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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람차> 백재호·이희섭 공동 감독 - 지금 당장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18-08-30

이희섭, 백재호 감독(왼쪽부터).

<대관람차>는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일본 오사카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제작됐다. 사라진 직장 동료를 찾아 오사카를 떠도는 남자 우주(강두)의 걸음은 한때 꿈을 좇았던 모든 보통사람들의 걸음과 닮았다. 음악을 통해 잔잔하게 삶을 되돌아보는 이 영화는 거창한 꿈과 미래를 말하는 대신 내 옆에서 함께 걷는 이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호흡을 맞춘다. 공동 연출을 맡은 백재호, 이희섭 감독이 발견한 위로의 리듬과 공감의 박자를 여기 옮긴다.

-독립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해외 촬영에 공동 연출이다.

=백재호_ 극단 선배인 지대한 배우의 소개로 제안을 받았다. 일본을 오가면서 오랫동안 음악 활동을 해온 이종언 프로듀서가 오사카에서 음악영화를 한번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연락을 해왔다. 시놉시스는 있었는데 내가 생각한 방향이 아니었고 혼자 하고 싶진 않아서 이야기를 새로 쓰고 공동 연출이 가능하다면 해보기로 한 게 여기까지 왔다.

=이희섭_ 촬영감독으로서 백재호 감독과 배우, 프로듀서, 연출자로 모두 함께 작업을 해봤다. 연출에 대한 욕구와 고민을 항상 가지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며 함께 연출을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다. 사실 내가 쓰던 시나리오가 있어 백 감독에게 프로듀서를 부탁했는데 그건 당장 힘들다면서 이것부터 한번 해보자고 역제안해와서 낚였다. (웃음)

-막상 마음을 먹었어도 적은 예산에 해외 촬영까지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을 것 같다.

백재호_ 예산 부분은 오히려 쉬웠다. <꿈의 제인>(2016) 등 독립영화 프로듀서를 했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 알뜰하게 쓰는 건 몸에 익었다. (웃음) 모르는 이야기를 억지로 하기보다는 주변 이야기를 쓰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써나갔다. 오사카를 오가면서 받은 느낌, 현실적인 문제와 나의 고민들이 녹아들어가 있다. 한편으론 전작 <그들이 죽었다>(2014)와 다른 각도로 접근하고 싶었다. <그들이 죽었다>는 어떤 관객은 불편하게 느끼기도 하더라. 여전히 나의 이야기,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되 이번엔 좀더 보편적인 공감의 폭을 넓히고 싶었다.

-낭만적인 부분이 있지만 전반적으론 현실적인 톤의 영화다. 특히 오사카라는 공간의 정취가 잘 묻어난다.

이희섭_ 일본은 관람차가 놀이공원이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여러모로 공부도 했지만 직접 몸으로 느낀 것들이 더 컸다. 일본어를 할 줄 몰랐지만 일본영화와 문화는 자주 즐겼던지라 위화감은 없었다. 영화를 할수록 계속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커져가는데 어쩌면 그에 대한 자문자답 같은 이야기다. 내 주변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면 좋겠는데 내가 무엇을 해줄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주 역을 맡은 주연배우 강두가 두 감독님들을 롤모델 삼아 연기했다던데.

백재호_ 멋진 사람도 아니고 삶을 주도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완전 자유롭지도 않은? (웃음) 이건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많이 반복되는 대사가 “괜찮아?”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답할 때도 있고 괜찮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서로 비슷한 경험을 거치는 중인 사람들끼리 서로 묻고 걱정하는 사이에 조금은 괜찮아져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희섭_ 나는 항상 안 괜찮기 때문에 입버릇처럼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편이다. 적어도 우주가 오사카에 머물렀던 보름 동안은 괜찮지 않았을까, 먼 미래에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당장은 나쁘지 않은 순간들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두 사람의 취향이 상당히 다르다고 들었다. 공동 연출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차이로 인해 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이희섭_ 둘 중 한 사람은 이해해야 한다. 주로 내가 이해하는 편이다. (웃음) 가치관은 비슷한데 풀어가는 방식이 조금 다른 것 같다. 하지만 소통하다보면 결과적으로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다듬어진다. 백 감독이 이야기를 쓰고 내가 그걸 바탕으로 콘티를 잡고 백 감독이 다시 그걸 수정하는 식이다. 서로 크로스 체크가 되다보니 최종적으로는 더 나은 그림들이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럽다.

백재호_ 예를 들면 나는 메탈을 좋아하는데 이희섭 감독은 재즈를 선호한다. 하지만 둘 다 루시드 폴의 음악을 사랑한다. 어떤 면에서는 루시드 폴의 음악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만든 이야기라서 그런 부분의 의견 차는 전혀 없었다. 자극적이지 않은 화면을 배경으로 음악이 먼저 들리는 영화였으면 했다. 루시드 폴의 음악처럼 호흡도 길고 클라이맥스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으로 풀고 싶었다.

-성장을 억지로 그리지 않는데 한편으론 성장영화 같기도 하다.

이희섭_ 초반에 내가 그린 그림은 좀더 비현실적인 판타지였는데 백 감독이 현실적인 톤으로 가자고 했다. 원래는 공간을 정확하게 세팅하고 상황에 맞춰 카메라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선호한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장소를 찾아내고 넓은 숏에서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게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그러다보니 화면 안으로 의도치 않은 것들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덩달아 나 자신의 세계도 한층 넓어진 기분이다.

백재호_ 이전 스타일과는 완전 다른 작업이었다. 더 많이 이야기를 듣고 고집도 덜 부리게 되었다. <그들이 죽었다> 때는 대부분 카메라를 든 나의 시선이 곧 화면이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움직임을 멈추고 인물들을 움직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겐 도전이었는데 막상 해봤더니 만족스러웠다. 편집 단계에서는 프로 편집기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대중적인 호흡에 신경을 썼다. 예전에는 철저히 내가 결정하는 조금 외로운 작업이었다면 이번에는 모두의 애정이 모여 더 좋은 영화로 향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충실한 협업은 처음 겪는 경험이다.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하게 찍는 것 같다가도 종종 꿈꾸듯 몽환적이다. 일본영화 특유의 잔잔한 정서가 묻어나는, 소위 힐링물 같다가도 선을 긋듯 현실로 돌아온다.

이희섭_ 시나리오 자체가 이번 프로젝트와 닮았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고 고민하는 부분들이 캐릭터로 변환된 것이라 해도 좋겠다. 주인공 우주처럼 말도 잘 안 통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완성된 영화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는 모두가 우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주가 제자리로 돌아와 오사카에서 2주 동안 겪은 일을 꺼내보는 추억처럼, 약간 빛바랜 사진 같은 느낌의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백재호_ 뭔가 해결되는 영화는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영화다. 이미 답은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 누군가는 위로라고 부르기도 하고 공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극적인 변화가 없어도 그 시간을 거치고 나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면 한다. 극장을 나서면서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진다면, 주변 사람들을 한번 돌아보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둘 다 차기작으로 다큐멘터리를 진행 중이다.

이희섭_ 춘천 지역을 배경으로 <나는 집사>를 촬영 중이다.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극영화 시나리오를 위해 취재를 하다가 시작하게 됐다. 내년까지 촬영을 하고 9월 9일 고양이의 날에 맞춰 공개하려 한다.

백재호_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 제작진의 제의를 받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서 그분이 하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따라가는 이야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덧 지금 20대가 잘 모르는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서거 10주년인 내년에 맞춰 젊은 세대와 노무현 세대를 이어주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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