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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뜨고,해는 지고
2001-03-15

노먼 주이슨 감독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

Fiddler On The Roof 1971년,

감독 노먼 주이슨

출연 하이먼 투폴

EBS 3월3일(토) 밤 9시

1960년대의 할리우드는 이른바 ‘와이드스크린’ 대작영화가 명멸하는 시기였다. 가정교사 줄리 앤드루스의 <사운드 오브 뮤직>은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도라! 도라! 도라!> 등은 흥행에서 실패해 제작자에게 좀더 규모가 작고, 알뜰한 장르영화를 만들 것을 촉구했다. 당시 주디 갤런드, 앤디 윌리엄스 등의 텔레비젼 쇼 프로그램을 연출한 경력이 있는 노먼 주이슨 감독은 두편의 뮤지컬을 제안받았다. 하나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 그리고 나머지 한편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였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이 두편의 영화는 노먼 주이슨 감독의 전작들, 즉 <신시네티 키드>와 <밤의 열기 속으로>, 그리고 <화려한 패배자> 등 비주얼에 방점이 찍힌 장르물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면이 있다. 노먼 주이슨이라는 감독의 엔터테이너로서의 유연성을 요약해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장르 경계를 마음껏 넘나드는, 나무랄 데 없는 재능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마을에서 우유 가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테비에는 신앙심 깊은 사람이다. 그는 수다스런 아내, 그리고 다섯명의 딸과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장녀가 아버지와 상의도 없이 양복점 직공을 사랑한다며 결혼하겠노라고 공언한다. 딸들은 하나씩 남자를 만나 아버지 곁을 떠나는데, 차르의 유대인 박해가 엄혹해지자 테비에 가족은 정든 마을을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된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은, 희귀한 할리우드 뮤지컬이라 할 만하다.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모든 인간의 평등”을 영화의 주제로 삼곤 했던 노먼 주이슨 감독은 이 영화에서 우크라이나 지방 유대인들의 생활상에 관심을 둔다. 그들의 고유한 태도와 종교의식, 그리고 가족사를 다소 지루할 만큼 꼼꼼하게 스케치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 민족에 대한 관용과 동정의 철학으로 무장한 이 영화에 대해 톰 밀른 같은 평론가는 “감상주의와 촌뜨기 정신이 깃든” 작품이라고 힐난한 바 있다. 노먼 주이슨 감독의 인종 문제에 관한 천착은 덴젤 워싱턴 주연의 영화 <허리케인 카터>에 이르기까지 이어졌으니 그 일관성 하나는 존경스럽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원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원작이다. 아이작 스턴 등의 음악가가 영화에 출연해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원래 상영시간이 3시간여에 육박하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서사 뮤지컬의 대표작이라 할 만큼 상영시간, 그리고 규모면에서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는 영화다. 당시 관객에게 브로드웨이로 가지 않고도 스크린을 통해 뮤지컬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백미라면 <선라이즈 선셋>이라는 영화주제곡이 깔리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인간사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과정에 비유한 이 노래말은 단순명료한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종교적인 엄숙주의를 담고 있는 듯해 불편함을 느낄 사람도 없지 않을 듯하다. 처량한 멜로디의 노래를 듣기 위해선 영화가 시작한 뒤 또 한참을 기다려야만 하는 부담도 없지 않다.

김의찬 / 영화평론가 nuage01@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