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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철 편집장] 영화계 내 성폭력 긴급포럼, 그 이후
주성철 2017-10-20

“속 시원하시겠어요.” 지난주 며칠 동안 ‘성추행 남배우’가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여배우A 사건’으로 알려진 영화계 내 성폭력 사건의 당사자였다. 15세 관람가의 휴먼 멜로 장르로 노출 신은 없을 것이라는 제안을 받고 모 영화에 출연했으나 촬영현장에서 부적절한 신체접촉까지 일어나면서 여배우A가 전치 2주에 해당하는 좌상 및 찰과상까지 입은 사건이었다. 여배우A는 남배우를 강제추행 치상죄로 고소했으나 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업무로 인한 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 판결, 무죄를 선고했었다. 여배우A는 항소했고, 결국 남배우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수강명령 40시간, 신상정보 등록)의 유죄로 판결됐다.

이후 배우 조덕제가 직접 기자회견을 자처하면서, 공공연하게 퍼져나가던 그 남배우의 실명 또한 알려지게 됐다. 1심의 무죄 판결을 뒤집는 결과로서 성행위 또는 성폭력과 관련된 연기를 할 때, 사전합의의 중요성을 보여준 판결이라 할 수 있다. 법원 또한 “여러 사정에 비추어보면 피고인이 계획적, 의도적으로 촬영에 임했다기보다 순간적, 우발적으로 흥분해서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인다. 그러나 추행의 고의가 부정되지는 않는다”고 판결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자행되던 성폭력 관행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한 일이다. 아무튼 유죄 판결 이후, 당시 이 사건을 여러 차례 보도한 <씨네21>에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하던 영화인 중 한명이 “속 시원하시겠어요”라고 빈정대는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물론 시원하고말고.

올해 초 <씨네21>은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라는 이름의 긴급포럼을 열었고, ‘여배우A 사건’을 중점적으로 얘기했다. 그러고 보니 개최 당일 남배우A쪽에서는 포럼을 진행할 시 <씨네21>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협박성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야 밝히지만, 여배우A 또한 객석에 앉아 포럼을 경청했다. 포럼 전날까지 패널로 참석할 것인지 심각하게 논의했으나,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어떤 빌미를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인해 직접 나서지는 못했다. 포럼 내내 자신의 사건에 대해 들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얼마나 그 자리에서 직접 얘기하고 싶었을까.

대신 배우 곽현화가 용감하게 발언해주었다. 그는 <전망 좋은 집>(2012) 출연 당시 상반신 노출 장면을 찍지 않기로 구두 합의하고 출연계약서에 사인했으나 해당 장면 촬영일에 ‘편집과정에서 제외해 달라고 하면 반드시 제외하겠다’는 이수성 감독의 말을 믿고 노출 장면을 찍었다. 하지만 사전합의 없이 IPTV에 노출 장면이 들어간 무삭제판이 유통됐고, 이 감독을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었다. 당시 최초 패널 섭외 대상은 아니었으나 참석해주길 부탁했었다. 갑작스런 섭외였으나 그는 당초 잡혀 있던 스케줄을 조정하면서까지 포럼에 참석해 자신의 얘기를 들려줬다. 뒤풀이 자리에서 여배우A와 곽현화는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미리 올해의 기억을 결산해보자면, 올해 가장 인상적이고도 멋진 순간 중 하나였다. 여배우A 또한 조만간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하지만 얼마 전 곽현화는 감독과의 녹취록 등 새로운 증거를 추가 제출하고도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최초 여배우A 사건의 남배우에 대해서는 ‘촬영현장의 특수성’을 그토록 고려하던 법원이 <전망 좋은 집>건에 대해서는 완전히 그를 묵살하는 모순을 보인 것이다. 이에 불복한 곽현화는 현재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로, 이번 여배우A 사건의 항소심 결과가 의미 있게 반영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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