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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영화㉘] <배심원들> 홍승완 감독 - 진심을 다해 애쓰는 오합지졸들에 끌린다
김소미 사진 최성열 2019-01-16

공대 졸업 후 서른살에 영화학교에 들어갔다는 홍승완 감독.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정보에는 필모그래피가 30여편이 넘는 노련한 촬영부 이력이 있기에 그에 대해 물었더니, 동명이인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6월, <배심원들> 대본 리딩을 위해 자리한 감독 너머 대형 프로젝터 화면엔 “처음이라 잘하고 싶어요”라는 글씨가 나타나 있었다. 2008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홍승완 감독의 시나리오는 무작위 추천으로 뽑힌 평범한 사람들이 살인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보통 사람들의 힘”이라는 감독의 믿음 아래, <배심원들>의 인물들이 열과 성을 다해 법정을 누비는 모습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올해 2월 중순 마무리를 목표로 후반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홍승완 감독을 만났다.

-시나리오 소재로 국민참여재판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막중한 임무를 맡아서 애쓰는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지금이야 잘 알려진 편이지만, 첫 국민참여재판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배심원제도가 생겼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로 배심원 후보자에 뽑힌 사람이 많았다. 국가의 부름을 받았으니 일단 나가긴 하는데, 한편으로 내내 어리둥절한 채로 거대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찾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처음엔 전문지식 없는 배심원에 대한 편견도 심했다고 한다. <배심원들>은 그런 시각의 반대편에 서서 한 사람의 전문적인 식견보다 평범한 이들의 집단 지성이 때때로 더 빛날 수 있다는 믿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제각기 조금씩 허술하고 미숙하지만 진심만큼은 뜨거운 사람들에 끌리는 이유가 있나.

=더 고민해봐야 알 것 같은데 본능적인 호기심 같다. 이를테면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사람들, 이미 훌륭한 권위를 지닌 사람들에게 묘한 반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야기를 만들 때 성격적으로 어리숙한 인물에게 애정이 간다. 내 성격도 약간 그런 편인데 그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웃음)

-우리나라 법정의 실제 사례를 조사하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나 역시 전혀 모르던 분야였으니 오랜 취재가 필수적이었다. 김상준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자문했고, 로스쿨에서 청강도 해봤다. 특히 모의배심원제로 3번 정도 참여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그림자 배심원은 정식 배심원단과 별개로 방청석에서 재판을 참관한 후 실제와 같은 절차를 거쳐 유무죄의 결론을 도출해낸다. 물론 판결에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그 경험 덕분에 법정에 모인 다양한 사람을 지켜보면서 사건을 대하는 세대별 차이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의 일에 얼마나 열심히 임할까 싶지만, 직접 만난 판사들에게 물어보니 모의배심원제임에도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서 자기 일처럼 몰입한다고 하더라.

-재판장 김준겸 역을 맡은 배우 문소리가 보여줄 카리스마가 <배심원들>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될 것 같은데.

=여성 재판관들이 그동안 큰 역할을 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전 대법관도 있고, 헌법재판관 이정미 재판관도 최근 우리 사회에 굉장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캐릭터가 확고해질수록 문소리 배우가 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적이고 예민한 얼굴 한편에는 부드럽고 포용력을 갖춘 얼굴이 공존한다. 양면이 모두 정확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배우를 만났을 때 확신이 더욱 강해진 경우다. 문소리 배우는 캐스팅 이후에 여성 판사들과 수차례 만나면서 꼼꼼히 질문하고 공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배심원들>로 영화 데뷔를 앞둔 박형식은 8명의 배심원 중 마지막으로 선정된 청년 권남우를 연기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으로 기성세대가 잃어버렸을 수도 있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그다지 똑똑하진 않지만,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열심히 매달리는 캐릭터다. 사업이 어려워 회생신청을 두번이나 하면서도 파산신청만은 끝까지 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사람,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돋보이는 사람이다. 너무 잘나서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는 인물을 상상했는데 박형식 배우가 남우가 지닌 ‘첫 마음’의 느낌을 잘 소화했다. 일단 이미지가 무척 좋았다. 굳이 얼굴 근육을 드라마틱하게 쓰지 않아도, 맑고 진심 어린 느낌이 묻어난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눈여겨본 법정영화가 있나.

=많은 법정영화에서 주인공은 엘리트인 경우가 많다. 맡기 싫은 사건을 맡았다가 어떤 일에 휘말리는 변호사 이야기라든가. 그래서 생각 외로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영화는 없었다. 시드니 루멧의 <심판>(1982), 조 페시 주연의 <나의 사촌 비니>(1992) 정도가 떠오른다. 물론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 같은 영화도 봤다. 하지만 지나치게 심각한 분위기는 경계하자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였다. 기존 법정영화보다 경쾌하게 만들고 싶었다. 물론 살인사건 자체의 무게가 있기 때문에 마냥 밝게 갈 수는 없었고, 양쪽을 자유롭게 오가는 분위기로 완성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법정영화보다는 차라리 장원 감독의 <귀신이 온다>(2000)쪽이 더 영감을 줬다. 포로를 심문해야 하는 마을 사람들이 나오는데, 본인들은 굉장히 진지한데 반해 하는 짓이 계속 어설퍼서 재미를 준다.

<배심원들> 촬영 현장.

<배심원들>

감독 홍승완 / 출연 문소리, 박형식, 백수장, 김미경, 윤경호, 서정연, 조한철, 김홍파, 조수향 / 제작 반짝반짝 영화사 / 배급 CGV아트하우스 / 개봉 2019년 상반기

● 시놉시스_ 2008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건을 재구성해 영화에 담았다. 청년 권남우(박형식) 등 법적 지식과 거리가 먼 8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인사건의 배심원으로 호출받아 재판장에 모인다. 첫 국민참여재판을 이끄는 재판장 김준겸(문소리)과 사법부 역시 일반인과 함께 판결을 내리는 상황이 처음인 것은 마찬가지다. 얼핏 서툴지만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러 사람들의 진심이 법정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 다채로운 배우들의 얼굴의 스펙터클_ “배심원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문소리)에 “배우의 얼굴이 가장 큰 스펙터클”(홍승완)이라니 기대할 수밖에 없다. 재판장과 어쩌다 배심원이 된 8명의 배우들 외에도 법원장 역에 권해효, 사건의 중심에 선 강두식 역에 서현우, 검사 역에 이영진, 청소원 역에 김선영 등 법원 안팎을 다양한 배우들이 가득 채울 예정. 촬영 한달 전부터 하루에 6시간 이상씩 전체 리허설을 수차례 진행했다는 홍승완 감독은 “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진심으로 뭉쳐지는” <배심원들>의 은근한 앙상블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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