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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코> 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 - 사랑에 관한, 리얼리즘이 가미된 판타지
김송희(자유기고가) 사진 오계옥 2019-03-28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아사코>에서 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두명의 인물을 연기한다. 아사코(가라타 에리카)의 첫사랑이자 자유롭고 이기적인 청년 바쿠, 8년 후 아사코가 도쿄에서 만난 평범하고 성실한 료헤이. 성격이 정반대인 두 인물은 무심히 흐르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아사코의 인생에 등장한다. 2013년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로 영화를 시작한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지난 6년간 <기생수 파트1>(2014), <데스노트: 더 뉴 월드>(2016) 등 대중적인 영화와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2016), <산책하는 침략자>(2017) 등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를 오가며 연기 경력을 다각도로 넓혀왔다. 이 밖에 드라마 <문제있는 레스토랑>(2016), <당신을 그렇게까지는>(2018), 순정만화를 영화화한 <아오하라이드>(2016) 같은 작품에서는 속을 알 수 없는 미남 역할을 도맡았다. 마치 료헤이와 바쿠를 오가듯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배우가 <아사코>를 만나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것은 ‘동네 야구팀이 메이저리그’에 가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아사코>의 개봉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만났다.

-<아사코>에서 자유분방한 바쿠와 자상하고 성실한 료헤이를 1인2역으로 소화한다. 바쿠와 료헤이는 아사코의 인생에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인물이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바쿠와 료헤이를 어떻게 분리했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님이 ‘한 작품 안에 두명의 인물이 있다’고 의식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두편의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물론 한쪽은 사투리로 대사를 한다는 점에서 구분되기도 했다. 료헤이는 상대의 얼굴을 살피며 말을 하는 다정한 성격이고, 바쿠는 상대의 감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두 인물의 성격은 판이하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건 바쿠였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료헤이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바쿠가 고양이 같은 인물이라면 료헤이는 강아지 같은 면이 있다.

-료헤이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지진이 일어나 대피하는 장면이다. 대피하는 와중에도 주변을 살피고, 길에 주저앉은 여성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2011년 3월이라는 날짜와 동일본대지진이 떠오른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장면인데.

=앉아 있는 여성을 연기하는 배우에게 감독님이 ‘이 여자는 지금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거나 가족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설정을 제시했다. 지진은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그 고통과 분노를 토로할 대상을 찾기 힘들다. 분노를 느끼지만 무엇에 화가 난 건지 어디에 터뜨려야 하는지 모호하다. 료헤이는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지만 감독은 그 여성 배우에게 ‘어디에도 터뜨릴 수 없는 분노를 료헤이에게 푸는 상황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더라.

-그 이후에 료헤이와 아사코가 만나서 끌어안는다.

=료헤이 역시 지진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는데, 앞에 나타난 아사코를 보고 마음이 탁 놓였을 것이다. 사람이 안심하는 순간 마음 한편에 밀어두었던 슬픔이나 고통이 확 올라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3·11 동일본대지진 당시 나는 일본에 없어서 지진을 직접 경험하진 못했다. 그래서 어디에 터뜨리면 좋을지 알 수 없는 분노나 고통에 대해 영화를 촬영하면서 알게 됐다. 편집점을 어디에 둘지 생각할 때, 이 영화는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고백하는 인물이 아니라 고백을 받는 인물의 표정에 집중하는 영화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는 스토리가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했지만, 영화가 완성됐을 땐 오히려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두번, 세번 거듭 보면서 볼 때마다 영화가 더 좋아졌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함께 작업하기 위해 3년을 기다렸다고 알고 있다. 3년 전이면 하마구치 감독이 <해피아워>(2015)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기 이전인데, 그의 어떤 점을 믿고 기다린 것인가.

=감독님이 전에 만든 작품들이 좋았던 게 아무래도 가장 컸고, 어떤 작품이든 같이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하마구치 감독도 이런 규모의 영화를 제작한 게 <아사코>가 처음이었고, 영화로 칸국제영화제에 간 건 배우들도 처음이었다. 하마구치 감독은 자연스러운 것을 중시하는 분이다. 사전에 대본 리딩을 하거나 현장 리허설을 할 때 감정을 배제하고 대사만 읽어보게 했다. 하마구치 감독 현장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현장은 비슷한 면이 많다. 아마도 하마구치 감독이 구로사와 감독의 제자이기 때문에 영향이 있을 것 같다. 두 감독이 캐릭터로 줄 수 있는 불쾌감이 바쿠에게도 투영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사코>에서 바쿠가 실존하는 사람인지 환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사람이 보통 대화할 때 조금이라도 상대를 배려하게 마련인데 바쿠는 그게 전혀 없는 인물이라 어떤 면으로는 좀 무섭다. 이 영화는 일종의 판타지다. 리얼리티가 많이 녹아 있는 판타지. <아사코>와 관련해 아주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바쿠가 레스토랑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묻는 분이 한명도 없었다. 그 부분에 판타지가 있다는 걸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영화는 각자의 해석에 맡겨야 하지만 나는 판타지가 굉장히 많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사랑을 그리지만, 이 영화의 바닥에는 ‘불안’이라는 정서가 깔려 있다. 5년 전 출연한 다큐멘터리 방송 <정열대륙>에서 “이대로 괜찮은 걸까, 불안하고 허전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지금은 어떤가.

=아직도 그렇다. 불안하고 허전하다. (웃음) 다행히 제안이 꾸준히 들어와서 연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작은 역할이라도 꾸준히 구로사와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는 이유가 있나.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작업하고 싶은 감독님이다.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가 많아서 좋은 것 같다. (웃음)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 같은 영화는 특히 더 그럴 것이다. 그래도 부분부분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장면들이 있다. 그런 불안정한 요소에 매력을 느낀다.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로 여러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구로사와 기요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작업하면서 받은 영향이 있다면.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일본도 감독님에 따라 현장 분위기가 다르다. 다만 모든 감독님이 이 작품을 좋은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분이고, 감독님들의 개성에 맞춰서 내가 좋은 재료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작은 영화와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의 균형을 맞춰 가는 인상이다.

=일본에서도 초등학생, 중학생이 봐도 재미있는 영화가 수익률이 높다. 사회문제를 다룬, 어른들이 볼만한 영화는 히트하기 쉽지 않다. 나 역시 어른이기에 어느 쪽을 보고 즐길 것인지 묻는다면 후자다. 규모나 장르가 달라도 모든 영화에 항상 최선을 다하고 싶다.

-영화가 원작과 상당 부분 다르다. 원작 작가인 시바사키 도모카가 ‘바쿠’를 일본 전래동화의 주인공인 가구야히메라고 설명해줬다고 들었다.

=원작에는 3·11 동일본대지진의 상황이 등장하지 않고 아사코가 두 남자를 만나기까지 걸리는 세월이 10년으로 설정돼 있는데 영화에서는 8년이다. 감독님이 3·11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후 도호쿠 지방에서 3편의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어제까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그 일상이 무너져버린 현실이 영화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30대가 되면서 작품 선택 기준이 달라진 면이 있을 것 같다.

=(일본의 영화 환경은) 20대 젊은 배우들이 다작할 수 있는 환경이다. 30대가 되면 그 수가 점점 적어지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작품 한 작품 정성스럽게 집중해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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