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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오, 평론 밖으로!
2001-02-19

<카이에 뒤 시네마> 등서 호평, 대중적 확보는 숙제

특집/ 세계가 바라본 한국영화의 얼굴...파리

신년호에서 지난해 베스트 10 영화를 평론가들별로 선정하는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올해의 경우 프랑스에 개봉돼 호평을 받은 <춘향뎐> 외에도 예외적으로 프랑스에 개봉되지도 않은 <오! 수정>과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포함시켜 눈길을 끌었다. 지난 2∼3년 사이에 급등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카이에 뒤 시네마>를 포함한 영화 전문잡지나 <르몽드>와 같은 주요일간지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기사를 빈번히 접할 수 있고, 크고 작은 규모의 한국영화제가 열리는가 하면, 대학 영화과 수업시간에 <서편제>나 <강원도의 힘>이 분석 텍스트로 선정되기도 한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이례적’ 관심이 커지는 것에 관해서는 세 가지 방향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프랑스에서 그 권위와 영향력이 더 실감되는 칸영화제에 한국영화가 대거 등장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미 10여 전부터 다른 영화제를 통해 임권택, 박광수, 장선우 감독이 소개되었지만 지난 98년 <강원도의 힘> <아름다운 시절> 가 동시에 본선 외 병행분야에 초대돼 호평을 받으면서, 앞선 세대와 일정한 단절을 보이는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새로운 작가들의 발견은 지난해 <춘향뎐>이 본선에 최초로 초대되고 <박하사탕> <오! 수정> <해피엔드>가 병행분야에 동시에 초대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제 <카이에 뒤 시네마>의 지적대로 “이미 50년대부터 프랑스에 소개된 일본영화나 80년대 이후 새로운 영화의 산실로 인정되는 중국영화에 비해 부당하게 잊혀졌던 한국영화”가 <르몽드>의 표현대로 “세계무대에 돌연 등장”한 것이다. 특히 각 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임권택 감독과 홍상수 감독에 대한 관심은 주요언론을 통해 만장일치로 표현되었다. 임권택 감독은 이미 <춘향뎐>에 앞서 <서편제>가 개봉되어 평론가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도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알려졌고 <춘향뎐>을 통해 거장으로서의 위치를 확인한 셈이라면 홍상수 감독은 주요 평론가들이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것이 참기 힘들다”고 표현할 만큼 프랑스 평단을 매료시켰다. 특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장들이 점차 탐미적인 이미지의 구축이나 스타일에 대한 탐구로 빠져드는 것과 대조적으로 곤충학자에 비교될 수 있는 관찰력으로 일상을 탐구하는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는 것. 이런 동시대 감독의 발견은 잘 알려지지 않은 지난 영화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한국영화제 개최로 이어졌다. 지난 99년 <카이에 뒤 시네마>와 파리시가 공동 주최한 한국영화제는 93년 퐁피두센터가 주최한 한국영화회고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한국영화제였는데 동시대 감독들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성황을 이뤘다. 올해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임권택 감독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등장과 함께 프랑스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는 요소로는 부산영화제의 성공을 빼놓을 수 없다. 해외영화제에 초대된 한국영화에 대한 간헐적인 접촉 외에는 한국영화 전반에 대해 무지했던 상황에서 부산을 다녀온 평론가, 기자들을 통해 한국영화 산업구조나 정부지원정책 등이 알려졌고 무엇보다도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일반 관객의 영화에 대한 열정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영화산업구조가 붕괴되고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이 바닥으로 떨어진 대만, 홍콩과 좋은 대조를 이루며, 한국이 ‘아시아의 예외적인 상황’임을 알리는 데 ‘아시아영화의 창’으로 자리잡은 데는 부산영화제의 영향이 크다. 동시에 프랑스 평단이 지지하는 감독들 외에 한국영화 전반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주어지는 것 또한 부산영화제를 통해서다. 해외에 소개된 감독이 혹시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하는 프랑스 평단의 짐작은 지난해의 경우 임상수 감독의 <눈물>을 제외하고 “칸에 소개된 영화들을 제외하고는 작품성면에서 큰 가치가 없는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썰렁한 평가로 이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쿼터제 투쟁이다. 한국과 같은 쿼터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방송을 통한 간접적인 쿼터제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 예외조항’을 지켜나가는 대표적인 국가인 프랑스가 한국의 쿼터제 투쟁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 98년부터 본격적으로 <르몽드>나 <카이에 뒤 시네마> 등 주요언론을 통해 급변하는 상황이 알려지고 특히 임권택 감독을 포함한 잘 알려진 감독들의 삭발 소식이 전해지면서 연대의식이 폭넓게 퍼져나갔다.

프랑스 평론가들과 한국영화의 만남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면 일반 관객과의 만남은 여전히 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개봉되는 영화가 드문 데다 세계의 가장 좋은 영화들만 골라서 볼 수 있는 프랑스 관객에게 한국영화는 선택할 수 있는 많은 영화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까지 프랑스에 개봉된 한국영화는 다섯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에 머문다. <달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그섬에 가고 싶다> <서편제> <거짓말> <춘향뎐>이 전부다. 지난해 11월22일 전폭적인 언론의 찬사 속에 파리에서 7개관, 전국 30여관에서 개봉된 <춘향뎐>은 현재까지 약 4만5천명의 관객을 모았다. 배급사인 Haut et Court는 차이밍량의 <구멍>을 공동 제작하고 배급하기도 했고 현재 일본, 대만의 예술영화를 배급준비중이라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듯 예술영화 배급이란 모험에 참여한 많지 않은 제작 배급사에 속한다.

UGC나 고몽 같은 대규모 극장체인망을 이용할 수 있었던 파리를 제외하면 Haut et Court는 <춘향뎐>을 대부분의 지방에서 소규모 예술관을 통해 배급했는데, 이런 통로를 통하는 예술영화의 기준으로는 4만5천명의 관객 수가 ‘명예로운’ 결과라고 만족감을 보였다. 이 배급사는 프랑스에 거의 배급된 적이 없는 국가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배급할 때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영화진흥기구(CNC)의 지원금 혜택을 받은 것이 도움이 됐고 앞으로 TV판매를 통해 적자를 메워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칸영화제 초대가 거의 결정된 상태에서 배급 계약을 맺게 된 <춘향뎐>이나 베니스영화제에서 스캔들을 일으킨 <거짓말>의 예를 통해 볼 때도 한국영화가 프랑스로 배급될 수 있는 지름길은 주요 영화제를 통하는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춘향뎐>이 개봉된 파리 중앙의 한 예술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한 중년 커플은 “이 영화야말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감”이라고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배급이란 관문을 넘은 뒤 한국의 영화와 파리의 관객의 만남이 시작되는 한순간이었다.

파리=성지혜 통신원▶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