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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시호일> 오모리 다쓰시 감독 - 찬찬히 들여다보기, 삶도 영화도…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9-01-24

엄마의 권유로 별 뜻 없이 시작한 다도. 노리코(구로키 하루)는 그렇게 발을 들인 다도 교실에 무려 24년간 다녔다. <일일시호일>은 노리코의 수업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아주 독특한 흐름의 영화다. 그사이 노리코의 인생에도 취업, 고민, 가족과의 이별 등 많은 사건들이 지나가지만, 다도 교실은 외부의 세계에서 보호하듯, 그녀를 위로하고 다독여준다. “다도 교실 안에 작은 우주가 있다면, 그 안은 어떤 모양일까 들여다보고 싶었다”는 오모리 다쓰시 감독. 노리코는 다도를 몸에 익히고, 마침내 자연의 변화를 감지한다. 이 영화의 깨달음은 단순히 ‘차 한잔의 여유’에 머물지 않는, 귀담아 새겨들어야 할 인생의 방법론을 제시해준다.

그 의도가 적중했다. <일일시호일>은 일본에서 지난해 12월 개봉해 100만 관객을 모을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다도 교실의 다케다 선생으로 분해 존재감 있는 연기를 선보인 기키 기린의 유작이라는 점에서도 이 영화의 방법론이 관객에게는 한층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한국을 찾은 오모리 다쓰시 감독을 만나 인생의 가르침을 전하는 다도 교실의 촬영 뒷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모리시타 노리코의 에세이 <매일 매일 좋은 날>을 원작으로 한다. 특별한 사건 없이 진행되어 영화로 선뜻 만들기가 쉽지 않은 소재였다.

=오히려 원작을 보면서, ‘영화화하고 싶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커지더라.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바로는 알 수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는 원작의 내용이 특히 와닿았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알아가면 언젠가 깨닫게 된다는 이 책의 주제가 공감되더라. 더불어 여성의 반생을 그리는 영화들이 꽤 있지만, 아직까지 나는 그런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강렬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주인공 여성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그려보고 싶었다.

-일본에서 지난해 12월 12일 개봉해 60일 만에 100만명 관객을 동원했고 지금도 상영 중이다.

=기키 기린의 영향이 컸다. 일본에서 기키 기린이 나오는 영화는 대부분 흥행에 성공한다. 작품 제안이 많이 가는데 굉장히 신중하게 영화를 고르고, 그래서 그분이 선택한 작품은 좋은 영화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키 기린은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도 강한 메시지를 준다. 여성으로서 그분을 본받으려는 이들도 많다. 또 연배가 높은 분들이 많이 보러 오시는데, 최근 젊은 층 위주의 영화가 많다 보니 차별화된 것 같다.

-카메라가 다도실 안의 한 부분, 정원을 배경으로 하는 자리에 거의 고정되어 있다. 어떤 컨셉으로 촬영을 계획했나.

=다도를 배웠다. (웃음) 이 영화를 찍으려면 다도는 필수였다. 다도의 작법을 모르면 카메라를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특별히 연출법을 구상했다기보다 무의식적으로 했다. 노리코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려고 했다. 노리코가 노력하는 스타일이고 좀 여유가 있는 캐릭터인데, 그게 다도의 리듬과 잘 맞더라. 만약 영화의 주인공이 매사 결정을 잘해서 노리코의 부러움을 사는 사촌 미치고(다베 미카코)였다면 전혀 다른 리듬이 됐을 거다.

-노리코가 다도를 배우는 24년의 시간 동안, 다도실 안에서 변화하는 사계절의 정원이 그려진다. 긴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나.

=촬영은 1개월 만에 했다. (웃음) 원래 있던 집을 조금 개조했고, CG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조명과 촬영의 힘을 많이 빌렸다. 겨울 장면은 겨울용 헐벗은 나무를, 여름 장면은 초록의 풀을 심었다. 다도 교실에서 정원을 보는 거라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좀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정원의 나뭇잎, 그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가 세포의 움직임을 묘사한다. 상징하는 바가 컸다.

=그건 원래 원작에 없는 장면인데 순간 영감처럼 떠올라 넣기로 했다. 촬영 때, 프로듀서들이 아마 이 장면이 나오면 분명 감독님의 의도를 질문할 거라고 했는데 의도를 알아주셔서 다행이다. (웃음) 다도실 안에는 인공적인 게 없다. 나무, 땅, 식물들로 둘러싸여 있고 다기들도 나무나 돌 같은 천연재료로 만든 것들이다. 그런 자연의 상태에서 주인공의 성장과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다도실과 정원이 하나의 작은 우주이고, 세포가 작은 것에서 성장하고, 그사이 또 누구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복잡한 다도 예법에 대해 ‘왜’냐고 묻는 노리코를 향해, 다케다 선생은 “차는 형식이 먼저다”라는 말을 들려준다. 다도의 방법이 아니라 인생의 방법론 중 하나로도 들린다.

=나도 배우들이 형식적으로 연기하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형식을 따지지 말고 감정대로 하라고 하는데, 형식이 더 중요한 것들도 있는 것 같다. 일본에는 다도뿐만 아니라 가부키라든지 그런 부류의 것들이 많다. 이 작품을 하면서 그런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영화의 시작 부분에 그 장면을 넣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그런 인생의 방법론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다케다 선생은 24년간, 20대 초반의 노리코가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취업, 결혼, 이별 등 그녀의 인생에 일어난 일들을 묵묵히 지켜봐준다. 배우 기키 기린의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와 그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캐릭터였다.

=그분은 아셨을 거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앞으로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을. 각본을 보고, 자신의 삶과 어느정도 싱크로되었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다. 기키 기린은 부드러움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엄격함도 가지고 있는 배우다. 기키 기린이 원래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담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배우들에게 접근하듯이 하지 않고, 그분이 하시는 대로 열어뒀다. 현장에 오면 영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으셨고, “밥은 먹었니?” “과자 좀 먹으렴” 하며 스탭들을 챙겨주셨다. 돌아가신 후 연기상을 수상하셨는데 대리 수상하러 온 따님이 “어머니는 딱히 연기를 하신 게 아니라 생활의 연장이었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이해가 가더라.

-노리코를 연기한 구로키 하루는 또래 배우들 중 눈에 띄는 필모그래피로 일본영화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구로키는 이 작품 전부터 잘 알았다. 내가 연출한 <도련님>(2012)에서 무차별 살상을 저지르는 남성주인공을 보면서, 본인도 저렇게 감정을 다 드러내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더라.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작은 집>(2014)으로 주목받았고, 그래서 일본의 고전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강하게 있었다. 새로운 이미지에 목말라 있었는데, 이번에도 조신하고 차분한, 다도를 하는 캐릭터를 맡았으니(웃음). 동시대 일본 여배우 중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이고, 그래서 앞으로 더 기대가 크다.

-노리코는 어릴 때 보고 이해하지 못했던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1954)의 의미를 알아갈 때까지, 그 변화를 드러낸다. 한편의 영화를 이해한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표현하고 싶었나.

=내 경우 어릴 때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1955)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소리야’ 했는데, 그 안에 한 여성의 삶이 담겨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살면서 경험치가 달라지면서 예전에는 전혀 몰랐던 것들이 보인다. 반복해서 영화를 보다 보면, 새롭게 ‘아, 이거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인터넷도 있고 정보를 빨리 습득하는 시대라 모르면 모르는 채로 무시하고 배제하기 십상이지만, 모르는 게 있으면 영화에서처럼 옆에 뒀다가 천천히 알아가면 되지 않을까. 나도 영화를 하나도 모르고 시작했다가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됐고, 지금은 여러 편의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내 삶도 그렇게 비슷하게 흘러왔다. 이 영화도 한번 보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번 더 보고 또 다른 걸 발견해주면 좋을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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