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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가도> 배우 전미선·전석호 - ‘살아야겠구나’ 그 진심을 전한다는 것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8-09-13

<봄이가도> 배우 전미선·전석호(왼쪽부터).

<봄이가도>는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옴니버스다. 세월호 참사로 고등학생 딸을 잃은 엄마(전미선), 세월호 인명 구조작업에 참여했다가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남자(유재명), 세상을 뜬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큰 남편(전석호)의 이야기가 차례로 이어진다. 전미선·유재명·전석호 세 배우는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픔을 위로하고 싶다는 젊은 감독들의 뜻에 동참해, 영화가 개봉까지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영화 <연애>(2005), <숨바꼭질>(2013), <내게 남은 사랑을>(2017),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2010), <해를 품은 달>(2012) 등에서 보여준 따스하고 부드러운 성정의 캐릭터부터 강하고 서늘한 느낌의 인물까지, 다양한 작품으로 필모그래피를 빼곡하게 채워온 전미선과 드라마 <미생>(2014), <굿와이프>(2016), <힘쎈여자 도봉순>(2017), <라이프 온 마스>(2018) 등에서 능청스럽고 유쾌한 밉상 캐릭터를 맛깔나게 연기한 전석호 두 배우는 <봄이가도>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이의 아픔을 절절하게 연기한다. <봄이가도> 개봉을 앞두고 전미선·전석호 두 배우를 만나 세월호 참사부터 최근의 한국영화에 대한 생각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봄이가도>

-유재명 배우까지 3인이 완전체로 모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전미선_ (유재명) 형이 현재 드라마 촬영 중인데, 야외 세트장이 폭우에 떠내려가는 바람에 다른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 드라마는 어떻게든 나가야 하니까.

-<봄이가도> 이전에도 서로 인연이 있었나.

=전석호_ 영화에서 같이 마주하는 장면이 없는데,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상영할 때 처음 봤다.

전미선_ 그땐 너무 바빠서 서로 대화도 거의 못했는데.

전석호_ 워낙 팬이라 마음만은 가깝다. (웃음) <봄이가도>가 학교(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후배들이 만든 영화라 캐스팅이 먼저 된 상태였고 그러면서 캐스팅 과정을 쭉 지켜봤다. 감독들이 아직 학생이라 열심히 발품 팔고 인맥 팔아서 유재명 형과 전미선 누나를 캐스팅했다. 우리끼린 캐스팅이 ‘베스트야, 베스트!’ 하면서 좋아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캐스팅이다.

전석호_ 그때 한창 누나가 드라마 <별난가족>(2016), <구르미 그린 달빛>(2016) 등으로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그래서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했다.

전미선_ 시나리오가 좋았다. 장준엽 감독이 찍은 단편도 봤는데 너무 재밌더라. 그 단편을 보면서, 이 친구 잘하면 <숨바꼭질>같이 임팩트 있는 데뷔작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참사의 경험이 자신의 예술작업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다고 얘기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배우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전석호_ 세월호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기억하고 싶었다. 그 시기에 <봄이가도>를 준비 중인 학교 후배 전신환 감독을 만났다. 세월호 이야기를 써서 갖고 왔는데 처음엔 안 한다 그랬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그런데 과연 시간이 더 지난다고 해서 준비가 될까. 피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딪혀보기로 했다. 나는 아직 잊지 않았다는 걸 말하고 싶기도 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야에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게 아니라, 난 연기쟁이니까 ‘연기로 이야기할게’ 했던 거다. 그런데 막상 그 기회가 오니까 피하게 되더라. 감독한테도 그랬다. “진짜 할 거야? 이러다 진짜 개봉하면 어떡하냐?” “그러면 같이 싸워주셔야죠.” “그래, 우리가 그렇게 유명하진 않아서 피해가 크진 않을 거야.” (웃음)

전미선_ 처음 시나리오만 읽었을 땐 오케이. 그런데 세월호 이야기라고 했을 땐 ‘글쎄’였다. 더군다나 아직 무언가를 증명해 보인 적 없는 학생 감독들이 이 이야기를 연출한다니 고민이 됐다. 어떻게 해야 서로에게 좋을까 생각했다. 당시 국민대학교에서 잠시 강의를 할 때였는데, 만약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았더라면 출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저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고 힘이 되면 좋겠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는 차였다. 그런데 마침 <봄이가도>의 출연 제의를 받았다. 내가 누군가를 평가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신인감독들에게 재능이 있다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겐 큰 모험이었다. 연기자는 한번 혹평받고 망가지면 회복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럼에도 내가 이 친구들과 모험을 하기로 했으니 그 책임은 내 몫이 된다. 사실 세월호라는 소재가 주는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연기를 할 땐 이쪽 입장도 되어보고 저쪽 입장에도 서보려고 했다. 너무 한쪽의 감정에 함몰되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찍었다. 그런데 감독들이 모두 남자라 엄마의 마음을 잘 모르더라. (웃음) 절제해달라고 하는데, 엄마의 마음은 그럴 수가 없거든. 내겐 부모의 마음이 중요했다. 세월호 이야기이기 이전에 부모와 자식의 얘기다. 그냥 사람의 문제다. 누가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도 아니고, 어떤 의도가 있고 없고의 문제도 아니다. 사람이라서 아픈 거다. 자식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감독이 영화로 잘 표현할 거라 하니 그럼 그것만이라도 잘 표현해보자 싶었다. 혹여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연기자로서 내 몫은 다한 게 아닌가 싶다.

전석호_ 생각 이상으로 이 영화에 출연하는 게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실제로 캐스팅도 쉽지 않았고.

전미선_ 마음이 맞고 뜻이 같으면 힘을 받아서 간다고, 이 영화가 개봉할 줄 누가 알았냐고. (웃음)

<봄이가도>

“간절한 마음으로 찍었다”

-개봉까지 하리라곤 생각 못했나.

전미선_ 전혀.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누가 용기내서 이 영화를 배급하고 상영하겠어, 싶었는데 한명, 한명 모이니 영화가 힘을 받아 쭉쭉 가더라.

-사전에 작품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들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혹시 참고했나.

전석호_ 그러진 않았다. 2014년 4월, 참사가 벌어지기 직전에 공연 준비를 위해서 히말라야에 갔는데 돌아오니 참사가 터졌다. 공연을 못하겠더라. 무대에 서기가 힘들었다. 건방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세월호 참사를 잊은 적이 없다. <봄이가도> 출연을 결정하고 나서, 무언가를 더 찾아봐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 가진 것 이상을 보여주려고 욕심내선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위로의 마음을 온전히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다.

전미선_ 나 역시 사람의 마음, 인간의 고통을 진실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아픔을 설령 다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가족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진실로 연기했다. 누군가와 헤어졌을 때 후회가 남는 건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제대로 효도를 못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지지 않나. 내 아이가 죽어서 아프고 슬픈 건 기본이고, 죄책감과 책임감 때문에 딸아이를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을 보여주려 했다.

전석호_ 나도 그 책임감에 대해 생각하며 연기했다. 영화에서 나는 아내가 냉장고에 붙여둔 김치찌개 조리법을 뒤늦게 발견하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다.

전미선_ 김치찌개가 담긴 냄비 뚜껑을 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더라.

전석호_ 나보다 김치찌개가 더 연기를 잘했다니까. (웃음) 김치찌개 장면을 제일 마지막에 찍었는데, 어느 정도의 감정이어야 하는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었다. 슛 들어갔을 땐 생각보다 커다란 감정이 밀려와서 놀랐다. 아내 역할을 맡은 배우(박지연)가 대학 동기다. 15년을 넘게 알고 지낸 친한 친구인데 갑자기 걔가 떠났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 친구가 내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란 생각을 하니까 확 감정이 밀려오더라. 간절한 마음으로 찍었다.

-연기로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건 참 위대한 일이다.

전석호_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치유를 받는 것처럼 영화를 보고 치유를 받기도 한다. 대단한 업적을 남기는 것보다 내 연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 생각하면 그것보다 뿌듯한 게 없다.

전미선_ 석호씨와 재명씨의 작품을 보면서 내가 그 위로를 받고 다시 살았다. 영화 속 그들처럼, 나도 가만있지 말고 ‘살아야겠구나’ 생각했다. 왜 우리는 꼭 누군가가 사라져야만 그 소중함을 알까? 그 전에 먼저 느끼고 알아야 하는데. 그 깨달음을 내 가족들에게도 말해주고 싶었다. 석호씨와 재명씨의 연기를 보고, 난 다시 동력을 얻어 살아갈 거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전석호_ 그 한마디가 또 나를 살린다. (웃음)

-신인 감독, 스탭들과 함께하는 현장이었다. 어떤 식으로 소통하고 현장에 녹아들려 했나.

전미선_ 일단은 잘 들었다. 감독이 뭘 원하는지 듣고 난 다음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간혹 감독이 생각하는 틀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하면 긴장을 하더라. 그럴 땐 감독의 의견을 존중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나의 부족함이 여실히 보였다. (웃음)

전석호_ 무슨 말씀을!

전미선_ 내가 연기력이 좋았다면 더 완벽하게 감독의 의도를 표현했을 텐데. 이 작품 하면서 또 한번 배웠다. 내가 그 친구들한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친구들한테 배운 거구나. 그래서 연기는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게 아닌가 싶다. 항상 연기는 어렵다.

전석호_ 나 역시 감독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그들을 믿었다. 그런데 첫 촬영을 하고 나서 후배들한테 샤우팅을 한번 날렸다. (웃음) 어느 순간 우리의 진짜 목표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예쁘고 멋진 컷을 건지는 데만 집중하는 것 같아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우리의 실력이 부족한 건 티가 나도 되지만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찍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두분 모두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최근엔 배우로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전미선_ 작품들이 너무 잔인하고 무섭다. 그래서 연기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가 많아서 연기가 너무 하고 싶어야 하는데, 그런 작품이 많지 않다. 요즘은 배우들의 연기도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사실적인 것 안에 절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연기도 잔인해지고 작품도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해 잘 버티는 것도 중요하다.

전석호_ 맞다. 어쩌면 남자배우라서 기회가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어떨 땐 하지 않는 게 답일 때도 있다. 최근엔 그렇게 버티면서 좋은 사람, 좋은 작품을 찾았던 것 같다. <봄이가도>를 할 즈음에 박선주 감독의 단편 <미열>을 찍었는데, <미열>이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아시아 단편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걸 장편으로 확장하면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진짜 장편으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언젠가부터 남자들의 영화에 피로감을 느꼈고, 그 시기에 여성감독의 영화에 짧게라도 출연하면서 여성영화에 무임승차 하고 있다. 개런티는 좀 적지만. (웃음)

<봄이가도>

무너지지 않는 성을 쌓는 기분으로

전미선_ 열심히 하면 돈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돈을 좇아가면 안 된다. 작품을 안 하면 수입이 없으니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버텨본다. 좋은 작품이 있을 거야 하면서. 그렇게 나만의 성을 차곡차곡 쌓아온 것 같다.

전석호_ 맞다, 그런 성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차기작이 더 궁금해진다.

전석호_ 앞서 말한 <미열> 촬영을 주말부터 시작한다. 겨울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즌2를 찍게 될 것 같고 공연도 계속할 계획이다. 촬영한 지는 좀 됐고 출연 분량도 적지만 한지민 배우 주연의 <미쓰백>도 10월에 개봉한다. <미쓰백>도 여성이 주인공인 여성감독(이지원)의 영화다. 더 다양한 영화가 관심 받으면 좋겠다.

전미선_ 9월 말에 조철현 감독의 <나랏말싸미> 촬영에 들어간다. 한글 창제의 숨은 과정을 보여주는 사극이고, 소헌왕후 캐릭터를 맡았다. <살인의 추억>(2003)의 멤버들인 송강호, 박해일 배우와 다시 만나, 겨울 내내 함께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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