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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사각지대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2001-03-15

외주제작 다큐멘터리 <수요기획>의 허와 실

<수요기획> KBS1 수요일 밤 12시

이 프로그램들의 최대 적은 눈꺼풀이다. 이홍렬도 서세원도 잠이 들었다. 밤 12시. 이 시간대에 우리는 KBS에서 각종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다. 그 각각의 운영방식이 특이하다. 월요일 12시에는 세계 속 한국의 이름을 ‘떨친’ 한국인들을 현지취재하는 <한민족 리포트>, 목요일에는 KBS 지방방송총국 프로그램에 전국방송 기회를 주는 <네트워크 기획>이, 수요일에는 각종 다큐멘터리들이 총망라돼 있는 <수요기획>이 자리하고 있다.

KBS, MBC, SBS 등 방송3사가 아닌 프로덕션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수요기획>의 외주제작방식은 특이하다. 프로그램들이 정해지면 책임지고 지속적으로 ‘납품’하는 식이 아니라, 어떤 프로덕션이든 참여할 수 있다. 기획서를 제출하고 채택되면 제작에 들어간다. <수요 다큐멘터리>라는 타이틀로 96년 시작된 이 ‘기획’의 목적은 외부 프로덕션의 제작능력을 향상시키고, KBS의 제작 노하우를 제공한다는 것. 이후 월요일로 옮겨갔다가 <수요기획>으로 이름을 바꾸며 다시 수요일로 옮겨왔다.

소재도 제각각, 완성도도 제각각

참여하는 업체가 많아서인지 완성품의 내용은 참여하는 업체만큼 다양하다. 시드니올림픽 옆에서 열린 장애인올림픽을 취재하는 휴먼물도 있고, ‘동경이’라는 꼬리없는 우리나라의 전통 사냥개를 소개하는 정보제공용도 있으며 미국의 아미시 마을을 찾아가는 풍물기행도 있다. 내용과 마찬가지로 그 완성도도 천차만별이다.

‘추적 금속활자는 어디로 갔는가’(2001년 1월31일 방영)를 보면 천박한 민족의식이 유일한 동력이다. “우리는 일본이 우리의 금속활자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초반부의 비장한 내레이션에 결의에 가득 찬 비분강개가 이어진다. “만약 일본이 우리에게 금속활자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일본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증인과 증언, 역사적 사료를 수집해올 것이다.” 하지만 수집결과란 초라하기 짝이 없다. “10만여자에 달하던 한국의 금속활자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우리의 취재팀은 다시 일본을 향했”는데, “일본 어딘가에 있다”는 확신으로 취재에 임했는데 이런 결과가 초래된 이유는, 그들이 분석하건대, “일본인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탓이다”.

무엇보다 이 다큐멘터리가 ‘실험적’인 것은 인터뷰다. 점잖게 대꾸하는 일본인 학자의 얼굴을 그대로 비춘 채 질문자의 다분히 감정섞인 질문이 그대로 여과없이 나온다. 공격하다가 뜨문뜨문, 단어를 기억해내지 못하면 그 일본인 학자의 도움을 받아 질문을 계속한다. ‘누구누구가 이렇게 말을 하던데’ 그러면 장면이 바뀌어 인용된 ‘누구누구’가 등장해 이야기를 한다. 다시 처음의 일본인 학자, 그는 “저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광범한 사료나 증언이 제시될 대목이 이쯤이다 싶건만, 몇마디 끝에 “당신이 그 연구자 아닌가”식의 맥없는 질문으로 한 단락은 마감된다.

역사를 전공한다는 한 시청자가 관련 게시판에 올린 글은 이 다큐멘터리가 시작부터 잘못된 건 혹시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이미 학계에서는 스와신사 활자가 그쪽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나봐요. 그건 지난번에 ‘사라진 금속활자를 찾아서’라는 거 할 때 이미 거론했던 것 아닌가요?”

다큐멘터리는 무조건 유익한가

다큐멘터리는 비평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KBS가 KBS2를 민영방송과 다를 바 없는 내용으로 꽉 채우면서 “시청료를 어디다 쓰냐”는 불평에 내미는 카드가 KBS1의 광고없는 방송이요, 각종 다큐멘터리다. 드라마/오락/다큐멘터리로 구분하는 프로그램 분류법에서 다큐멘터리 비율은 높아질수록 ‘좋아 좋아’ 소리도 높아진다. 방송에 들이대는 비평의 칼날도 다큐멘터리에 오면 무뎌진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그 사실의 진실도에 대한 기준은 높아야 하며,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이데올로기 또한 엄밀한 잣대로 진단해야 한다. 쇼에다가 흔히 공정성의 잣대를 들이밀며 나쁜 프로 썩 꺼지라고들 외치는데 다큐멘터리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이 어떤 순간에는 더 위험하다.

‘한국축구 꿈나무들, 브라질 유학중’(2001년 2월21일 방영)은 우리나라에서 브라질로 축구유학을 떠나는 초·중·고등학생들을 공항에서부터 동행취재한다. 이미 20여명의 한국 학생들이 축구유학중인 카레카 축구학교가 배경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학생들,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타지에서의 적막함, 한국축구에 대한 걱정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결론까지 다큐멘터리의 흐름이 명쾌하다. 일본의 축구 발전이 브라질로 유학간 학생의 대표선수 합류부터였다, 는 데까지 가면 그 정당성까지 확보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국 축구의 희망을 읽은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브라질에 왔다”는 기술 지상주의의 학생들, 한달에 1600달러(200만원)라는 거금이 드는 상황에서 능력있는 학생보다는 돈 많은 학생이 간 것 아닌가라는 의문, 초등학생 영어유학 붐이 그러하듯 부모의 욕심에 내몰린 것은 아닌가라는 쓸쓸함까지.

빠듯한 제작비가 선정적인 소재 부채질

다큐멘터리의 협찬은 우리나라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KBS <수요기획>팀의 양원석 차장은 “협찬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있다치더라도 그것이 프로그램이 반영된다면 제재조치가 가해진다. 특히 간접광고 부분은 아주 엄격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김에 좌우되지 않을 ‘용기’가 있다면 프로그램 질을 협찬방식으로 담보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큐멘터리의 질이 돈과 시간의 절대량에 비례한다는 것은 ‘진리’다. <수요기획>의 기획단계에서 프로그램 제작 여부를 결정하는 관행 또한 돈 때문이다. “만들고 방송되지 않는 위험부담을 줄인다.” 이 말은 우리나라 프로덕션들의 영세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BBC의 다큐멘터리가 훌륭하다지만 는 단지 ‘송출소’로 기능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완제품’을 방송해달라고 가져오는 일은 없다. 기획은 한장의 기획서로도 통과될 수 있는데, 그래서 프로덕션에서 선호하는 방법은 일단은 소재의 ‘호소력’이다. 그래서 금속활자라는 자극성 소재가 일본 로케이션과 결합하고, 축구라는 전 국민적 관심사가 브라질 조기유학이라는 소재와 결합한다. 하지만 소재의 선정성에 기댈 수밖에 없는 기획단계에서의 결정은 완성도에 의문부호를 찍는다. 딜레마다. 돈을 고려하자니 완성도가 울고, 완성도를 고려하자니 경제성이 운다.

소재에 의존하는 이런 키워드식 결정은 다큐멘터리의 전체적인 얼개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내에 시행착오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 채 방송되기도 한다. ‘탈모와의 전쟁’(20001년 2월14일 방영)의 경우 대머리라는 ‘재미있는’ 소재로 시작해서 탈모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학문적 열의가 있는 연구자를 지원해 한국 최초의 탈모 원인 호르몬 실험도 했는데, 실험의 결과는 “상관없음”이었다. 제작기간도 길어지고, 제작비도 이미 초과한 이 프로덕션에서는 연구를 그 정도에서 접기로 결정을 내린다. 프로그램 방송 뒤 지급되는 제작비는 1800만∼2천만원선. 빠듯한 제작비 내에서 뜻도 펴지 못한 채 미완의 다큐멘터리엔 전형적인 ‘해피엔딩’을 붙인다. 탈모 정복의 날은 멀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한국 축구의 희망을 본다.

특유의 실험정신이 아쉽다

이런 결론 역시 기사의 관행인 뜬구름잡기식 ‘해피엔딩’일지 모르겠으나 천박하게 강조하여 말하자면 “다큐멘터리의 ‘실험정신’은 이런 현실을 뚫고 지나가는 키워드다”. 더 천박하게 말하자면 “산이 70%고 부존자원도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인력자원만이 우리의 살 길”이었듯이 “자본의 영세성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실험정신밖에 없다”. 다큐멘터리만큼 혁신적인 분야는 없다. 놀라운 사실 없이도 일상의 혁명을 포착할 수 있으며, 어떤 결론을 내지 않더라도 다양한 각도의 반응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놀라움을 보여줄 수 있다. 뜬구름? 그렇다면 다시 내리는 결론. 실험을 펼쳐나가야 할 장(場)인 우리나라, 그 국민은 엄숙함과 구태의연함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실험정신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구둘래/ 객원기자 anyone@cartoon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