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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등급이 왜? 관람가 논란 부른 영화들

※본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봉 4주 차에 접어들어 <기생충>의 관객 수가 900만을 훌쩍 넘어섰다.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서 호평 일색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15세 관람가로 개봉된 영화의 관람 등급을 두고 논란이 빚어졌다. 최근 국내 영화의 관람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사례는 이번 만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영화의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 또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입장은 어땠는지 정리해봤다.

영등위 등급 분류 기준

현재 한국의 영상물 관람 등급은 다섯 가지로 나뉜다. 12세 관람가, 15세 관람가, 청소년 관람 불가, 제한 상영가. 이중 '12세 관람가'와 '15세 관람가'는 해당 연령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부모 등 보호자를 동반한다면 관람이 가능하다.

<악마를 보았다>

이름부터 생소한 '제한 상영가' 등급이 궁금하다. 이 등급은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등 국민 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상영 및 광고에 제한이 필요한 경우 매겨진다. 원칙대로라면 '제한 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광고도 할 수 없고 오로지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제한상영관이 없다. 때문에 사실상 이 등급은 등급 보류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일례로, 2010년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지나친 잔인성의 수위로 개봉 전 두 번이나 제한 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결국 몇 장면을 들어낸 다음에야 겨우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아 개봉했다.

그렇다면 상영 등급은 어떤 기준으로 매기는 걸까. 등급 판정에 고려하는 요소는 주제, 선정성, 폭력성, 대사, 공포, 약물, 모방위험으로 7가지 요소다. 심의에 자주 영향을 미치는 항목은 아마도 '선정성'과 '폭력성' 항목일 것이다. 선정성의 경우에는 신체의 노출 정도 및 애무, 정사 장면 등 성적 행위의 표현 정도를 평가하고, 폭력성의 경우 고문, 혈투로 인한 신체 손괴 및 억압, 고통 표현 굴욕, 성폭력 등의 표현 정도를 평가한다. 사람이 내리는 판단인지라 다소 주관적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나 전문 위원들의 협의를 거쳐 낮음, 보통, 다소 높음, 높음, 매우 높음의 다섯 단계를 책정한다.

<곡성>

최근 관람객들 사이에는 "영등위가 관대해졌다"는 말이 꽤 자주 등장했다. 지난 2016년에 개봉한 공포영화 <곡성>의 사례를 보자. 극도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묘사가 많았던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 <황해>는 모두 청소년 관람불가로 개봉된 영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신작 <곡성>이 15세 관람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슈가 됐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과연 나홍진의 영화답다. 전작들만큼 적나라한 폭력 묘사는 없지만 분위기 하나만으로도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였다. 무당, 굿판이 등장하는 한국의 샤머니즘을 소재 삼은 <곡성>은 미스터리와 공포, 스릴러, 심지어 좀비물을 연상케하는 장면까지 두루 있었다.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곡성>이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문제가 된 부분은 뼈가 뒤틀리고 피가 낭자한 장면, 곡괭이로 사람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 얼굴을 물어 뜯기는 장면 등이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결말부에 해당하는 신을 보면 "아이의 가족 살해를 암시하는 대목이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컸다. 앞서 언급했던 "영화의 압도적인 공포 분위기가 15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부적절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영등위는 7가지 중 6가지 항목에서 '다소 높음'을 매겼다. <곡성>이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게 된 사유에 대해서는 "선정성 및 폭력적인 부분은 정당화하거나 미화되지 않게 표현되어 있고, 그 외 공포, 대사 및 모방위험 부분은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아마도 영화가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닌 주술, 악마 등 판타지적인 오컬트 소재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무섭긴 했지만 청소년 관람불가를 매길 정도는 아니다"는 관람객의 의견도 많았다.

<곡성> 등급 분류 정보

<독전>

영등위의 심의를 둘러싼 논란이 가장 크게 불거졌던 최근의 사례는 2018년 개봉한 <독전>. 그간 한국 영화에서 폭력성이 두드러진 영화는 꾸준히 존재했지만 <독전>처럼 마약과 관련된 디테일한 서사가 출현한 경우는 드물었다. 아시아 최대의 마약 조직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이야기인 <독전>은 소재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어야 했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독전>에는 마약 거래와 제조는 물론이고 마약을 흡입하는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눈알을 씹어 먹는 과격한 신체 훼손 장면, 여성 배우의 상체 노출 장면 등 수위가 높은 신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하지만 <독전>은 15세 관람가로 개봉했고, 관람객들에게서 "한국 영화의 관람 연령 기준이 언제부터 이렇게 관대했느냐"는 지적이 속출했다.

<독전> 등급 분류 정보

영등위는 <독전>을 7가지 항목 전체에서 '다소 높음' 등급을 매겼다. 이와 관련해 "총격전, 총기 살해, 고문 등 폭력 묘사와 마약의 불법 제조 및 불법 거래 등 약물에 대한 내용들도 빈번하지만 제한적으로 묘사되어 영화 전반의 수위를 고려할 때 15세 이상 청소년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라는 평가를 내놨다. <독전>의 관람가는 같은 해 12월 개봉한 또 다른 마약 소재 영화 <마약왕>과 비교됐다. 관객들이 체감하는 수위의 정도는 두 영화가 비슷한 수준인데 반해 <마약왕>에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매겨졌기 때문. 이에 대해서는 <독전>은 마약 조직을 소탕하는 형사의 고군분투에 초점 돼 있으면서, 권선징악의 결말로 나아가기 때문이라는 관점이 있다. 게다가 아무래도 먼저 개봉한 <독전>이 관람가를 두고 논란을 겪었기 때문에, 그 점이 <마약왕>의 관람가 판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여지도 있다.

<마약왕> 등급 분류 정보

<기생충>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으로 관객들의 발길을 잡은 <기생충>도 관람가 논란에 휩싸였다. <기생충>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대략 가족극과 블랙코미디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15세 관람가 판정은 일견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기생충>이 부의 양극화라는 사회적 담론을 다루고 있다는 소식에 아이와 함께 극장을 찾은 부모들은 "몇몇 장면에서 당혹감을 느꼈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장면은 부부로 등장한 이선균조여정의 유일한 베드신이었다. 해당 장면은 직접적인 노출 장면을 포함하지 않지만 표현이 자세하고 강렬해 성행위로 느껴진다는 반응이다. 또, 극 중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소품인 산수경석으로 사람의 머리를 내리찍는 장면, 칼로 사람을 찌르는 장면 등 폭력적인 신에서 시·청각적 묘사가 적나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이 받아들이기에는 영화 전반의 메시지가 지나치게 무겁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편, 황금종려상 수상작의 영향으로 <기생충>은 해외서도 잇단 개봉을 하고 있다. 각 나라별 관람 등급의 분류는 천차만별이지만 대체적으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등급으로 개봉됐다. 가장 눈에 띄는 국가는 유일하게 전체 관람가로 개봉한 프랑스였다.

<기생충> 등급 분류 정보

영등위가 <기생충>에 매긴 7요소의 단계는 <곡성>의 경우와 일치한다. 약물 항목에서 '보통' 수준을 차지한 점을 빼놓고 주제, 선정성, 폭력성, 대사, 공포, 모방위험 항목에서 '다소 높음' 단계로 평가됐다. 결과적으로 15세 관람가를 결정한 배경에 대해 영등위는 "해당 연령층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것을 제한적이지만 자극적이지 않게 표현한 수준"으로 설명하고 있다. 영등위의 잣대가 절대적일 수 없는 만큼, 관람 등급을 향한 관객들의 평가도 각양각색이다. 따라서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영화라 해도, 어린 자녀와 동반한 성인 관객들이라면 관람 전 영화에 관한 정보를 더욱 면밀하게 체크해 보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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