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Short Cut
정보에 관한 오만과 편견
2001-02-20

김봉석 칼럼

<캐스트 어웨이>에서 4년 만에 돌아온 척의 애인은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녀를 가정으로 돌려보내고 척은 말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종합한 결과, 그녀를 돌려보내야 했다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모든 것은 수없이 바뀌게 마련이다. 무인도에 갇혀 있던 4년간,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난 변화. 척은 돌아와 그 변화를 하나둘씩 받아들인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은 척은, 그 정보들을 분류하고, 종합하여 자신의 길을 선택한다. 어디 척뿐인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 자신이 획득한 정보를 이용하여 세상의 파도를 헤쳐나간다. 각자 취사선택한 정보가 개인이나 사회의 지침 혹은 방향키가 되는 것이다. 정보를 다루는 방식에 따라, 그 선택의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최근 나온 <옛 문명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꽤 흥미로운 책이다. 그레이엄 핸콕의 일련의 <신의 지문> 시리즈에 비견한다면 더욱 그렇다. <신의 지문>은 비주류 역사학에 속한다. 주류 고고학이나 역사학에서 인정하지 않는 주장을 대담하게 펼친 그레이엄 핸콕의 저서는, 전세계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옛 문명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이를테면, <신의 지문>에 대한 역사학계의 우회적인 답변이다. 저자인 피터 제임스와 닉 소프는 정통으로 역사공부를 한 사람들이고, 그들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증거를 통해서 ‘논리적’인 해답을 찾아낸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신의 지문>의 대담한 주장에 이끌린다. 아마도 그건 고대인들이 ‘별’에 대해 가졌던 호기심 혹은 외경심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들이 결코 갈 수 없는, 알지 못하는 그 무엇에 대한 막연한 친근감 같은 것들. 하지만 <옛 문명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집요하게 핸콕의 주장을 공박한다. 그 말들도 맞다. 그들의 정보와 논거가, 핸콕의 주장보다는 더욱 치밀하고 앞뒤가 맞는다. 핸콕의 주장을 공격하면서 쓰는 방법은, 다양한 정보와 치밀한 해석이다. 핸콕은 의도적으로 최신의 발견과 정보를 외면한다. 그리고 과거의 정보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골라, 의도적으로 끼워맞춘다. 유리한 것만 선택하고, 불리한 것은 슬쩍 외면한다. 하지만 역사학자가 아닌 독자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수많은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대중미디어나 오염된 아카데미가 대중을 오도하는 것도 그러한 ‘정보’의 차단과 왜곡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사실 나는 핸콕이 옳은지, 제임스와 소프가 옳은지 잘 모른다. 양쪽의 책을 모두 읽은 뒤에도 마찬가지다. 핸콕이 정보를 조작한 것처럼, 제임스와 소프도 조작이 가능하다. 그들이 어떤 정보를 어떻게 가공했는지, 대중이 명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자신만의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정보를 이용하여 그들은 대중에게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득한다. 주어진 정보만으로는 ‘논리적’이지만 때로 논리는 단 하나의 반증이 가능한 ‘사실’만으로도 완벽하게 무너질 수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자들은 오만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이용하여 타인을 휘두를 수 있다고, 자신이 우월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척은 자신이 시간을 비롯한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것은 정보뿐 세상을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보는 사람의 발길이 닿은 산길일 뿐 종착점이 아니다. 정보를 통해서 다다를 곳이 어디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명예나 우월감 등은 아니겠지.

lotu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