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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찍은 홍경표 촬영감독과 <리틀 드러머 걸> 촬영한 김우형 촬영감독의 대담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9-02-01

빛이 예쁘지 않더라도 이야기와 잘 맞으면 그게 좋은 촬영이다

홍경표 촬영감독, 김우형 촬영감독(왼쪽부터).

“이 인터뷰를 왜 하는 거야?” 홍경표 촬영감독은 다 알면서 오리발을 내민다. 평소 무뚝뚝한 그가 오랜만에 친한 사람을 만났을 때 보여주는 특유의 너스레다. 올해 영화 팬들이 특히 기대하는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과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일 것이다. <기생충>은 모두 백수인 기택(송강호) 가족의 장남 기우(최우식)가 가족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과외선생 면접을 보러 가면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그린 이야기로, 아직은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다. <리틀 드러머 걸>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가 벌어졌던 1970년대 후반, 이스라엘 정보국이 영국 여배우를 비밀 첩보 작전에 끌어들이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스릴러다. 두 작품은 각각 홍경표와 김우형이라는 한국 최고의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잡아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됐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봉준호 감독과 호흡을 맞춘 건 전작 <설국열차>(2013) 이후 6년 만이다. 김우형 감독이 박찬욱 감독과 짝을 이룬 건 완성되지 못한 박찬욱 감독의 프로젝트 <도끼> 이후 처음이다. <씨네21>은 절친한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아 <기생충>과 <리틀 드러머 걸> 작업 과정에 대해 미리 들었다. 두 작품 모두 아직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까닭에 홍경표, 김우형 두 촬영감독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참, 대담 중간에 미국 애틀랜타에서 루벤 플라이셔 감독의 신작 <좀비랜드2> 촬영을 준비하던 정정훈 촬영감독까지 영상통화로 세 사람을 만나게 할 계획이었으나 정정훈 촬영감독이 촬영 직전 마지막 스카우트 일정이 있어서 성사되지 못했다.

● 홍경표 필모그래피_ 2019 <기생충> 2018 <버닝> 2016 <국가대표2> 2016 <곡성> 2014 <해무> 2013 <설국열차> 2013 <고령화 가족> 2011 <오직 그대만> 2010 <초능력자> 2009 <여배우들> 2009 <마더> 2008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007 <M> 2007 <어깨 너머의 연인> 2005 <태풍> 2003 <태극기 휘날리며> 2003 <내츄럴 시티> 2003 <지구를 지켜라!> 2002 <쓰리> 2002 <챔피언> 2001 <킬러들의 수다> 2000 <순애보> 2000 <시월애> 2000 <반칙왕> 1999 <유령> 1998 <처녀들의 저녁식사> 1998 <하우등>

● 김우형 필모그래피_ 2019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2017 <1987> 2016 <더 킹> 2015 <암살> 2014 <카트> 2013 <사랑의 가위바위보> 2012 <분노의 윤리학> 2012 <돈의 맛> 2011 <고지전> 2010 <만추> 2010 <워리어스 웨이> 2010 <시라노; 연애조작단> 2009 <용서는 없다> 2009 <파주> 2008 <푸른 강은 흘러라> 2007 <그놈 목소리> 2007 <오래된 정원> 2005 <그때 그사람들> 2004 <얼굴없는 미녀> 2003 <바람난 가족> 2002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2001 <장선우 변주곡> 1999 <거짓말> 1999 <해피엔드> 1997 <나쁜 영화>

-그간 어떻게 지냈나.

=홍경표_ <기생충> 촬영을 끝내고 푹 쉬다가 얼마 전에 <기생충> 색보정 작업을 시작했다.

=김우형_ 이곳에서 <1987>(2017)의 색보정을 마무리하고 <리틀 드러머 걸>을 찍으러 영국에 나갔다. 서로 엇갈려서 안부를 물을 겨를조차 없었다.

홍경표_ 우리는 친해도 대화를 많이 안 해. 허허허. 이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 서로의 촬영에 대해서 이야기 나눈 적도 없지 않나.

김우형_ 일이 많아서….

홍경표_ 나이가 들면서 후배 촬영감독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그들과 대화하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술자리든 어느 자리든 사람들을 만날 때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다. 20여년 전 데뷔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정)정훈이나 (김)우형이 정도가 드물게 연락을 주고받는 동료다. 어쨌거나 지난 8년 동안 가을과 겨울에 단 한번도 쉰 적 없다. 이번 겨울은 <기생충> 촬영을 여름에 끝낸 덕분에 처음으로 쉬었는데 너무 좋다. 머리를 좀 비우고 운동하고 산책하고 고양이 밥 주며 지내니 너무 행복했다. 자기는 어떻게 지냈어.

김우형_ 지난해 6월쯤 서울에 돌아왔다. 외국에 8개월을 나가 있었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부지영 감독)가 “당신이 8개월 나가 있었으니 나도 8개월 동안 나가겠다”고 말해서 8개월이라는 숫자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웃음)

홍경표_ (김)우형이한테 질문해야 되는데 <기생충> 색보정 작업 하랴, 개인적으로 <마더> 때 찍은 사진 정리하랴 정신이 딴 데 있어서 준비가 부족해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웃음)

<기생충>

신작, 어디까지 왔나

-<기생충> 색보정은 얼마나 진행됐나.

홍경표_ 1차 컬러 그레이딩 작업은 봉준호 감독에게 컨펌을 받았다. 특별히 손대는 부분 없이 5일 만에 잘 마무리됐다. 색을 많이 바꾸는 부분이 없어 작업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다. 색감을 세세하게 매만지는 2차 작업이 남았는데 현재 시각특수효과(VFX) 작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김우형_ 1, 2차 딱 구분해서 작업이 가능한가보다. 나는 색보정 작업 초반에는 공정별로 나누었다가 막상 작업이 시작되면 1, 2차 구분 없이 이것저것 다 만지는데. (웃음)

홍경표_ 나도 이것저것 만지기는 한다. 색보정 작업에 들어가면 그간 내가 생각했던 것, 감독과 논의한 부분의 색부터 먼저 작업한다. 가령 50mm 렌즈로 촬영할 때 프레임 좌우 화면은 색보정 작업 때 작업하기로 감독과 합의한다. 현장에서 결정한 내용이니 색보정 작업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만질 수 있는 거다. 하루에 두번씩 색보정 작업을 해서 화면의 기본적인 톤을 정해놓고, 그다음부터는 사이즈 단위로 화면을 보기 시작한다. 사이즈 단위로 보면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보기 싫은 화면부터 색보정 작업을 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리틀 드러머 걸>은 6부작 드라마인데 색보정을 어떻게 했나.

김우형_ 프리 프로덕션 때 박찬욱 감독이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형사>(1972),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소서러>(1977),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1979) 등 레퍼런스가 될 만한 여러 고전영화를 보여줬다. 우리 드라마를 찍는 데 참고할 만한 장면을 따로 뽑아 그걸 보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나눈 대화의 결과는 색보정실까지 이어졌다. 우리가 참고한 영화는 요즘 영화처럼 콘트라스트가 세지 않은 작품들이다. <만추>(2010)나 <1987> 때도 그랬듯이 촬영 시작 하루 전날까지 색보정 테스트를 수차례 진행했고, 그렇게 정한 색보정 기준으로 촬영한 덕분에 후반작업에서 색을 많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홍경표_ 촬영 전에 색보정 작업을 하는 건 장단점이 있다. 색보정을 미리 하면 촬영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현장도 있지만, 해질녘이나 새벽처럼 빛이 세심하게 담겨야 하는 특정 시간대는 색보정 필터를 장착하고 찍으면 색감이 이상하게 나올 위험도 있다. 색보정을 이렇게까지 미리 해야 되나 싶고.

김우형_ ‘룩업 테이블’(lookup table)을 10개 정도 미리 만들어놓고 촬영에 들어가는 게 편한 것 같다.

홍경표_ 아직 옛날 스타일이라… 화면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 이상 촬영 전에 색보정을 하진 않는다. 내게 색보정은 색을 많이 변화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암부(블랙)나 앰버 톤 같은 기본적인 요소를 매만지는 단순한 작업이다.

-<기생충>은 <설국열차> 이후 봉준호 감독과 6년 만에 만난 작품이다.

홍경표_ 봉 감독의 전작 <옥자>(2017)에 들어가기 전에 촬영 제안을 받았었다. 봉 감독이 <옥자> 끝나고 할 프로젝트니 같이 하자고 했다. <옥자>를 찍는 내내 연락을 수시로 주고받은 까닭에 10년 만에 함께 작업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일 스케줄도 잘 맞아떨어졌고. 봉 감독이 꼼꼼하게 준비한 덕분에 작업하는 내내 특별히 할 게 없을 만큼 편하게 찍었다. 오히려 박찬욱 감독과 김우형 촬영감독의 조합이 되게 궁금해. (웃음)

김우형_ 전에 미국에서 박찬욱 감독과 함께 <도끼>를 준비했었다. 로케이션 헌팅부터 스토리보드까지 다 끝내는 등 촬영 준비를 마쳤다가 제작이 미뤄진 프로젝트다. 이후 처음 함께하는 프로젝트인데, 내가 촬영 제안을 받은 건 박찬욱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정정훈 촬영감독이 스케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글로 번역된 원작 소설을 받았는데 아주 두꺼웠다. 내용이 방대하고 복잡해 한번에 읽히지 않았다. 그때 박 감독이 “그게 아마 번역본이라 그럴 거”라며 원작 소설을 다시 보내주었다. 그걸 보고 시나리오를 읽었는데도 여전히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잘 외워지지 않았다. 2시간짜리 영화만 찍다가 영화와 완전히 다른 형식의 극을 보니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촬영이 다 끝날 때까지 이야기가 헷갈렸다.

홍경표_ 드라마 길이가 총 몇 시간이었나.

김우형_ 6부작으로 다 합쳐서 6시간. 2시간짜리 영화 세편 분량이다. 이 원작의 내용은 영화 한편으로 압축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홍경표_ 지금까지 드라마 촬영 제안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는데 6시간짜리 이야기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김우형_ 왜 많은 드라마 제작진이 에피소드마다 각기 다른 스탭을 고용하는지 알겠더라. 한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의 양을 넘는 것 같다.

홍경표_ 영화 한편을 찍기 위해 카메라 숏과 빛 그리고 이야기 특유의 리듬이 잘 맞물리게 작업하다가 갑자기 드라마를 찍으면 ‘내가 왜 여기에 있나’ 하는 생각을 할 것 같다. (웃음)

김우형_ 보통 영화는 클라이맥스가 한두 차례 있지 않나. 드라마 또한 이야기 전체의 클라이맥스가 있지만, 동시에 한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한다. 그거 신경 쓰느라 박찬욱 감독이 고생 많이 했을 거다.

김우형 촬영감독, 홍경표 촬영감독(왼쪽부터).

-<기생충>과 <리틀 드러머 걸>은 어떤 이야기인가.

홍경표_ <기생충>은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인물 위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중에서 아마 대사가 가장 많이 나오는 영화일 거다. <옥자>를 찍으면서 한국어를 쓰지 못해 한이 맺혔나 싶을 만큼 한국어를 뿜어내는 영화다. (웃음)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김우형_ <기생충>이 어떤 이야기인지 전혀 모른다. 함께 일한 연출부, 제작부 스탭들이 <기생충>에 합류한다는 사실을 무척 영광스러워했고, 그래서 “잘 가라”고 말해주었다. (웃음) <리틀 드러머 걸>은 복잡하지만 그만큼 매혹적인 이야기다. 1979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벌어진 갈등을 소재로 한다. 이스라엘 정보국이 영국 여배우를 비밀 첩보 작전에 끌어들이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내가 찍지 않았다면 살면서 관심을 두기 쉽지 않은 소재다. 이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련 뉴스를 보면 드라마를 찍기 전보다 정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기생충>은 몇 회차 찍었나.

홍경표_ 74회인가, 75회.

김우형_ 우리는 6시간짜리 드라마를 총 81회차. (웃음)

홍경표_ 우리는 봉 감독의 콘티가 워낙 정확하니까. 전체 컷 수가 1천개가 좀 안 됐다. 보통 하루에 9, 10컷을 찍었고, 많이 찍는 날에는 10컷 넘게 찍기도 했다. 카메라는 아리 알렉사65로 찍었고, 65mm 프라임 DNA 시리즈 렌즈를 선택했다. 봉 감독과 논의한 건 적어도 오리지널 4K급 이상으로 찍자는 거였고, 알렉사65를 쓸 수 없으면 파나비전에서 나온 밀레니엄 DXl 카메라의 보디와 파나비전 렌즈도 고려했다.

김우형_ 그건 그냥 레드와 비슷한 카메라라고 하던데.

홍경표_ 아니다, 파나비전에서 나온 8K 디지털카메라인데 레드에서 출시한 레드 웨폰 드래곤 센서를 탑재한 거다. 해상도가 깨끗해 화면이 참 예뻤다. 당시 <버닝>(2018) 색보정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버닝>을 보다가 이 렌즈를 테스트해보니 너무 깨끗해서 이게 카메라 보디 때문인가 싶었다. 결국은 아리 알렉사65로 찍겠다고 하니 새로 출시된 DNA 시리즈 렌즈가 있다며 그걸 추천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로마>(2018) 때 쓴 65mm보다 새로운 버전이라고 해서 뮌헨에서 다시 테스트해보니 너무 좋았고, 그걸로 찍은 영화를 몇편 보니 화면이 잘 나와서 선택했다.

<리틀 드러머 걸>

-<기생충>의 어떤 점 때문에 그 렌즈가 필요했나.

홍경표_ <기생충>은 인물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프라임 DNA 시리즈 렌즈는 샤프니스가 좋고, 필름 렌즈 느낌이 있는 데다가 화각이 매우 넓다. 이 영화는 좁은 방 안에서 찍는 장면이 많다. 보통 24mm 와이드렌즈를 사용하면 배경은 넓어지지만 인물이 그만큼 멀어 보이는 반면, 이 렌즈는 같은 규모의 배경에서 인물이 훨씬 커 보인다. 게다가 세트를 덴캉(카메라가 박진감 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세트 벽을 부수고 복도를 늘리는 작업.-편집자)을 할 수 없어 공간이 되게 좁았는데 알렉사65는 보디가 작은 대신 양옆으로 퍼진 모양이라 공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우형_ 그 카메라와 렌즈를 사용하면 비용이 많이 높아지는 편인가.

홍경표_ 많이 비싸. 가격을 떠나 화면이 안정적이다.

김우형_ 렌즈는 몇개 없을 텐데.

홍경표_ 프라임 DNA 시리즈 렌즈는 5개밖에 없다. 그래서 불편한 점도 있었다. 렌즈 호환이 한정된 시리즈다 보니 80mm, 150mm 망원렌즈가 없다. 생각보다 망원렌즈를 많이 못 쓴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김우형_ 카메라는 한대로 찍었나.

홍경표_ 그렇지, 봉준호 감독 스타일이 한대로 찍는 거다.

김우형_ 나 또한 가장 고민한 것이 렌즈 선택이었다. 테스트할 수 있는 모든 렌즈를 영국 현지에서 테스트했고, 결과가 나올 때마다 박찬욱 감독에게 확인받았다. 테스트 과정에서 파나비전 애너모픽 C시리즈를 무척 좋아했는데 할리우드영화 제작진이 이미 예약을 다 했더라. 오래된 애너모픽 렌즈를 찾았는데 영국의 조 던튼 촬영감독이 1930년대 나온 쿠크 렌즈를 1980년대에 개조해 만든 쿠크 크리스털 익스프레스 렌즈다. 테스트해보니 왜곡도 아주 심하고 좌우 화각이 넓은 애너모픽 특성이 강한 렌즈였다. 1920~30년대 렌즈를 개조한 거라 샤프니스가 걱정됐는데 TV드라마였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다. 극장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하는 영화였더라면 걱정을 더 많이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개조한 직후 그 렌즈를 처음 사용했던 영화가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1983)이라고 알려주더라. 그 얘기를 듣고 다들 너무 재미있어 했다. (웃음)

홍경표_ 하하하.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 이후로 한번도 안 쓴 렌즈를 꺼낸 거네. (웃음) 외국은 이렇게 렌즈 아카이빙이 잘돼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게 잘 안 돼 있어 영화를 찍을 때마다 새로운 렌즈를 쓰고 싶어도 구하기가 어렵다. <버닝>을 찍은 뒤로 쓰던 렌즈들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큰데 국내에서는 다양한 렌즈를 선택할 수 없어 무척 답답하다. 최근 출시된 렌즈들이 좋은 건 알지만 하나만 자꾸 쓰면 지겹다. 어느 날 보니 모두 같은 렌즈를 쓰고 있더라.

김우형_ 홍 촬영감독님은 <지구를 지켜라!>(2003) 이후 조명팀과 촬영팀을 함께 꾸려 DP 시스템을 처음 시도했다. 그립팀을 직접 운영하고 조명장비를 직접 구입하기도 했고. 처음으로 코닥이 아닌 다른 필름을 많이 사용하고, 할리우드 현상소 지하실에서 특수 현상(필름에 은 입자를 많이 남겨서 현상하는 실버 리텐션)도 처음 시도했다.

홍경표_ 하하하, 맞아. 지난해 말, 장준환 감독과 16년 만에 <지구를 지켜라!>를 4K로 전환하는 작업을 했다. 영화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필름을 가지고 ‘블리치 바이 패스’(컬러사진의 현상 과정에서 표백(bleach) 과정을 건너뛰어(by pass) 은 입자를 세탁하지 않고 남겨두는 현상 기법)를 포함해 네거필름, 실버 리텐션은 물론이고, 심지어 비디오로 찍어 디지털로 컨버팅하는 등 온갖 장난을 쳤더라. 4K 변환 작업은 색보정만 새로 했는데 영화를 다시 보면서 장준환 감독과 옛날 얘기를 실컷 했다.

<기생충>

-<리틀 드러머 걸>은 이야기의 어떤 점 때문에 오래된 렌즈가 필요했나.

김우형_ 1979년 유럽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터라 기본적으로 시대적 배경에 맞는 렌즈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사진도 직접 찍고, 렌즈나 카메라에 조예가 깊은 박찬욱 감독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소위 ‘캐릭터’ 있는 렌즈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건 테스트 결과를 봐야 알 수 있다.

로케이션, 그리고 ...

-영국에서 찍었다면 필름도 선택지에 있었나.

김우형_ 그렇다. 하지만 필름을 선택하는 건 힘들다. 제작사가 드라마를 주로 찍던 회사다. 애너모픽을 사용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데만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홍경표_ 드라마라 필름으로 찍으려면 현상 공정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기생충>을 찍기 전 필름을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에 현상소가 없으니까. 일본이나 미국에 가면 후반작업 공정이 되게 불편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필름으로 찍으면 매일 사고가 없는지 상태를 확인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고 무척 불안하다. 현상소가 필름, 특히 어둡게 찍은 장면에 이상이 없다고 확인 메일을 보내줘야 잠을 잘 수 있으니까. 모니터로는 문제없이 잘 찍혔는지 확인이 안 된다.

-<기생충>은 전주, 고양, 서울의 외딴 동네를 주로 돌아다닐 만큼 로케이션 촬영이 많았다고 들었다.

홍경표_ 한여름에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건 끔찍했다. 지난여름이 엄청 덥지 않았나. 물론 <마더> 때보다 로케이션 촬영 공간이 적었지만 말이다. 로케이션 촬영 분량으로 치면 어떤 한국영화도 <마더>를 따라가지 못할거다. 이 영화는 <마더>보다 좀더 심플하게 찍어야 할 공간을 딱 정해놓고 진행했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빛, 여름의 땡볕을 찍는 게 중요했다.

김우형_ ‘뻥 라이트’(순광을 뜻하는 표현으로, 빛이 카메라 뒤에서 앞으로 ‘뻥’ 하고 비추었다고 비유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성의하고 평평한 라이트를 일컫는 말. - 편집자) 대신 ‘땡 라이트’라고 불러야 하나. (웃음)

홍경표_ 하하하. 여름에 촬영한 건 처음이다. 항상 가을과 겨울에만 찍다 보니 빛을 다루는 관성도 가을, 겨울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여름의 강렬한 빛, 직광을 찍고 싶었다.

김우형_ 여름의 해는 높아서 되게 안 예쁘다.

홍경표_ 맞아, 빛이 안 예뻐. 역광이 아니더라도, 빛이 예쁘지 않더라도 이야기와 잘 맞으면 그게 좋은 촬영이다. 물론 여름도 해 떨어지는 시간에는 빛이 볼만해. <기생충>을 찍을 때는 빛에 그레인(잡티)이 생기는 지점이 몇 있었다. 빛이 반지하 방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 시간을 계산하는 데 시간을 다 보냈다. 몇시에 반지하 방에 해가 뜨는지 체크한 뒤 그거 찍으려고 해뜨기 전부터 카메라를 세팅하고 기다렸다. 여름은 가을이나 겨울과 달라 해가 뜨면 금방 움직인다. 그 순간을 놓치면 끝이다.

김우형_ <리틀 드러머 걸>은 영국, 체코, 그리스 세 나라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영화 속 독일 공간은 실제로 체코에서, 레바논은 그리스에서 찍었다. 세트 촬영은 거의 없었다. 촬영 스케줄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두대 돌렸다.

홍경표_ 드라마라 대사가 많으니까.

김우형_ <워리어스 웨이>(2010)와 <만추> 때 그랬듯이 이번에도 우리 촬영팀을 두고 나 혼자 갔다. 촬영감독 혼자 가서 현지 스탭과 일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외국 스탭과 협업하면 그들이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고, 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대처하기가 수월하다.

홍경표_ 한국영화를 찍기 위해 한국 감독, 스탭, 배우가 우르르 해외에 가서 찍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보통 해외 프로젝트를 할 때 촬영감독 혼자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내 촬영팀을 데리고 가도 현지 촬영 시스템과 사용 장비가 다른 까닭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한번 지시하면 될 일을 두 단계 넘어가게 되고, 만약 조수가 영어를 못하면 지시를 해도 통역이 되지 않으니까 그걸 어떻게 감당하나. (웃음)

김우형_ 박찬욱 감독이 <리틀 드러머 걸>을 영국에서 촬영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때 많은 영국인, 미국인 촬영감독이 참여하고 싶어 했다고 들었다. 그런 드라마에 내가 합류하게 되었으니 영광이었다. 나의 가장 큰 임무는 박찬욱 감독과 현지 촬영팀 사이의 접착제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외국이라는 사실에 불편을 느끼지 않고 현장에서 연출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우려 했다.

<리틀 드러머 걸>

-<리틀 드러머 걸>을 찍을 때 한국의 현장보다 그립팀이 많았다고 들었다.

김우형_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가 그립팀이 하는 일이다. 돌리나 크레인은 기본이고, 그 이전 단계로 바닥을 고르게 하는 보드나 플랫폼 작업을 하는데, 현장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조명을 위해 그립 일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영국 팀이 나와 늘 같이 다녔고, 그리스나 체코에 가면 현지 팀원을 4~5명씩 보강했다.

홍경표_ 국내에선 거의 유일하게 내가 요구하는 그립팀을 다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립팀의 역할이 절실한 데도 요즘은 쉽지 않다. 표준계약서가 시행되면서 투자사가 어떻게 해서든 그립팀 숫자를 줄이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립팀이 왜 중요한지 관심 없는 분위기니까.

김우형_ 갈수록 현장에서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홍경표_ 돌리 하나 깔더라도 사전에 다 얘기해야 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공간은 미리 얘기해서 준비해놓게 해야 하고. 현장에서 갑자기 돌리 방향을 옮기겠다고 하면 골치 아파진다.

홍경표 촬영감독, 김우형 촬영감독(왼쪽부터).

<버닝>과 <1987>에 대해

-지난해 두 사람이 각각 촬영한 <버닝>과 <1987> 얘기도 해보자. 서로의 촬영을 어떻게 보았나.

홍경표_ <1987> 촬영이 끝난 뒤 (김)우형이를 만났다. <1987>은 시나리오를 먼저 읽었다. 장준환 감독이 시나리오를 가져와서 읽어봐달라고 해서…. 영화를 보고 나니 촬영이 시나리오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촬영감독의 힘이 큰 영화구나 싶었다.

김우형_ <1987>도 렌즈 선택부터 시작했다. 렌즈를 대여해주는 업체인 신영필름에서 ‘정말 이걸 써도 되느냐’고 되물을 만큼 오래된 세트를 골랐다. 마스터 프라임 렌즈 이전에 쓰인 게 울트라 프라임인데, 그보다 한참 전 모델인 자이스 슈퍼 스피드 T1.3을 선택했다. 슈퍼 스피드도 코팅 재료가 바뀌어 색감이 조금씩 다른데, 그중 가장 오래된 세트를 사용했다. 앞서 홍 촬영감독이 <지구를 지켜라!>를 찍을 때 여러 시도를 했다고 말씀하셨듯이 분위기상 과감한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말 그대로 영화계 전체가 역동적이던 시기다. 언제부터인가 점점 그런 시도를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는데 그 점에서 <버닝>은 요즘에 시도할 수 없는 촬영들을 선보인 영화다. 하루 중 언제 찍어야 원하는 빛을 인위적인 조작 없이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말이다. <버닝>은 몇 회차까지 찍었나.

홍경표_ 62회인가, 63회. 이창동 감독 영화 중에서 가장 적은 회차로 찍었다. 로케이션 장소가 이곳 일산에서 차로 30분 거리라 편하게 찍었다.

김우형_ 출퇴근이네.

홍경표_ 그렇지. 감독 댁도 여기고. 촬영 전 감독과 미리 공간에 가서 준비한 게 많은 덕분에 촬영이 수월했다. 로케이션 장소가 이곳이 아닌 전라도 같은 먼 곳이었다면 되게 힘들었을 것이다. <버닝>은 촬영감독들은 다 안다. 아는 사람만 안다. 어릴 때는 이런저런 실험을 해봤지만 나이가 들면서 촬영의 핵심은 빛을 이야기에 맞게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닝>은 그에 집중한 영화고, 이창동 감독도 그런 시도에 동의해주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이 신은 며칠 몇시쯤 찍읍시다’라고 의견을 냈을 때 그걸 이해하고 진행하는 감독이 필요하다.

김우형_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1997)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는데, 그때 나는 6mm 비디오로 메이킹 필름을 찍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시위 장면을 촬영하던 것처럼, 일종의 다큐멘터리 촬영이었다. <1987> 후반부 시위 장면을 찍을 때 그때 기억이 나서 혼자 설렜고 벅찼다. 영화와 실제와 기억이 뒤엉키는 경험을 했다. 다큐멘터리가 갖는 힘은 재현이 불가하다. 그런데 그것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후 서로의 작업 중 인상적인 작품을 하나씩 꼽는다면.

홍경표, 김우형_ 워낙 촬영이 좋은 영화가 많으니까. (웃음)

홍경표_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2005)에서 보여준 촬영은 대단했다. 그 영화 들어가기 전에 내가 임상수 감독에게 김우형 촬영감독을 소개해줬다.

김우형_ 그래서 임상수 감독이 촬영감독을 제안했을 때 고민을 좀 했다. (웃음)

홍경표_ 임상수 감독이 나하고는 일 안 할 건데 적당한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사람 추천을 잘 못한다. 왜 추천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임상수 성격을 잘 아니까 우형이가 그 성격을 잘 받아줄 것 같았다. 임상수가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거든.

김우형_ 정일성, 정광석 촬영감독 등 전설적인 선배들이 계셨다. 누구나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촬영에 열광했는데, 그즈음 홍경표 촬영감독이 등장하면서 세대가 바뀌어 갔다. <유령>(1999)에서 보여준 잠수함은 굉장했고, <반칙왕>(2000) 촬영도 이전 한국영화에서는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미국 애틀랜타에서 <좀비랜드2>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정정훈 촬영감독도 대담에 잠깐 참여해 두분께 인사드릴 계획이었는데 오늘(1월 15일)이 촬영 전 마지막 스카우트라서 일정이 안 된다고 전해왔다. 다음에는 세분이 이야기 나룰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

홍경표, 김우형_ 다음에 정훈이까지 끼면 더 많은 말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 <기생충> 촬영정보_ 사용 카메라 아리 알렉사65(Arri Alexa 65) / 사용 렌즈 프라임 DNA 시리즈 렌즈 (Prime DNA), 앙제뉴 줌 렌즈(Angenieux zoom lens) 24-290mmm / 화면 비율 2.35:1(시네마스코프)

● <리틀 드러머 걸> 촬영정보_ 사용 카메라 알렉사 미니(Alexa Mini), 아리 알렉사 SXT(Arri Alexa SXT) / 사용 렌즈 쿠크 크리스털 익스프레스 렌즈(Cookes Crystal Express lens) / 화면 비율 2.40:1 원본에서 16:9를 추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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