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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스터 공산주의
2001-03-13

신현준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냅스터가 폐쇄될 때 공짜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아쉬움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아쉬움은 크다.

2001년 2월 대중음악과 관련된 ‘정치적 공방’이 두개 있었다. 한국에서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를 위한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렸고, 미국에서는 냅스터(Napster)의 항소심 판결이 났다(냅스터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전자는 한국 대중음악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한 시민운동단체가 주최한 것이고, 후자는 대중음악을 ‘죽이는’ 냅스터에 대해 기성 음악산업계 주도로 제기한 것이었다. 두 사건의 성격은 한국과 미국이라는 사회의 차이만큼이나 달랐고, 세력들의 대립구도도 그랬다.

한국에서는 문화를 중시하면 ‘진보’세력(적절한 용어가 없다. 죄송)에 속하고 ‘비즈니스’를 중시하면 ‘기성’세력에 속한다. 묘한 것은 ‘산업’에 대한 양쪽의 입장이다. 전자는 TV가 대중음악을 지배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음반시장 자체가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장과 산업을 살리는 문제까지 시민운동세력이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지만 그게 한국의 현실이다. 반면 후자에 나온 토론자들은 ‘우리 가요’ 시장을 지키기 위해서 순위 프로그램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음악인의 국적만으로 ‘가요=우리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걸 ‘진지하게’ 주장하는 것이 더 이상했다. 최근 우리 가요의 ‘콘텐츠’는 노골적 표절이 아니더라고 외국의 유행을 추종한 것 아니었던가. 기성세력이 ‘우리 것’에 집착하는 반면, 진보세력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미국에서의 대립구도는 문화라기보다는 테크놀로지를 둘러싸고 형성되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진보를 두려워하면 기성세력에 속하고,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을 적극 수용하면 진보세력에 속한다. ‘예술’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비즈니스계쪽이다. “우리가 만든 예술품이 공짜로 거래되고 있다”고 분개하는 일부 음악인의 고전적 예술관이 “저작권 침해는 예술 창조를 질식시킨다”는 음반회사의 비즈니스 전략과 불편하지 않게 어울리는 산업시스템이 놀랍다. 반면 냅스터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보수적 음악산업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냅스터의 패소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우리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냥 들어서 좋으면 그만’인 음악에 대해서 테크놀로지, 저작권, 산업시스템 등의 복잡한 용어가 동원되는 현실을 지켜보는 심정은 심란하다. 요즘처럼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세상에서 음악 듣는 일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지도 반신반의하게 된다. 그저 TV와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대로 듣는 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사는 좋은 방법이라는 망발이 들 때도 있다. 음악이 ‘정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체라는 발상은 ‘한때 그랬던’ 것에 대한 시대착오적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착이 부활한 것은 냅스터 때문이었다. 차가운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따뜻하게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브라질인과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에 대해, 러시아인과 보리스 그레벤시코프(Boris Grebenshikov)에 대해, 나이지리아계 미국인과 펠라 쿠티(Fela Kuti)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은 수박겉핥기식의 해외여행보다도 유쾌하고 소중했다. 비즈니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무시한다면, 냅스터는 음악의 공산주의였다. 물론 ‘코리안이 이런 것도 듣느냐’고 시건방을 떠는 백인 떨거지들을 만나 불쾌했던 일도 있었고, ‘1960년대 록 음악 베스트’ 따위를 모은다고 허비한 시간도 적지 않았지만(그 파일들 대부분은 한번 대충 듣고 삭제되었다).

그래서 냅스터가 폐쇄될 때 공짜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아쉬움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아쉬움은 크다. 아쉽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답게 ‘돈 문제로’ 해결하기를 기대할 뿐이다(공산주의가 자본주의 이긴 적 봤나?). 걱정스러운 것은 한국에서 ‘미국도 불법이라고 판결했다는 이유로’ mp3 사이트를 폐쇄하라고 명령할 것 같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폐지를 반대하면서 ‘우리 시장을 지키자’고 말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대중음악에서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사랑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신현준/ 문화에세이스트 http://shinhyunjoon.com.n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