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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트
2001-03-20

<베이트>는 “영화에 대해 뭘 바래? 두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안 나면 되지”라는 소신을 갖고 있는 관객을 위한 종합선물세트형 오락영화다. 전자오락실 기계 화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속도감은 기본이고, 연방은행을 교란하는 컴퓨터 해킹, 첨단 IT 기술을 자랑하는 수사본부, 정신병 징후를 보이는 천재 범죄자, 뉴욕 뒷골목의 수다스런 날건달, 그가 영웅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되어주는 아내와 아들, 영화의 끝에야 밝혀지는 수수께끼 등.

어쩌면 할리우드의 프로듀서들은 ‘흥행영화 만들기 ABC’라는 교본을 갖고 있을 않을까. <베이트>는 그런 유의 노하우를 과시하는 훌륭한 짜깁기 영화다(험담을 하려는 게 아니라 장르영화가 원래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를 충분히 즐기려면 제이미 폭스가 연기하는 앨빈 캐릭터를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경마장의 말 관리인이던 앨빈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조차 사주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장난감을 훔쳐와서 들키기 전까지 두 시간 동안의 황홀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앨빈이 사소한 거짓말쯤은 입에다 달고 사는 떠돌이 좀도둑이 된 내력이다. 그런데 앨빈을 미끼로 삼아 위험한 상황에 서슴없이 내던지는 수사관이나 천재적이면서도 잔인한 범죄자에 견주어보면, 아무 때나 왈왈거리면서도 금세 마음이 약해지는 앨빈은 도리어 사랑스럽기조차 하다. 이들 세 인물의 관계는 또한 백인 대 흑인의 대립을 바탕에 깔고 있다.

검은 뿔테안경을 끼고 있는 살인범 브리스톨은 마치 하버드나 MIT의 수재처럼 보이는데, 이같은 이미지는 수학자이면서 폭탄 테러범이 된 ‘유나 바머’로부터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앨빈의 턱 밑에다 도청 장치를 몰래 끼워둔 수사본부는 위성 추적장치를 통해 소리뿐만 아니라 위치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그런데 앨빈이 차 안에서 듣는 음악소리가 전해지고 수사관들의 몸도 리듬에 따라 흔들거린다. 어떤 미디어도 일방통행은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후반부에 벌어지는 경마장에서의 추격 신이고, ‘브롱스 동물원’의 수수께끼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미국 관객에게는 매력있는 장난이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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