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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ASEAN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 ‘FLY 2018’ 워크숍, 싱가포르에서 참가자들을 만나다
장영엽 2018-12-20

영화 친구를 만나 영화 동료가 된다

“초행자를 위한 아시아.” 전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현재를 조명한 책 <메인스트림>의 저자 프레데리크 마르텔은 자신의 책에서 싱가포르를 이렇게 정의한다. 중국과 말레이시아, 인도 등 다양한 아시아의 문화가 고유의 가치를 간직하며 공존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란다. 싱가포르에 입국해 5분만 걸어봐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아랍어와 중국어가 함께 들리고, 히잡을 쓴 사람들과 탱크톱에 쇼트팬츠를 입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뒤섞여 제 갈 길을 가는 나라. 싱가포르가 표방하는 문화의 다양성은 아시아 진출을 도모하는 서양의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이 싱가포르를 주목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메인스트림>의 구절을, 이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떠올리게 되었다.

졸업생들끼리의 협업이 참가자들에게는 큰 동력

이처럼 다양한 아시아 문화의 중심지, 싱가포르에서 지난 11월 21일부터 12월 4일까지 아시아 11개국 22명의 젊은 영화인재들이 참여한 영화 제작 워크숍이 열렸다. ‘FLY 2018’이라 불리는 이 워크숍은 한-아세안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ASEAN-ROK Film Leaders Incubator: FLY 2018, 이하 FLY 2018)으로, 영화인을 꿈꾸는 한국과 아세안의 청년들이 단편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2년 필리핀 다바오에서 개최된 1회 워크숍을 시작으로 타이 후아힌, 미얀마 양곤,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 캄보디아 프놈펜,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 이어 올해 일곱 번째로 싱가포르에서 개최되는 FLY 워크숍은 15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그보다 더 폭넓은 성과를 남겼다(자세한 내용은 91쪽 배주형 팀장 인터뷰 참조). 매년 FLY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 부산영상위원회의 배주형 팀장은 “졸업생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주목할 만한 신진 영화인으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 워크숍을 들었던 다른 아세안 국가의 졸업생들과 합작영화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FLY의 영향력이 굉장히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FLY 프로그램이 글로벌한 규모로 진행되는 여타의 영화 제작 워크숍과 다른 점은 19살에서 24살에 이르는, 영화 제작 경험이 적은 한-아세안 국가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제작 환경이 열악하거나, 자신이 영화인으로서 향후 진로를 선택해도 될지 고민 중에 있던 아시아 각국의 청년들은 FLY 워크숍에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굳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올해부터 열린 졸업생 홈커밍데이 프로그램에 참석한 미얀마의 코 코는 “미얀마 지역방송에서 TV 프로듀서로 일하던 나에게 FLY는 영화를 만드는 방법과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줬다”며 FLY에 참석한 뒤 자국에 돌아가 미얀마의 촉망받는 단편영화 감독이 될 수 있었다는 후기를 전했다. 라오스에서 온 케이는 2012년 FLY에 참가한 뒤 지금까지 동기들과 연락을 지속하며 다양한 합작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소감을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FLY가 아시아 11개국에서 온 젊은 영화인들의 꿈을 보다 구체화시키고 실현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7회 워크숍을 개최한 싱가포르에서도 자신의 꿈을 탐색하고 있는 22명의 젊은 인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지난 9월 말부터 각국에서 온라인상으로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한 뒤, 11월 21일에야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려했던 어색함은 없었다고. FLY 2018에 참여한 한국 출신의 이소은 교육생은 “화상 채팅을 통해 얼굴을 다 알고 있었기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같은 꿈을 지닌 다른 나라의 친구들을 만난다는 건 그들에게 낯설면서도 소중한 경험이었던 듯하다. 역시 한국 출신의 김휘근 교육생은 “한국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기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상하 관계가 바로 나뉜다. 그런데 여기서는 영어로 소통하다보니 동등한 위치에서, 신속하고 거리낌 없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어 편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FLY 2018에는 마스터클래스, 특강, 멘토링 등 영화인으로서의 꿈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핵심은 두편의 단편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22명의 교육생들은 싱가포르 출신의 차이이웨이 감독과 한국의 엄혜정 촬영감독이 멘토로 참여하는 A팀, 한국의 신동석 감독과 싱가포르 출신의 데릭 루 촬영감독이 멘토를 맡은 B팀으로 나뉘어 단편영화를 촬영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촉박한 일정 속에서 단편영화를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A팀의 경우 촬영 전날까지 시나리오가 변경되는 바람에 첫날 촬영을 마치고 많은 학생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오락실을 섭외해 촬영을 진행하던 B팀은 “이 정도로 큰 규모의 프로덕션인 줄 몰랐던” 사장님이 다음날 오락실 섭외를 취소하려 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을 겪어야 했다.

기회를 얻는 일의 가치

하지만 “서로 다른 아이디어 때문에 논쟁도 하고, 멘토 선생님들에게 혼도 나며, 현장에서 싸우다가 숙소에 와서는 다시 친구가 되는”(인도네시아 교육생 아위) 단편영화 제작 현장의 끈끈한 경험은 영화라는 꿈을 위해 모인 22명의 학생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어줬다. 12월 3일, 22명의 교육생들이 고군분투 끝에 만든 두편의 단편영화, <얀티>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가 싱가포르 내셔널 디자인센터에서 상영되는 순간, 졸업시사가 열리는 상영관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FLY는 우리 모두에게 문을 열어줬다. 그냥 기회만 준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이 중요하다.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영화와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의 문 말이다.” 필리핀에서 온 교육생 지오는 말했다. ‘우리는 확신해. 날 수 있다고’(We Are Certain, We Fly)라는 FLY 프로그램의 슬로건은 싱가포르에서 현실이 됐다. 그들의 찬란한 비행을 응원하며, 이어지는 지면에서는 11월 30일부터 12월 3일까지 동행한 FLY 2018 프로그램 4일간의 취재기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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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부산영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