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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러블로그>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백종헌 2018-09-18

<러블로그> 우희덕 지음 / 나무옆의자 펴냄

슬럼프에 빠진 코미디 작가가 있다. 그는 지난 1년간 상품성도 없고 그렇다고 작품성이 있는 것도 아닌 소설만 드문드문 발표했다. 그나마 소속된 코미디 월간지라도 있다는 것이 유일한 생명줄인데 어느 날 편집장으로부터 최후통찹을 받는다. “다가오는 10주년 특집호에 한줄이라도 글이 채택되지 않으면 재계약은 없다”고. 더이상 뭉개고 있을 수 없어 남은 일주일 동안 필사적으로 글을 쓰려 하지만 스스로 ‘비장의 카드’로 생각했던 원고를 잃어버리고 만다. 마지막으로 머무른 카페를 뒤져보고 지구대를 찾아 수사도 의뢰하지만 원고는 찾을 수가 없고 결국 인터넷 검색을 통해 원고를 찾아보려 하지만 잡히는 단서라고는 ‘블로그’뿐. 그가 카페에 원고를 가지고 있던 시간에 카페에 머물렀던 여성의 블로그를 단서랍시고 뒤지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현실세계와 블로그 주인장이 기가 막힌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블로그와 현실, 꿈과 현실이 중첩되며 주인공의 일주일간 행적을 따라가는 <러블로그>는 2018년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이다. 원고를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탐색하게 된 블로그의 세계와 거기서 일어나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해체한 독특한 구성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유쾌한 문체 속에서 지속적으로 코미디를 시도하는 코믹 장르 소설이다. 그 시도가 모두 유효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종종 우스꽝스러워지는 주인공의 행동과 아재개그,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발생하는 언어유희가 작가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유머 코드가 맞는다면 한번쯤 크게 웃을 수 있는 문장 역시 적지 않다. 쓰고 싶은데 안 써지고, 쓸 때에는 확신이 없던 작품이 막상 없어지니 엄청난 명작이었던 것처럼 느껴져 목숨 걸고 찾고 있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 이야기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문학을 야유하는 것인지, 스스로를 비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엇박자로 틀어지는 주인공의 삶이 웃기면서도 쓸쓸함을 유발한다.

끝이다 끝

블로그에서 느껴지는 저항감은 폭동 수준이었다. 편집장이 더이상은 감내하기 어렵다는 듯 구두로 계약조건을 적시했다.

“반복하지도, 번복하지도 않을 테니 잘 들어. 이제 일주일이야.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얘기야. 더이상의 기회는 없어. 그 안에 내 마음을 포복절도하지 못할 경우, 재계약은 요원하다.”

그것은 마감시간을 얼마 안 남긴 홈쇼핑 진행자의 멘트 같았다. 그들은 매번 마지막 기회, 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었다. 편집장은 아니었다. 다 같은 마지막이 아니었다. 반복되지 않는 마지막은, 곧 끝을 의미했다. 그는 웃음이 사문화 된 원고를 거래할 생각이 없었다.

“1년 동안 동굴 같은 옥탑방에서 글만 썼는데도 홍익인간의 시대는 아직입니까? 웃음 유발에 실패했지만, 그렇다고 암을 유발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겁니까?”(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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