 여력이 없다면, 기존에 출시된 영화를 1시간 또는 30분짜리 영화로 재편집해보는 연습을 해보라. 난 군대에서 모특수부대 홍보영화를 찍을 때 찍은 화면이 너무 평범해서 고민하다가 영화 <지 아이 제인>의 몇 장면을 집어넣은 적이 있었다. 그 영화 시사회날 특수부대 대장님의 뿌듯해하던 미소를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 기억으론 얼굴은 한국군이고 다리는 미군들이고, 헬기가 지나가는 5컷이 모두 다른 헬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좋은 화면들을 볼 줄 알기 시작하면 곧 그런 화면들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날로그로 할 것이냐? 디지털로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나에게 편집은 개인적인 작업 중의 하나이고, 최종적인 창작단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편집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떨리고 두렵다. 내가 뭔가 모자라게 찍어온 것은 아닐지 항상 두렵고, 이제까지 스탭들의 노력을 내가 망칠 수도 있는 작업이기에 더욱더 신중해지는 것 같다.

편집은 크게 러프필름을 뽑아서 스틴벡 등의 편집기로 편집하는 아날로그 방식과 촬영한 필름의 키코드를 입힌 키코드 텔레시네를 아비드 등의 디지털 편집기에 입력하여 편집하는 디지털 편집의 두 가지로 나뉜다. 현재는 대개 아비드를 이용한 디지털 편집을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디졸브나 오버랩 같은 여러 옵티컬 효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우개 따먹기>도 아비드를 이용한 디지털 편집이 없었다면 부산국제영화제의 데드라인에 맞추지 못했을 것이다. 한 5일간 편집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시간의 문제도 있지만, 아이가 누나를 그리워하는 장면에 쓰인 환상장면 등에는 옵티컬 효과만 40개가 넘게 들어가서, 아비드로 옵티컬 효과들을 즉각적으로 프리뷰하지 않았다면 만들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그리고 지우개 따먹기 시합장면같이 한 프레임 단위로 느낌이 달라지는 장면 등에는 디지털 편집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광모 감독님의 <아름다운 시절>같이 풀숏이 많은 영화들은 디지털 편집으로는 그 효과를 제대로 보기가 힘들다. 특히 텔레시네한 화면으론 그 화면이 포커스가 맞았는지도 잘 모를 때가 많기 때문에 경제적 사정만 가능하다면 꼭 러프필름을 뽑아보고 체크하여 문제가 없는 화면들만 텔레시네를 해서 디지털로 편집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스티븐 스필버그는 편집을 스틴벡으로 한다는 사실도 꼭 기억하기 바란다.

필름으로 직접 편집하고 가편집한 것을 영사해가며 모니터하는 것과 29인치 텔레비전에 그것도 주사선의 한쪽만 주사하느라 떡이 된 화면을 보며 모니터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테니 말이다. 무엇이든 각각의 장단점은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편집방식을 선택하길 바란다.

#Scene 8

뻔한 음악보단 독창적인 소음이 낫다.

이제 우리에게 다가온 작업이 바로 믹싱이다. 영화를 동시녹음으로 했는가에 따라서 약간의 공정에 차이가 있지만, 동시녹음을 했어도 어차피 소리의 입체감을 위해서 후반 음향작업은 필요하기에 믹싱작업은 중요하다. 믹싱은 크게 ADR이라고 부르는 대사녹음과 FOLLY라고 불리는 효과음 녹음이 추가로 입혀지는 창작작업이다. 그리고 음악도 입혀야 하고, 만약 35mm라면 돌비 스테레오에 맞게 5.1채널로 디자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구체적인 사항들은 비전공자인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영화를 찍고 녹음실을 찾아가서 겪어보면서 배우는 게 빠를 것이다. 그러나 믹싱은 이런 기술적인 작업들이 전부가 아니다. 믹싱이 중요한 이유는 소리를 통해서 만들어진 화면에 또다른 창작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만든 단편영화를 보면 음악이 과잉으로 쓰이는 경향을 보이곤 하는데, 그것은 마치 편집에서 앞뒤 장면의 연결이 어색해서 디졸브나 여러 효과들로 어색함을 감추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흔히들 믹싱에 대해서는 영화를 다 찍고 나서 “이제 무슨 음악을 깔아볼까나?” 하는 식으로 접근하곤 하는데 적어도 이 부분에선 어떤 음악을 아니면 음향 등을 쓸지를 찍기 전부터 계산해야 한다. 마틴 스코시즈는 <좋은 친구들>을 찍을 때 주인공이 집에서 나와 차에 타는 장면에서 실제 믹싱에 쓸 음악을 틀어놓고 촬영했다고 한다. 먼저 생각한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것에 덧붙여서 더 좋은 음악과 음향을 쓰는 것과 그저 좋은 음악들만 열거하듯 풀어놓은 것은 누가 생각해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때로는 뻔한 음악보다는 생생한 실제음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얼마 전에 풀장이 있는 건물 앞을 지나가다가 풀장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사람들의 노는 소음들이 매우 몽환적으로 들려서 이 음을 따다가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에 피해자의 신음소리로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처럼 어떤 실제의 음들은 다르게 적용하고 차용하면 어떤 음악보다 효과적으로 쓰일 수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은 촬영이 끝났다고, 편집이 끝났다고 창작의 고민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믹싱도 당신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다린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Scene 9

아트영화로 찍어서 블록버스터처럼 홍보하라

흔히들 사람들이 <지우개 따먹기>를 기억할 때 함께 생각하는 게 지우개를 나눠줬던 기이한 홍보활동일 것이다. 민동현은 몰라도 <지우개 따먹기>는 알더라. 우리 스탭 중의 한명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영화는 어떻든 그 태생부터가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대개의 창작자들 흔히 처음 영화를 만든 이들은 남들 앞에 쉽게 영화를 못 내놓는 경향이 있다. 바로 자신이 생각했던 영화의 경지에 이르기 전에는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하겠다는 그런 뜻이란다. 뭐 좋다. 그렇게 자신에게 철저해지는 것도 좋지만, 내 생각에는 그 사람은 장롱을 하나 더 사야 할 것이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장롱에 보관해야 할 테니 말이다. 영화는 일단 보여져야 한다. 그 작품이 저질이건 고급 예술영화이건 간에 보여져야 그 작품에 대한 평가를 자신 스스로 정의내릴 수가 있다. 난 아직도 <지우개 따먹기>를 혼자 보곤 한다. 이유는 어떻게든 내가 부족했던 부분들을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다. 영화제를 가보면 자신의 작품이 상영되는 것을 보지 않는 감독들이 있는데 난 어떻게든지 내 영화가 상영될 때는 관객과 함께 있는다. 영화를 보는 게 아니고 관객을 보기 위해서다. 어떤 때 웃는지, 어떤 때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보고, 내 스스로 평가를 내리고 공부를 하는 것이다. <지우개 따먹기>도 이탈리아에서 상영할 때와 노르웨이에서 상영할 때 서로 관객의 반응이 달랐다. 그러나 두 나라에서 본 사람들이 지적한 문제점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만은 남들이 몰라주길 바랐던 창피한 부분이었다. 난 그 관객에게 그런 반응과 질타들을 들으면서 더욱더 커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영화는 장롱에서 들어가기도 힘들지 모른다. 그럴 가치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억하라! 당신은 결코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거나 멈춰 있을 사람이 아니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고, 날 감동시킬 그런 감독이 될 사람이다. 보여주자∼. 그리고 알리자! 돈도 한푼 못 받아가면서 끼니도 걸러가면서 나의 스탭들이 헌신해준 이유는 무엇인가? 함께한 영화를 관객과 만나고 세상과 만나게 하려는 거다. 그리고 더욱더 좋은 모습으로 성장한 모습으로 서로서로 함께 밀어주고 이끌어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단편을 지속적으로 찍으려는 이유이다. 영화를 최대한 홍보하자! 영화제는 많다. 영화제에서 꼭 상을 타거나 본선에 진출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영화제는 그저 패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상영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영화제가 중요한 것은 그저 관객과 소통할 유일한 출구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영화제에 가게 되었다면 문방구에서 색지라도 사서 거기에 당신의 영화제목과 상영날짜와 못 그리는 그림이라도 아니면 영화스틸이라도 붙여서 곳곳에 붙여라! 그것이 당신을 성장시키고 단련시킬 선생들을 극장으로 불러모을 테니 말이다.

#Scene 10

에필로그: 이제 자기만의 작업방식을 찾아가라

이제까지 내가 말한 사항들은 처음 영화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편하게 이야기하고픈 사항들이었다. 모든 사람은 각각 생각과 느낌이 다르듯 어느 누구처럼 살아가거나 영화를 찍을 순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화 작업방식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의 방식들은 그저 당신이 영화로 뛰어들어가게 만들 수 있는 단초에 불과하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영화엔 무수히 많은 공정들이 있고, 복잡다단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공정들은 직접 영화 한편을 만들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부딪쳐서 극복하게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무식하게 일을 벌려보는 용기다.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에서 우선 영화를 아니 영화라고 불리지 않아도 좋다. 잡지라도 잘라서 이어 붙여보면 된다. 뭔가 자신 안에서 밖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것을 담아두지 말고 뿜어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당신의 아름답고 도발적인 영화인생에 작은 보탬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이 모자란 글을 마감한다. 민동현/ 단편 <지우개 따먹기> <외계의 제19호 계획> 감독

▶ 이렇게 하면 누구나 민동현만큼 만들 수 있다 (1)

▶ 이렇게 하면 누구나 민동현만큼 만들 수 있다 (2)

▶ 카메라 장만부터 워크숍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