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자국에서의 성공에 더 힘써라
2001-02-19

개빈 스미스(<필름 코멘트> 편집장) 인터뷰

-<필름 코멘트> 신년호 특집으로 한국영화를 비중있게 다루었다.

=지금은 모두가 한국영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한국영화는 최근 수년간의 대발견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영화는 서부의 태평양 연안지역으로 좀더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 같다. 뉴욕은 좀 다르다. 한국영화에 대해서 크게 흥미로워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김기영 감독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제2회 부산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있은 뒤로 다른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행사가 치러졌지만 뉴욕에서는 아직 기회가 없었다. 우리가 이런 경향을 바꿀 수 있지 않겠나. 사실은 좀더 긴 기사를 생각했다. 한국 특집은 앞으로 우리가 다룰 다른 나라들에 대한 기사의 모델 같은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지금까지의 한국영화는 참 보기 힘든 영화였다. 이제까지 본 작품도 임권택 감독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최근 젊은 감독들의 작품들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비디오보다는 필름으로 영화를 감상하려는 나의 결벽증 때문이기도 한데…. 아무튼 장선우 감독에 대해서는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나쁜 영화>와 <거짓말>을 봤는데 더욱 많은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은 모두 다 보았는데 그의 첫 작품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뉴욕의 진지한 영화광이라면 틀림없이 봤다고 할 만한 몇 안 되는 한국 작품 중 하나다. <오! 수정>은 좋은 영화이기는 한데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최근 한국영화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다. 1998년 에든버러영화제에서 관객에게 <아름다운 시절>을 소개했고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한 바 있다. 그때 나는 그의 영화를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와 비교했는데 이광모 감독 스스로는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지난해 동안 미국에 <거짓말> <춘향뎐>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한국영화가 갑자기 세편이나 배급이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세편 모두 주제나 스타일면에서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작품들이다. 세 작품 모두 독특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이 배급된 것은 무엇보다도 작품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좋은 시작이고 앞으로 더 많은 한국영화가 배급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영화를 배급하다보면 약간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큰 배급사들은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규모있고 안전한 프로젝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영화사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발생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배급한 Cowboy처럼 아주 규모가 작거나 <춘향뎐>을 배급한 Lot47같이 신생 회사인 경우 자신들의 입지를 세워줄 수 있는 영화를 확보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이 한국영화들이었던 셈이다. 한국영화들의 경우 미라맥스나 USA필름, 파인 라인 같은 회사들이 선호하는 ‘화려하고 관습적이고 안전한’ 영화들은 아니기 때문에 이들 배급사에 기회가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Cowboy의 경우는 상업적 요소보다는 예술적 측면에 좀더 큰 비중을 두고 자신들이 진정으로 높이 평가하는 작품만을 배급한다. 아마도 그들은 <거짓말>을 정말로 좋아했을 것이고 또한 논란 많은 영화의 내용이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의 경우 미국의 배급업자들이 보기에 타산성이 없어 보일 것이기 때문에 작은 배급사조차도 만나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 만약 그의 작품이 이곳에 배급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일 것이다.

-한국의 영화인들은 최근의 국제적인 성공으로 상당히 고무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해외시장을 의식하거나 할리우드의 흥행공식을 본뜬 영화들이 상당수 제작되고 있고.

=현실적으로 우리 잡지는 매우 작은 잡지이고 유감스럽게도 우리 잡지를 구독하는 소수의 독자들 외에는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관객은 예측 불허이고 그 선택의 이유 역시 많은 경우 매우 불분명하다. 앞에서 언급했던 감독들이 계속 작품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결코 미국 관객을 의식해서 영화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일종의 액션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마 다른 곳에서도 승산이 있겠지만 <춘향뎐>이나 <거짓말>이 호응을 얻은 것은 그들 작품이 매우 한국적이기 때문이다. 예술영화라는 것은 다른 문화이고, 다른 문화와 만나는 것이다. 유럽에서 나온 영화든 아시아에서 나온 영화든 그것이 미국적인 것이라면 나는 관심이 없다. 다른 아시아시장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라고 본다. 하지만 아시아권을 벗어나 그 이상의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영화의 정체성이 불투명해질 뿐 아니라 미국의 관객이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에 배급된 세편의 영화가 한국, 혹은 한국영화의 현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나? 서구의 비평가나 관객이 선정적이고 이국적인 것만 쫓는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세편의 한국영화 역시 다소간의 차이는 있어도 분명히 그러한 요소들이 있다. 아마도 영화, 특히 예술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틀림없이 ‘다른’ 문화와 역사를 발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관객이 영화를 보기 전에 얼마의 사전지식을 가져야 하고 영화로부터 그 문화에 대해 어떤 부분을 배우고 어떤 부분을 믿지 않아야 할지를 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국영화는 이제 해외 진출의 초기 단계에 있다.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위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프랑스가 자국영화의 해외 홍보에서 성공적이라 할 만한 모델인데, 각종 정부 기금과 관련 단체들이 프랑스영화의 해외 진출을 위해 동원되고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 본다. 프랑스영화가 해외에서 거두고 있는 성공은 프랑스 문화가 오랫동안 유지해온 매혹적인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이것 역시 일종의 이국주의나 낭만적 관심이라고 할 만한 것인데, 현재로는 이것도 별 효과가 없어보인다. 최고의 프랑스영화조차 지금 미국에서는 외면받고 있다. 각국의 영화들이 자신을 홍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관객이 더 많은 한국, 혹은 중국영화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좋은 영화’를 원한다. 그들은 영화가 어디서 오든 상관하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들이 단순히 ‘한국영화’라고 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한다는 것은 위험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한국영화가 자국 내에서, 그리고 아시아 지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노력을 집중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뉴욕=권재현 통신원·기록 김지니·사진 원혜석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