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디스토피아로부터
이미 태어난 생명에 대한 예의
권김현영(여성학자) 일러스트레이션 다나(일러스트레이션) 2019-04-24

강의실에서 매년 낙태와 관련해서 토론한다. 이때 참고할 새로운 영화가 나왔는지를 검토해보는데, 그래도 가장 자주 선택하게 되는 영화는 <더 월>(감독 낸시 사보카, 1996)이다. 세편의 옴니버스로 구성된 이 영화는 1952년, 1974년, 1996년 각각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문제를 구체화하고 동시에 쟁점을 집약하면서 토론을 하기에 아주 좋은 영화다. <더 월>을 보면 낙태죄가 폐지된다 해서 원치 않는 임신을 둘러싼 어려움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낙태가 불법인 상태에서는 이 모든 어려움들은 오히려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감독 크리스티안 문주, 2007)은 낙태 절대금지 정책으로 악명 높았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오틸리아는 친구 기바타를 돕기 위해 함께 불법낙태시술을 해주는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이미 임신 4개월이 지났다며 이 경우에는 훨씬 더 큰 벌을 받는다는 이유로 ‘위험수당’으로 섹스를 요구한다. 이 영화는 남자들에게 섹스란 과연 무엇인가, 강도 높은 낙태금지 정책은 어떻게 이미 태어난 여성과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는가를 보여준다. 당시 루마니아 여성들은 낙태는 물론 피임까지 금지되었고 최소 네명 이상을 의무적으로 출산해야 했다. 인구는 급증했지만 국가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았고,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기아 상태에 가깝게 방치되었다.

<베라 드레이크>(감독 마이크 리, 2004)는 책임을 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베라는 임신과 출산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하층계급 여성들에게 2파운드를 받고 비눗물 등을 통해 조악한 불법시술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된다. 베라는 자신이 돕고자 한 여성이 자신의 잘못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고 죄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 여성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베라에게만 묻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가. 윤리적인가.

<24주>(감독 앤 조라 베리치드, 2017)는 인공적인 임신 중지가 허용된 독일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아스트리드는 태중 검사를 통해 태아가 다운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주변에서는 낙태를 권유하지만 아스트리드는 임신을 계속 유지하기로 한다. 하지만 24주에 가까울 때 비로소 태아의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임신을 중단한다.

지난 4월 9일 MBC <백분토론>의 주제는 ‘낙태죄 존폐’였다. 사회자 김지윤씨는 마무리 멘트로 영화 <24주>를 언급하며 ‘생명에 대한 예의’라는 말을 했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미 태어난 생명에 대한 예의’라고. 낙태를 금지하는 국가에서는 태어난 생명을 방치하고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반면,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에서는 오히려 재생산권을 둘러싼 폭넓은 고민이 가능해졌다. 이것이야말로 생명을 손에 쥐고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