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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 신성일

배우재견, 청춘의 표정에서 인텔리의 포즈까지

<길소뜸>

폭발적 팬덤을 지닌 스타로서 좌절의 표정이 압권이던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주류문화에 포섭될 수 없는 짙은 패배의식과 무기력에 젖은 인텔리의 초상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톱스타의 지위에 있었던 배우 신성일의 여덟 작품에 주목한다. 그는 1960년대 중반 밑바닥 인생을 사는 피 흘리는 청춘의 얼굴을, 모더니즘 미학을 담은 영화들에서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현대적 인간상을, 70년대 호스티스물에서는 피로한 중년의 얼굴을, 80년대 <길소뜸>(감독 임권택, 1985)과 같은 리얼리즘영화에서는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로 중년의 이산민이 처한 서글픔을 보여주었다.

신성일은 1960년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에 조연으로 데뷔해 2013년 <야관문>에 이르기까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총 513편의 작품에 출연해온 현역 배우다. 출연했던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연배우였다. 자신의 고교 동창이 가수로 성공한 것을 보고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신성일은 배우학원에서 김수용, 유현목, 김기영 등 감독들의 강의를 듣게 되었고 이후 신필름의 배우 공모에 응시하여 합격하며 배우 경력을 시작하였다.

<별들의 고향>

신성일, 뉴 스타 넘버 원

배우 예명인 신성일(申星一)은 신필름 시절 ‘뉴 스타 넘버 원’이라는 영어 뜻을 이름에 담아 만든 것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작품은 한운사의 인기 방송극을 영화화한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1962)부터다. 본래 신필름 전속배우였던 신성일은 극동흥업에서 제작된 이 영화에 출연하며 신필름에서 물러나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본격적으로 신성일을 주목받는 신인 스타로 만들었고, 이듬해 극동흥업에서 제작한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1964)은 신드롬이라 불릴 폭발적인 팬덤을 만들어냈다. 1962년 불과 5편에 불과했던 출연작은 이듬해 22편으로 4배가 늘었고 1965년에는 38편, 1966년 한해 동안 89편의 작품에 출연했을 정도다. 당시 한해에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3분의 1에 주연으로 출연한 셈이다.

<내시>(감독 신상옥, 1968)와 같은 사극영화, <안개>(감독 김수용, 1967), <장군의 수염>(감독 이성구, 1968), <휴일>(감독 이만희, 1968)에 이르는 모더니즘영화, <춘몽>(1965)에 이르는 몽환적 색정극, <길소뜸>과 같은 차가운 리얼리즘영화들에 출연해왔기 때문에, 그의 배우적 필모그래피 앞에 한 단어의 명징한 레테르를 붙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한국영화사의 가장 풍요로운 시기에서부터 이후 중요한 분기점마다 그가 영화사적으로 기념비적 작품이 될 작품에 자신의 족적을 남겼으며, 이번 신성일 회고전을 통해 우리는 한국영화사의 그 결정적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 중반 <맨발의 청춘>과 <초우>(감독 정진우, 1966)에서는 1960년대식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신성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시기 신성일을 통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스타 시스템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발의 청춘>의 인기는 과히 살인적이었는데, 동명 영화 주제곡을 불렀던 가수 최희준은 신성일, 엄앵란과 함께 전국 순회공연을 하던 중 극장 앞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질서를 잡기 위해 소방차의 물대포가 동원되었을 정도라고 회고한다.

<맨발의 청춘>

전설과 신드롬을 거두어내고 다시 만나는 <맨발의 청춘>과 <초우>에서는 새 시대를 희망했지만 뒤이은 군사쿠데타로 좌절했던 4·19 혁명세대의 망탈리테를 확인할 수 있다. 정념의 시각화라고 해도 좋으리만치 이 두 편의 영화는 매너리즘에 빠졌던 대중영화들과 달리 청신하며 감각적인 영상을 통해 세대의 열망을 담아냈다. 혁명의 불잉걸이 미학적 스타일에 반영된 셈이었다. 순수와 퇴폐, 열망과 좌절, 선과 악이 혼종된 뚜렷하지 않은 윤곽을 지닌 신성일의 얼굴은 자주 패배하거나 좌절된 청춘의 표정을 담아냈다. <맨발의 청춘>에서는 엔딩 장면에 등장하는 남루한 맨발만큼이나 주먹에 맞아 피 흘리는 얼굴이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이후 <초우>와 <휴일>에서도 우리는 이 피투성이 얼굴의 청춘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신성일은 김수용의 <안개>, 이만희의 <휴일>, 이성구의 <장군의 수염>을 통해 자기모순적인 중년 지식인의 역할로 입지를 자연스럽게 넓혀갔다. 각각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이어령의 <장군의 수염>을 소설 원작으로 했던 <안개>와 <장군의 수염>은 김승옥이 시나리오를 담당했던 작품이고, <휴일>은 이후 한국 모더니즘영화의 대표 격으로 등극한 <귀로>(감독 이만희, 1967), <외출>(감독 이만희, 1968)의 백결이 시나리오를 담당한 작품이었다. 이들은 혁명의 좌절 이후 정치적 냉소의 분위기에서 무기력한 중년이 되어가는 인텔리를 주인공으로 삼는데, 여기서 신성일은 나른한 표정과 결단성 결여를 자신의 고유한 운명적 캐릭터로 지니게 된다. 이는 1970년대 대표적 호스티스물인 <별들의 고향>(감독 이장호, 1974)의 자기모멸적 화가 문호로 이어진다.

1980년을 전후로 한국영화에 동시녹음 관행이 들어서게 되었고 임권택의 <길소뜸>에서 우리는 성우가 아닌 신성일의 육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신성일은 이 영화에서 분단 전 길소뜸 출신의 이산가족으로서, 오래전 사랑했던 여인의 현실적인 변화를 서글프게 수용할 수밖에 없던 김동진 역할로 강한 잔상을 남겼다.

도회적 풍경에 어울리는

시대적 맥락이나 장르적 맥락을 넘어 본 회고전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신성일이라는 배우가 신분과 세대를 떠나 도회적 풍경에 어울리는 배우였다는 사실이다. <맨발의 청춘>에서는 모더니즘 양식의 고층빌딩이 들어서던 도시를 떠도는 조직의 하수인으로 등장했다. <초우>에서는 신분상승을 꿈꾸는 자동차 운전사로 분하였는데, 여기서 우리는 명동과 장충공원 등 도회적 유흥의 공간을 부유하던 야심찬 젊은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안개>의 배경은 안개가 명물인 지방 소도시지만 주인공 윤기준은 이곳의 대척점에 있는 도시 서울에 끌리는 인물이다. 제작 당시 영화가 어둡고 우울하다는 이유로 검열을 통과하지 못해 개봉되지 못했으며 2000년대 이후 새로이 발견된 이만희의 영화 <휴일>은 공허하고 무기력한 시간에 처한 남성의 도시 속 하루를 따라간다. 결혼할 여유가 없는 허욱은 여차친구의 낙태비를 구하기 위해 거리를 떠돌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겨우 훔친 돈으로 여자친구는 수술대에 오르지만 허욱은 낯선 살롱의 여자와 무의미한 정사까지 나누게 된다. 모멸적이며 궁극적으로는 파국적인 하루의 끝에 허욱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비 내리는 밤 전차 종점에서 내린다. “서울, 남산, 전차, 술집주인 아저씨, 하숙집 아주머니, 일요일 그리고 모든 것. 난 다 사랑하고 있지. 내가 사랑하지 않는 건 하나도 없어.” 어두운 도시 저편을 응시하는 피 흘리는 얼굴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그가 경유해온 밑바닥 청춘에서 나약한 인텔리까지의 캐릭터를 관통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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