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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전략적으로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2001-02-19

<쉬리>가 튼 물꼬, 틈새시장.합작 등 모색해야 할 듯

특집/ 세계가 바라본 한국영화의 얼굴

한국영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시장이 폐쇄적인 중국 본토에서는 최근 영화제나 토론회 등을 통해 소개된 한국영화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영화산업의 보루와 같은 홍콩에서 그 현상은 두드러진다. 만나는 사람마다 최근의 한국영화의 성장세를 언급하며 산업적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왜일까? 그 공은 우선 <쉬리>에 돌려야 할 것 같다. 99년 브로드웨이를 통해 배급된 <쉬리>는 600만 홍콩달러를 거두면서 한국영화의 존재를 알리는 데 기여를 했다. 비록 이러한 수치는 할리우드 대작의 흥행수입에는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시아의 영화산업이 위축되고 있는 객관적인 상황과 그동안의 한국영화의 해외배급을 고려해본다면 대단한 약진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90년대 초반에 비해 전체 흥행수입이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며 9억 홍콩달러에 불과한 박스오피스를 기록(99년)함으로써 그 하강곡선이 급격하게 이어지던 당시 홍콩의 영화계에서 미국을 제외한 타 지역의 외화가 이러한 성공을 거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한편 홍콩 아트센터에서 수개월에 걸쳐 상영된 와 <텔미썸딩> 등은 비록 산업적인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평단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홍콩인들에게 한국영화의 존재를 인식시켰고, 지금은 홍콩영화제를 통해 상영된 <주유소 습격사건> <반칙왕> 등과 <퇴마록><해피엔드>가 수입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약진이 곧 한국영화의 아시아 시장 진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최근 2년 동안 한국영화의 눈부신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가는 한국영화는 1년에 10편을 넘지 않으며 그나마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은 3편 남짓에 불과하다. 그 가격대도 몇만달러 선으로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45%의 흥행수입을 점유하고 있는 미국영화와 나머지 중 대부분의 수입을 점유하는 홍콩영화의 틈새에서 이들 한국영화가 거둬들이는 흥행수입은 <쉬리>와 몇몇 영화가 선전한 99년에도 전체의 1%를 넘지 못했다. 즉 이미 판도가 정해져 있는 이 시장을 우발적으로 등장하는 한국의 흥행작으로 공략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더욱이 해외배급의 경험이 적고 그 망을 갖추지 못한 한국영화계는 예년에 비해 그 경쟁력이 향상되었다고는 하나, 전체 200여개의 스크린 중 몇개를 차지한다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할리우드영화의 물결 속에서도 홍콩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외화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 일본의 몫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연속극, 잡지, 애니메이션, 영화 등 다양한 매체의 문화상품들이 홍콩에 들어와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작용을 하며 이는 일본영화의 보급에서도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홍콩영화인들은 한국영화의 기술적 향상과 젊은 에너지에 호감을 표하면서도 ‘한국은 해외진출에 과연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점을 묻는다. 예를 들면 홍콩영화가 ‘쿵후영화’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화려한 동작과 이를 구사하는 스타를 배출하며 자신의 시장을 개척하였으며, 일본이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차별화되는 자신들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영화에서는 ‘공포영화’ 장르에 강하다는 인식을 심어놓은 것처럼 한국은 어떠한 일종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이다.

홍콩이 최근의 한국영화계를 흥미롭게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경쟁상대로 인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영화감독이며 평론가인 슈케이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홍콩의 영화산업계가 지난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산업적, 기술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및 다른 지역의 영화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의 변화가 특기할 만하고 타이, 베트남영화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는 그는 한국이 국제적인 합작으로 주류영화 시장에 합류하며, 예술영화 시장에서도 성과를 보일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예감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만약 한국영화계에 자본이 들어오고 있다면 이러한 기회를 잘 이용하여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될 것이라는 충고와 함께.

미미한 듯하여도 분명히 달라진 의식과 기술향상은 한국영화계에 희망을 던진다. 중국의 WTO 가입으로 거대한 중국의 영화 시장은 개방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러한 와중에 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각축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이다. 어찌됐든 거시적으로는 시장을 만들고 개척하려는 사람들이 도전해 보기에 괜찮은 조건들이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으며, 한국영화와 이 산업을 둘러싼 인력들의 국제적 감각도 예리해지고 있다. 비록 현재 2800억달러에 불과한 시장규모라고는 하여도 그 잠재력에서는 대단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중국과 제작과 배급에서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홍콩 등의 객관적 역량들을 잘 살펴야겠다. 일방적으로 한국영화 해외진출이라는 꿈을 부풀리기보다는 어떠한 방법으로 초국가적 경쟁력을 갖춘 한국 인력들을 육성하고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가의 문제를 고민하고 시험해봐야 하는 시기가 된 듯하다.

도성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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